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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Oct 10. 2019

브런치 성지글

작가로 선정되면 이메일의 꼭지 말부터 달라진다

[촘촘한 콘텐츠 짜기의 중요성]

 -브런치 작가 광탈 소식에 부쳐...

브런치 작가에 광탈했다. 예전에도 브런치를 알고 있었고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내 글을 공개적인 장소에 옮긴다는 일이 꺼려져 시도해보지 않았다. 그러던 찰나 함께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토론도 하고 심지어 내가 쓴 글을 독서모임 홈페이지에 공개까지 해야 하는 STEW독서소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다. 은둔 작가(?), 혹은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독서모임에 든 김에 브런치도 도전하기로 한다. 장족의 발전이다. 그러나 "아뿔싸. 브런치 진입장벽이 이렇게 높았다니!" 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수업을 들으러 가는 와중에 브런치 작가 광탈 소식을 받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자아성찰부터 하는 성격이라 수업이 있는 건물까지 가는 내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가 또 자만했구나. 사람은 어린 시절에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 난 줄 알다가 철이 들면서 '자신은 그냥 평범한 사람'인 줄을 깨닫는다는데 나는 이 나이가 먹도록 자아가 깨진 적이 없구나. 대학원에 들어왔다고 자만할 게 아니었어, 그게 뭐라고. 어차피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글을 열심히 써서 책을 내는 헛된 생각을 하다니, 사람은 원래 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가' 하며 또다시 생각은 과거로 과거로. 과거의 내 실수로, 트라우마로 이어졌다. 유치원에 어떤 아이들은 바지에 똥을 싸면 똥을 쌌다고 호다닥 달려와서 선생님한테 자랑을 한단다.  유치원 교사로 오랜 기간 재직하면서 심리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강사님은 언젠가 들었던 특강에서 '그런 아이들이 건강한 것'이라고 했었다.


내가 건강한 어른이어서 그런 건지 모르지만 우리 독서모임 단체 톡방에 나의 광탈 소식을 알렸던 캡처 화면을 올렸다. 24명이 있는 단체 톡방에 흑역사 오픈이라니 창피한 일이지만 뭐라도 해야지 싶었다. 팀원분들께 조원을 듣고 지하철에서 오는 내내 나와 같이 브런치 작가에 광탈한 사람을 찾았다. '구글 노잉'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포털 검색으로 무엇이든 알아낼 수 있는 시대이다. 열심히 구글링을 한 결과, 작가 모집에서 탈락한 사람이 꽤나 많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의 여러 이야기를 읽으니 다시금 용기가 나기 시작했다.

 


왜 떨어졌을까?

우선 나는 섣불리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홈페이지를 좀 더 면밀히 검토해보지도 요즘 잘 나가는 작가님들의 브런치를 열람해보지도 않고 글만 썼다. 짜임새 있게 콘텐츠를 짜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알려야 했다. 대학원 수업에서 '교과서 분석'을 하고 있다. 교수님께서 교수자 입장이 아닌 학습자 입장에서 교과서를 살펴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의 소개글은 철저히 내 입장에서 쓴 글이었다. 나를 심사하여 작가로 등단시켜줄 관계자분들은 고려하지 않았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자기소개에서 내가 글을 쓰고 싶어 한 동기를 과거로부터 장황하게 기록한 듯하다. 그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실제로 보여줄 수 있는 소개글을 썼어야 했다. 하고 싶은 활동을 적을 때도 막연하게 ' 텍스트를 기반한 글쓰기를 하고 싶다.'라고 적어서는 안 되었다.


정성스레 썼던 글이지만 그의 제목 또한 참신하게 달았어야 했다. 어찌 되었건 글은 독자와의 소통이다. 그리고 브런치 페이지 특성상 독자들은 컴퓨터 혹은 모바일 화면에 뜬 글의 제목이나 이미지를 보고 클릭을 하게 되어있다. 작가를 선택하여 구독하고 그 작가를 찾아 읽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글을 올릴 때는 보다 독자들을 위하는 노력을 해야 했다. 성의 없이 '시 한 편에 커피 한 잔' 같은 고릿 적 잡지 제목 같은 제목으로 통일하면 안 되었던 것이다.(고릿 적 잡지를 비하하고 싶은 마음 없음. 그 시대와 감성이 다르다는 이야기임.)


그래서 새로 도전해보기로 한다. 여러 글을 '작가의 서랍' 안에 넣어두고 틈날 때마다 들어가서 재차 읽으며 수정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또 어떤 글을 쓸 수 있는지도 면밀하게 검토해 보기로 한다. 아직 석사 과정생이지만 전공을 살린 전문성 있는 글이나 오래 지속해서 연재할 수 있는 글을 구상하고 있다. 이번 주 독서 모임에 가서 "짜잔, 다시 도전하여 등단을 했습니다!!"하고 자랑하려던 일을 조금 미루고 콘텐츠 짜는 일에 좀 더 정성을 들이기로 한다.


브런치 광탈을 하고 마치 '브런치 작가 심사를 통과한 양' 이런 글을 쓰고 있다. 작가가 되기도 전에 작가가 되었다고 가정을 하고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것이 답인 양 글을 쓰는 내가 혹여 관계자 분들께 자만에 가득 찬 지망생으로 보일까 염려된다. 그러나 혹여 이렇게 나름의 개선을 거친 후 작가가 된다면? 이 글은 성지글이 될 것이다. 과연 이 글이 성지글로 남게 될 것인가. 아니면 흘러가는 푸념으로 남을 것인가. 기대가 된다.




결국 이글이 성지글이 되었다. 작가의 서랍에서 글 제목이던 것을 본문으로 옮기고 새 제목을 단 것 외엔 글 수정을 하지 않았다. 성지글 보존 차원에서......

다만 고민이 되는 것은 실명을 그대로 남겨도 괜찮을까 하는 문제이다. 에세이도 쓸 예정인만큼 주변 사람들이 등장할 텐데 '네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줄은 몰랐다.'라고 손절을 신청하면 어쩌나 고민이 된다.

글을 쓸 때는 '원수가 읽어도 괜찮을'만큼 신중하게(?) 써야 한다고 훌륭한 선비님이 말씀하셨다는데...

30일까지 작가명을 바꿀 수 없다고 하니 일단은 조금 기다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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