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호 Nov 26. 2019

깡마른 꽃봉을 떠나보내다

문태준 시인의 '겨울 꽃봉' 감상

저 꽃봉에도 바람이 한때 놀았지. 깡마른 꽃봉을 떠나보내며




겨울 꽃봉

                                      문태준


저 꽃봉에도 바람이 한때 놀았지

깡마른 겨울풀이 뼈를 드러내놓고 뼈를 딱딱 부딪치며 서있었다


저 꽃봉에도 바람이 한때 놀았지

나는, 문동이처럼 살이 문드러지고 광대뼈가 불거진 한 주검을 조문하고 내려오고 있었다. 놀란 꿩들이 대낮에 든 도둑처럼 튀어올라 산길을 앞서 날아갔다


아리게 부서지는 겨울 햇살이 깊은 땅 아래로 내려갔으면......

작은 바람이 불어도 바람은 이제 바람끼리 논다

 

                                                                                   '수런거리는 뒤란', 창작과 비평사               



이즈음이 되면 세상을 떠난 이들의 소식을 자주 접한다.  최근 한 달 새 벌써 4건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상을 당해 수업에 빠진 동기생만 두 명이다. 시적 자아도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고 오는 길이다. 때는 이맘때이거나 더 추운 겨울이었을 것이다. 스산한 주변 풍경은 쓸쓸하고 애달픈 감정을 더 깊게 한다. 


조문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겨울 꽃봉'을 마주한다. 바람이 한때 놀았지만 이제는 비쩍 말랐다. 푸르던 색은 다 빠지고 갈색의 뼈만 남았다. 뼈를 딱딱 부딪치며 떨고 있는 '꽃봉'을 보고 죽은 이를 떠올린다. 한때 화려한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쓸쓸히 생을 마감한 이의 처지가 겨울 꽃봉을 닮았다.


세상을 떠난 이는 노인이고 병을 오래 앓았을 것이다. 문둥이처럼 살이 문드러지고 광대뼈가 불거졌다. 오랜 병을 앓은 이의 흔적이다. 입관절차 전, 돌아가신 이의 마지막 얼굴과 마주하면 이질감이 든다. 슬픈 감정보다 생경함이 더 먼저 온다. 그리고 그 모습이 오래 남는다. 시적 화자에게도 죽은 이의 모습이 각인되었다.


튀어올라 산길을 앞서 날아간 꿩들을 보고도 죽은 이를 떠올렸을지 모르겠다. 시적 자아보다 앞서서 어딘지 모를 저 먼 산길로 날아가버린 꿩들. 다른 날이었으면 그저 지나쳤겠지만 지나칠 수 없는 풍경이다. 산길에서 새들이 날아오르는 소란 뒤의 고요. 그 고요함이 적막감과 슬픔을 더한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는 겨울 햇살이 깊은 땅 아래로 내려가길 바란다. 죽은 이가 묻혀 있는 차가운 땅 아래로 지상의 햇살이 조금이라도 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는 이제 세상에 없고 바람은 바람끼리 논다. 한때 꽃봉에 놀던 바람이 이제 바람끼리만 논다.

매거진의 이전글 11월_쓸쓸하지만 '아직'인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