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인의 '그 아무것도 없는 11월' 감상
그 아무것도 없는 11월
아직 이 세계가 풀잎의 탄력 위에 앉아 있는 때
그 아무것도 없는 11월
문태준
눕고 선 잎잎이 차가운 기운 뿐
저녁 지나 나는 밤의 잎에 앉아 있었고
나의 11월은 그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무덤에 불과하고
오로지 풀벌레 소리여
여러번 말해다오
실 잣는 이의 마음을
지금은 이슬의 시간이 서리의 시간으로 옮아가는 때
지금은 아직 이 세계가 큰 풀잎 한장의 탄력에 앉아 있는 때
내 낱잎의 몸에서 붉은 실을 뽑아
풀벌레여, 나를 다시 짜다오
너에게는 단 한 타래의 실을 옮겨 감을 시간만 남아 있느니
'먼 곳', 창작과 비평사
11월을 시로 표현할 수 있을까? 11월에 어떤 말을 보탤 수 있을까? 시가 되려면 시상을 불러일으키는 소재가 있어야 하는데 특별히 찾지 못하겠다. 11월이라고 하면 그저 어딘지 모를 쓸쓸한 기분이 들며 낡고 누런 끼가 도는 회색빛 공기만 느껴진다. '옅은 우울을 드리운 계절'이라는 진부한 표현이나마 할 수 있을 뿐. 11월은 애매하게 끼어있는 달이기도 하다. 지리멸렬하게 길게 느껴진다. 10월의 마지막 날을 낭만적으로 보낼수록, 12월에 든 성탄을 손꼽아 기다릴수록 11월은 더욱 초라해진다. 공휴일도 없고 햇볕이 찬란하지도 않다. 시의 제목 그대로 '그 아무것도 없는 11월'이다.
시는 11월 밤을 맞이하는 심경을 토로하며 시작된다. 공기의 온도는 겨울에 가깝고 한 때 찬란했던 나뭇잎은 가지에 겨우 매달려 있거나 바닥에 떨어져 뒹군다. 시적 화자는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무덤' 같다고 느낀다. 11월은 공허함이 두드러지는 계절이다. 11월이나 12월 모두 한 해의 끝자락이므로 아쉬움을 주지만 서로 다르게 보내게 된다. 12월에는 각종 모임에 참석하면서 아쉬움을 느낄 새도 없이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되므로 11월에는 상대적으로 쓸쓸함이 두드러진다. 난방을 틀기도 애매한 기온이어서 서늘한 공기가 쓸쓸한 심정을 배가시킨다.
낙엽은 떨어지고 남아있는 건 풀벌레 소리뿐이다. 11월을 두고 가을의 끝자락으로 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겨울의 시작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도 있다. 늦가을로 보든 초겨울로 보든 아무것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주변이 꽉 차 있고 찬란할 때는 풀벌레 소리가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풍성한 느낌을 자아내지만 '그 아무것도 없는'계절에는 외로움을 더할 뿐이다. '오로지 풀벌레 소리'만이 들리는 계절 속에서 시적 자아는 실을 잣는다. 비유적 표현이지만 고요히 내면의 말들을 뽑아내고 있는 것이다.
앞서 11월을 가을이라고 부르기도, 겨울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때라고 하였다. '이슬의 시간이 서리의 시간으로 옮아가는 때'라는 표현에서 계절의 사이에 위치한 11월의 성격이 두드러진다.'아직 이 세계가 큰 풀잎 한 장의 탄력에 앉아 있는 때'라는 표현도 11월의 성격을 드러내는 탁월한 표현이다. 본격적으로 겨울이 오면 풀잎의 탄력도 사라지고 말겠지만 11월은 '아직' '세계가 풀잎 한 장의 탄력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마지막 연에서 시적 자아는 풀벌레에게 자신을 다시 짜 달라고 한다. 2연에서 실을 뽑아냈다면 이제는 실로 새로운 자신을 짜 달라는 표현이다. 한 해를 시작하며 했던 다짐들을 지키지 못하였거나 여러 일들에만 골몰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였으므로 자기 자신을 새로이 구성하며 찾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 아무것도 없는' 11월의 시간 앞에서 실을 잣고, 그 실로 자신을 찾아 나는 과정을 보며 쓸쓸함보다는 일종의 희망을 느끼며 시를 마무리 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