무엇을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동생이 처음 집에 오던 날이 기억난다. 노란 아기 코끼리 그림이 있는 아기보에 싸여 집으로 왔다. 엄마를 따라갔다가 병원 신생아실에서 봤을 때 모습 그대로 새빨간 얼굴을 하고서 눈을 감고 있었다. 피부는 반들반들했고 부어 있는 눈두덩이는 더욱 맨들거렸다.
나는 바빠졌다. 고작 세 살짜리 꼬맹이였지만 동생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많아서, 아니 얼른 같이 놀고 싶어서 온 집안의 장난감을 다 가져다 동생 머리맡에 놓았다. 손으로 옮길 수 있는 장난감은 손으로 들어가져다 놓았고, 이내 제풀에 지쳐서 낑낑대며 장난감 바구니를 밀어다 놨다.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라는 철 지난 유행어는 그때부터 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고, 그렇게 언니가 되면서 처음 하는 일이 많아졌다. 언젠가도 글에 썼지만 6살 배기 나는 동생을 위해 처음으로 요리를 했다. 멸치볶음이 아닌 말 그대로 멸. 치. 무. 침.이었지만 조미간장과 참기름 덕에 맛은 있었다. 물론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처음 질투를 느낀 대상도, 분노를 느낀 대상도 동생이었다. 사자가 그려진 핫핑크 조끼를 입고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빽빽 울어대는 동생이 꼴미웠고 빼앗긴 엄마 사랑이 고파서 오줌소태에 걸렸다. 시기심을 털어내고 기껏 만들어준 "꼬막의 생태"그림책을 받자마자 찢어 버렸을 때는 엉엉 울었다. 싸우다가 화가 나면 크리스마스 종, 리본 나부랭이를 던졌는데 그때 이미 나는 동생에게 짬이 안된다는 걸 알았다.
한 번은 초등학교 5학년 실습시간에 사과 깎는 법을 배우고 와서 동생에게 사과를 깎아줬다. 의도는 선했지만 칼질이 서툴러서 쥐 파먹은 모양이 되었고 너무 오래 쥐고 있는 바람에 사과가 누렇게 변했다. 동생은 "사과가 이상해."라며 먹지 않았고 나는 꾸역꾸역 사과를 다 먹었다. 내가 지금도 사과를 잘 먹지 않는 이유는 그 사건 영향이 크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 여러 시작을 동생과 함께했다. 우리 집의 스타트는 모두 첫째인 내가 끊었지만 나는 많은 처음을 동생과 함께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함께 하는 일보다 혼자 하는 일이 더 많아졌지만 모든 일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이전에 "나도 작가다"1차 공모전에 내려고 적었던 글인데 자세히 알아보니 주제와 맞지 않아 서랍에 담아만 둔 글입니다. 글을 처음 적던 때의 느낌이 살지 않아 마무리가 소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