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시인의 '기억의 자리' 감상
기억의 자리
나희덕
어렵게 멀어져 간 것들이
다시 돌아올까 봐.
나는 등을 돌리고 걷는다.
추억의 속도보다는 빨리 걸어야 한다.
이제 보여줄 수 있는 건
뒷모습뿐, 눈부신 것도
등에 쏟아지는 햇살뿐일 것이니
도망치는 동안에만 아름다울 수 있는
길의 어귀마다
여름 꽃들이 피어난다, 키를 달리하여
수많은 내 몸들이 피었다 진다.
시든 꽃잎이 그만
피어나는 꽃잎 위로 떨어져 내린다.
휘청거리지 않으려고
걷는다, 빨리, 기억의 자리마다
발이 멈추어선 줄도 모르고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온 줄도 모르고
나희덕의 「기억의 자리」는 오래도록 가슴 저리게 좋아해 왔으면서도 ‘나는 이 시가 좋아’라고 쉽사리 털어놓지 못한 작품이었다. 시가 전하는 메시지가, 시구 하나하나가 내 심장을 차근차근 즈려밟는 것 같은 아픔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 삶의 대부분은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 과거에서 멀어지려 했고, 때로는 현재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지금만 견디면 앞으로의 삶이 더 나아질 거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앞으로 걸었다.
비교적 가벼운 이야기지만 겨우겨우 종강을 하고 나서 기진맥진해 버린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수업여건 변화와 근무지에서의 예기치 않은 일 등 여러 요인들이 “기막힌 한 학기”를 만들어낸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지만, 현재를 버리고 종강을 할 때까지만 버티자며 계속해서 몰아세운 것은 나였다.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과정이 고되고 또,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시의 화자가 밝히고 있듯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일도 허다하다. 시에서는 "추억"이라고 일컫고 "도망치는 동안에만 아름다울 수 있"다고 하지만, 내 경험들은 결코 ‘추억’이 될 수도 없었고 ‘도망치는 동안에도’ 아름다울 수 없었다.
벗어나려 하나 벗어나지 못하는 첫 번째 몸부림은 학생 시절 입시 실패다. 누군가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면 ‘삶은 순리대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고, 네 삶을 살면 된다’고 조언했을 것이면서도 지독한 엘리트 주의자였던 학창 시절 선생님 말씀을 내면화해서 나를 다그쳐왔다.
누군가의 말대로 나는‘노력을 하지 않은 양아치’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요.’라는 말은 치욕이라고 생각했고 차라리 ‘노력은 하는데 머리가 나쁘다.’는 말이 좋았다. 대학시절에도 틈도 없이 달려 가고 싶었던 대학의 대학원에 입학했으면서도 열등감이 불쑥불쑥 솟구쳐 오른다. 우연히 읽은 ‘타대 출신은 학우가 아니라는 글’ 하나를 몇 달째 반추하며 내면화하고 있는 중이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겠다고 종교인의 삶에 들어섰다가 모양 우스운 꼴만 당하고 나온 이력도 벗어나고 싶은 과거이다. 내 선택이었고, 그런 결정을 하게 된 데는 ‘선한 의지’ 말고도 여러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내 탓만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나의 결정이 남은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싶지가 않았고,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들었던 ‘날 선 칼 같은 무수한 말들’은 지금도 내 삶을 좀먹고 있다.
어쩐 일로 용기가 생겨 시를 다시 꺼내 들었고,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 글에서 털어놓는다. 아무리 벗어나려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그 많은 실패와 치욕의 기억들도 모두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겠다. 벗어나지 않고 마주하기로 결심하면 ‘도망치는 길의 어귀에서 피고 지기를 반복했던 수많은 여름 꽃’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