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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Mar 23. 2020

빨간 원피스를 입을 수 없었던 이유

내게도 잠시 빛나던 시절이 있었지.

브런치에서 내 글을 꾸준히 읽은 독자님들은 상상이 어려우시겠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는 학급 반장을 줄곧 했었다. 장장 12년가량을 찐따로만 살지는 않았다는 말씀이다. 내게도 빛나는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엄마가 학교일에 개입하면 자식들이 버프를 좀 받는 게 있었다. 어머니의 높은 기대치 탓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헉헉댔지만 교실에서만큼은 줄곧 빛났다.


딱 초등학교 3학년까지. 그때까지만 해도 친구들이 많았고 반장선거는 곧 인기투표였으므로 어렵지 않게 반장이 되었다. 물론 선거 전날은 혹독한 교육을 받으면서 연설문을 준비해 갔다. 그래, 빛나던 시절이 있었지만 겉보기에만 빛났던 시절이겠다.



이는 빛나던 시절의 끝무렵인 초등학교 3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어머니가 어디서 빨간 원피스를 얻어오셨다. 어린애가 보기에도 우리 집 경제력으로는 제 값 주고 살 수 없을 것 같은, 금빛 단추가 달린 예쁜 원피스였다. 드라이클리닝 비닐에 고이 담겨 있었다. 원단도 드라이가 아니면 안 되는 고급 원단이었나 보다. 


하지만 나는 그 예쁜 원피스를 딱 한 번 입고는 더 이상 입을 수 없었다. 그 옷을 보기도 싫어했고 '왜 안 입으려 하느냐'며 다그쳐 묻는 엄마의 물음에도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냥 입기 싫다고만 했다.


원피스를 처음 개시한 날 겪은 일이 있었다. '사건'이라 하기엔 보잘것없다. 문장 한 줄이면 된다. 


반장이었던 나는 학급을 대표해 '엎드려뻗쳐' 벌을 받았다.


겁이 났고 두려웠다. 창피하고 치욕스러웠고 수치심이 몰려왔다. 피가 얼굴로 몰렸고 점점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팔이 부들부들 떨렸고 마룻바닥을 짚은 손은 질려갔다. 몸의 하중 때문에 손이 삐질 삐질 밀리는데 옆에 있는 바닥의 가시가 손에 박힐까 겁이 났다. 하필 이런 날 치마를 입어서, 아이들은 어차피 못 보겠지만 치마 속이 보일까 봐 끔찍하게 싫었다. 점점 숨이 막혔다.


10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옷이 입기 싫었던 명확한 이유는 서술하기 어렵다. 정도는 약했지만 트라우마라고 하면 좋을까. 그냥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만 이제 내 입으로 풀어낼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그 원피스를 보면 그때의 일이 떠올랐고,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날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거라 짐작한다.


지금은 그렇게 하면 큰일 나겠지만 그 당시 학교에서는 체벌이나 기합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겪은 것은 그나마 가벼운 축에 속했다. 초등학교 1학년 나의 담인 선생님은 들고 있던 막대기로(회초리와 몽둥이 사이 그 어디쯤 길이와 굵기) 말 안 듣던 남학생의 배를 찌르며 벽까지 밀어붙였고,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아이가 우유상자에 처박혔는데도 몽둥이질과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으며,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발바닥을 때렸는데 때리기 전에 학생을 맨발로 복도에 서있게 했다. 차가운 돌바닥에, 특히 겨울에 오래 서 있어 발이 얼면 맞았을 때 고통이 더 심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직접 말했다. (6학년 때 썰은 많아서 에세이 3편은 나올 것 같다.)


내가 태생부터 겁이 많았던 탓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나는 되도록 선생님의 눈에 띄지 않고, 맞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고학년 때는 왕따가 되는 일을 감수하면서까지 지독한 모범생으로 살았다.


한 예시지만 수학 문제를 못 풀어서 맞지 않으려는 그간의 노력이 헛되게 된 날이 있었다. 13살이나 먹어서도 한 대 맞는 게 두려워 반 친구들이 모두 보는 데서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학교에서 지들이 제일 잘난 줄 알던 초등학교 6학년의 가오(?)나 패기(?) 사춘기 소녀의 반항심 같은 건 없었다. 


13살이나 먹어서도 그랬으므로 저학년 때의 내가 얼마나 겁이 많았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오죽하면 쉬는 시간에도 친구와 잡담도 안 하고 오줌을 쌀 지경이 아닌 이상 화장실에도 가지 못한 체 꼼짝 않고 자리만 지켰을까. 


그래, 그 정도로 겁이 많았으니 남들 같으면 훌 털고 일어날 일을 그렇게 오래 가지고 살았나 보다. 이유를 엄마한테라도 말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으니 멍든 10살짜리 가슴이 참으로 아렸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는 물음에 손사레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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