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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Dec 22. 2019

브런치를 시작하고 눈물이 많아졌다

'지속적인 글쓰기'가 이만큼 좋습니다

수업시간에 발표를 맡은 조가 겨울왕국 영상자료를 보여줬다. <겨울왕국 1>에서 엘사가 자신의 능력을 잘 다루지 못해 안나에게 상처를 입히고 나서 자매가 서서히 멀어져 가는 광경이었다. 뜬금없이 눈물이 났다. 찔끔 흘리고 말 눈물이 아니라 눈물 흘리기를 허용하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질 만큼의 눈물이었다. 수업 시간 내내 감정이 복받쳐 올라서 눈물이 나려 할 때마다 물통의 물만 꼴딱꼴딱 삼켰다. 


어느 날 문득 떠오른 기억이나 감정을 붙잡아 브런치에 글을 쓸 때가 있다. 글을 쓸 때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지만 떠오른 감정을 붙잡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 한 시간도 못돼서 글쓰기가 끝난다. 앞뒤 문장을 생각할 것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다음 문장이 나온다. 그렇게 글을 쓰고 있으면 눈물이 울컥 쏟아질 거 같다. 글을 마치고 나면 손은 차가워지고 몸에는 식은땀이 흘러서 오한이 난다. 눈물대신 땀이 나는 것이다.


겨울왕국을 보면서 눈물이 난 것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직 글감으로 완성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이지만 동생과 관련된 이야기일 것이다. 브런치에서 마음속 깊은 곳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놓을 때마다 그와 관련된 다른 기억들도 떠오른다. 감정을 억압하도록 교육받아 적절한 때에 풀어주지 못한 감정들이 분출된다. 어떤 식으로든 해소가 일어나면 그날 밤엔 좀 편안히 잠을 잔다. 브런치의 가장 좋은 효과는 억압된 감정이 자연스럽게 분출되고 어느 정도 치유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두 번째, 브런치를 하면서 생각이나 감정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앞서 밝힌 감정의 분출과는 상반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감정을 분출하고 나면 어디를 끊고 어디를 손을 봐야 할지 가닥이 잡힌다. 부정적인 경험을 하면 옳고 그름을 따진 후 불필요한 감정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그 경험을 꼭 끌어안고 틈이 날 때마다 뚜껑을 열어보면서 감정에 사로잡힌다. 힘은 들더라도 글을 쓰기 위해 일의 전후관계를 따지고 결론까지 맺고 나면 나를 갉아먹는 감정 안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다.


또 오래 글을 쓰다 보면 감정이나 생각의 흐름 안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을 발견한다. 나는 글을 쓰면서도 끝없이 나에게 책임을 지우고 있었다. 학교폭력을 당한 경험을 쓰면서도 '나의 어떤 속성 때문에 그들이 그랬을 거야. 그럴만했어.' 하며 내게 책임을 떠넘겼고, 꼰대한테 된통 당한 경험을 쓰면서도 '내 성격이 문제'라는 전제를 달았다. 내가 한층 더 성장하기 위해 발전시켜야 할 부분을 찾는 것과 당연한 듯이 책임을 지우는 일은 다르다. 글을 쓰면서 그동안 내가 나 자신에게 얼마나 박하게 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글 쓰는 일을 습관으로 삼으면서 주기적으로 내 생활을 돌아보고 정리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시작도 하기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며 그 일이 끝날 때까지 온 에너지를 다 쓰고 뻗어버린다. 산더미 같은 일을 끝낸 지난 금요일엔 저녁 7시에 잠들어서 다음날 해가 중천에 뜰 때 일어났고, 잠깐 에너지를 보충한 뒤 다시 잠들어 다음날까지 잤다. 좀 부끄럽지만 지금 글을 쓰면서 어긋난 생활패턴을 되돌리고 있다. 글을 쓰려면 방도 좀 치우고 각을 잡고 책상에 앉아야 하니 인간답게 살기 위해선 브런치가 필요하다. 



나는 글쓰기 강사도, 유명한 작가도 아니지만 내가 적은 경험이 누군가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글쓰기를 지속할 힘이 되길 바라면서 글을 썼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글 비수기'를 겪는 내게 하는 다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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