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갈이배추(봄동, 청경채 등 푸른 채소로 대체 가능), 맹물, 칼국수 면(콩가루면), 소금, 양념간장
<요리 순서>
1. 물을 냄비에 넣고 가스불을 올린다.
2. 물이 끓으면 면을 넣고 끓인다.
3. 물이 끓는 동안 준비해둔 배추를 썬다.
4. 국수가 엉기지 않게 가끔씩 저으며 2-3분 정도 끓이다가 배추를 넣는다.
5. 배추가 숨이 죽고 한소끔 끓어오르면 소금으로 간을 하고 그릇에 담아낸다.
6. 완성된 국수에 양념간장을 조금 뿌린 뒤 맛있게 먹는다.
추억만으로 음식이 맛있을 수 있을까?
글을 쓰면서 다짜고짜 레시피부터 적어 올렸지만 부러 길게 늘어놓은 것이지 특별한 것이 없다. 그냥 물을 끓이다가 국수를 넣고 초록 채소를 넣고 소금 간을 한 뒤 양념간장을 뿌려먹으면 된다. 요리를 많이 해본 사람이면 쓱- 읽고 차려낼 수 있을 정도의 간단한 음식. 물론 저 국수가 좀 더 맛있으려면 작가의 외할머니댁 근처 국숫집에서 파는 콩가루 칼국수를 사용해야 한다.
'안동국시(안동 건진국수)'라고 사전을 찾아보면 위에서 소개한 것보다 복잡한 과정이 나열되어 있다. 육고기로 국물도 내야 하고 고명도 더 올라간다. 하지만 저렇게만 해서 먹어도 충분히 맛이 좋다. 조금이라도 더 맛 좋은 국을 끓여보겠다고 매번 멸치육수를 내서 보관해두는 나지만 할머니댁표 국시를 끓일 때만큼은 예외다. 국수 반죽을 할 때 콩가루를 넣어서 끓이는 동안 비릿한 콩 내가 나지만 그런 냄새가 되려 식욕을 돋운다.
'입맛이라는 것이 뭘까? 어디서 오는 걸까?'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요즘이야 배달앱도 많아져서 스마트폰만 켜면 갖가지 음식이 나열되지만 결국은 먹던 음식을 찾는다. 어릴 때부터 자주 먹어온 음식. 거기에 누군가와 함께한 추억이 있다면 더욱 좋다. 나에게 안동국시는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다.
외할머니는 지금 생각해도 애틋할 정도를 나를 사랑해주셨다. 흔히 '할머니'라고 하면 재미있는 이야기보따리가 따라올 것 같지만 젊을 때부터 항상 농사일, 집안일에 치이다시피 하신 할머니께는 손녀에게 들려줄 이야깃거리가 없었다. 할머니의 사랑은 언어보다는 '아이구 내 손주'라는 추임새와 엉덩이를 두드려주시는 손길, 시간 단위로 해주시던 음식, 우리가 서울로 올라갈 때마다 흘리시던 눈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단 한 번, 할머니의 사랑이 한 마디 언어로 표현된 적이 있었다. 어쩐 일인지 엄마 껌딱지이던 내가 할머니 손을 잡고 시장에 갔고 할머니와 함께 국숫집에도 들렀다. 국수가 끝없이 뽑아져 나오고 실 같은 국수를 건조대에 걸어놓은 국숫집 풍경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손에 든 서주 아이스바가 녹는 줄도 모르고 천장에 걸린 국수 가락만 쳐다보고 있었다.
"쟈는 누구라요?" 하는 국숫집 사장님 말씀에 할머니는 "야가 우리 손주라요."라는 대답을 하셨다. 어린 내 귀에는 할머니의 저 말씀 한 마디 안에 사랑이 담뿍 담긴 것처럼 들렸다. 느낌뿐이었지만 그 말 한마디에서 할머니가 나를 사랑하고 또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앞서 '할머니의 사랑의 언어'라며 한껏 잡아놓은 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꽤 지난 지금도 가슴에 남아있는 한마디 말이다. 유난히 그 말씀 한 마디가 가슴에 남아 있는 이유를 생각해내려면 생각해낼 수 있지만 가슴 찡한 느낌만을 남겨두기로 한다.
할머니 손을 잡고 가서 사 온 국수를 끓여 먹으면서 그 사랑을 깊이 느꼈다. 사골국 마냥 뽀얗고 진한 국물이 할머니의 사랑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친할머니 댁은 외할머니댁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었고 명절이면 외할머니댁 국숫집에서 국수를 사서 친할머니를 뵈었다. 나는 친할머니 뵙기를 좀 무서워했지만 배추를 넣고 뽀얗게 끓인 국수를 친척들과 끓여먹은 추억만큼은 따뜻하게 남아 있다. 외할머니의 사랑이 깃들어 있어서 친가 쪽 친척들도 덜 낯설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담백하고 슴슴한 맛. 백석 시인의 시 중 '국수'를 좋아한다. 시에서 소개된 국수가 어떤 국수를 뜻하는지 배워 알기 전에는 시 속 국수가 할머니 댁 안동국시와 같은 종류일 거라 생각했다. 시인이 생각한 국수는 평양냉면이라고 하지만 맛은 반드시 재료에서만 나는 것이 아니다. 시 속 풍경에서 뜨끈한 사랑이 느껴졌고 내 추억도 함께 소환되었다. 평양냉면이든 안동국시든 사랑이 깃들어 맛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