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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Dec 17. 2019

내가 문 열기에 집착하는 이유

눈치를 보며 배려를 하는 건 취하위 수준

친구들과 길을 다 출입문을 만날 때면 내가 꼭 문을 열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상대가 문을 열어주면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고 불안해진다. '다니면서 문 한 번 제 손으로 연 적 없는 싹수없고 이기적인 사람'이 될까 봐. 그래서 언제는 이 같이 가면서도 각각 문을 열어서 나가기도 한다. 친구가 문을 여는 걸 두고 볼 수 없어 나도 손을 뻗다 보니 생긴 일이다. 좀 우스운 모양새다.




이런 습성이 생긴 건 20대 반에 만난 한 선배(?) 어른(?)때문이다. 평소 후배들을 잡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실습지에서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그 사람을 저 겪었던 이들의 생생한 체험담은 나를 잔뜩 긴장하게 했다. 잠잠히 몇 개월을 지내다가 나도 그 사람의 희생자가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돌아가서 소리를 치던 그 입에서 쏟아져 나오던 하던 말이 생생히 기억난다. 3개월치를 쌓아놨다가 하루 저녁에 몰아붙였다. 그중 하나를 옮겨보자면 이렇다.


싸가지가 없이 어딜 어른이랑 같이 가면서 뒤에 서서 한가롭게 따라와?!! 막내면 막내답게 뛰어가서 문을 열어야지. 한 번도 문을 여는 꼬라지를 못 봤어!! 너는 어째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어? 그동안 배운 게 뭐야. 수련을 똑바로 받은 거야 뭐야!! 내가 당장 너희 선생이랑 본부에 전화해서 다 일러바칠 거야.(그리고 그날 밤 정말 전화를 했음. 방문 너머로 나를 뒷담화하는 소리가 너무 잘 들림.풋.)


하도 무섭게 닦아세우는 바람에 한 마디도 못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있었다. 평소 어른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인 걸 알기에 그 사람보다 앞서 걷는 일마저도 예의 없이 느껴졌다. 매번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했고 그러다 보니 나름 예의를 차린다고 한 행동들이었다. 나는 그 사람 뒤에서 두 손을 모으고 얌전히 따라갔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싹수없어 보였다니.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각해도 그 사람이 좀 이상하다. 즘 그렇게 핫하다는 꼰대 같기도 하다. 당시 정황을 따져보면 여타 다른 관계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나한테 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사람의 공격 대상은 나뿐이 아니었다. 일터에서 돌아오면 관리자를 욕했고 직원은 우스갯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나를 포함한 함께 있는 두 명은 그 사람 등쌀에 벌벌 떨었다.


내가 100% 옳다고는 못하겠지만 아무래도 그 사람이 너무 심했다. 그 사람이 옳지 않았음에도 그때의 기억은 나를 부자연스럽게 만든다. 아닌 것을 알았으면 관적으로 정리를 하고 원래대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내가 앞서 뛰어가 문을 열지 않다고 해서 매 남 생각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인 것도 아니다. 행동이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경우를 모르는 태도로 산 적은 없었다.


물론 그 사람이 나를 싹수없다고 결론 내린 것은 의 다른 모습들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앞서 려가서 문을 열지 않았다는 것은 예시일 뿐이었 다른 점이 마음에 안 들었을 테다. 상황에 맞게 빠릿빠릿하게 필요한 것을 챙기는 일. 그게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었을까. 그런 태도가 싸가지 있는 후배가 되기 위한 필수요건이라면 나는 낙제점이다. 그 지금도 잘하지 못하겠다.



2014년 겨울에 있었던 일인데 5년 동안 가슴에 품고 있다. 알게 모르게 그 사람이 한 말들을 가슴에 품고 어떻게 하면 그 사람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았다. 마치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기준이 그 사람 안에 있는 것처럼. 노력했지만 태생이 그러한 센스를 겸비한 사람이 못돼서 이상하게 핀트가 어긋난다. 학교에서 일을 도우면서도 지나치게 긴장하고 필요 이상의 열정을 보인다.


그 사람과, 그즈음 내 20대 초중반의 일련의 경험들. 그 당시의 그런 경험들이 없었으면 나는 정말 안하무인의 싹수없는 사람이 되었을까. 타고 난 성격이나 어릴 적 경험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5년 여의 시간 동안 그 공간 안에서 겪은 일들 때문에 나는 더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되었다. 그 경험이 나에게 남긴 건 뭘까? 지금도 나는 내게 묻은 똥은 보지 못하고 그들에게 불이 묻었다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내가 정말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싸가지 있는 후배가 되었다고 해도 그런 내가 보였을 행동은 그저 선행을 흉내 내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도덕 윤리 시간에 무수히 배우듯이 눈치를 보느라 혹은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 한 행동의 동기는 최하위 수준에 속한다. 내 행동의 동기가 취하위 수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길 바란다.


다음 메인에 잘 걸리는 주제의 글이 있는 것 같다. 밥 관련 글들(참기름 간장밥, 콩나물밥)이 메인에 걸렸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내 글을 읽어주셨고 라이킷도 눌러주셨다. 그런 탓에 이런 내용의 글을 쓰기가 부담스러웠다. 진실성이 없는 행동이지만 글 안에서 착한 척을 해야 할 거 같았다.

 

그러나 지금도 매번 악몽을 꾸게 하는 그곳에서의 경험들이 다 쏟아져 나오지 않는다면 나는 더 이상 아무 글도 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글쓰기가 나의 치유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 브런치에서 작가라고 불러주지만 여전히 나는 작가라기보다 '작가 나부랭이'(비하 아님_귀여운 나부랭이) 일뿐이다. 그래서 아직은 독자와 세상을 생각하기보다 나를 위한 글을 쓴다.


따로 매거진을 나누든지 해서 겪었던 일들을 조금씩 풀어내고 싶다. 그렇게 해야 온갖 것이 혼재된 안에서 좀 정리가 되지 않을까. 부디 그 안에 너무 많은 분노가 담기지만은 않길 바랄 뿐이다. 고발문이 되길 바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에 오래 고여 있던 만큼 썩어서 나오기보다 숙성이 돼서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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