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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호 Nov 19. 2019

작가의 얼굴

당신은 어떤 모습을 상상하십니까?

한 사람의 글을 오래 읽다 보면 그를 어느 정도는 알게 된다. '상대를 전적으로 알게 된다.'라고 쓰지 않은 이유는 한 인간을 완벽하게 안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타인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에세이에는 자신의 내면 이야기를 길어 올려 쓰는 경우가 많지만 그가 글 안의 감정만으로 현실을 살고 있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런 줄을 알면서도 글에 나타난 조각들을 끼워 맞춰 작가의 모습을 상상한다. ‘얼굴은 어떨 것 같고, 목소리를 어떨 거 같고’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고 좀 많이 나가는 날엔 ‘실제로 만나면 둘도 없는 친구가 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한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자연스레 ‘그렇다면 나의 글을 읽는 독자님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 혹은 상상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김칫국을 5000리터쯤 미리 마신 뒤 유명한 출간 작가가 돼서 사인회를 여는 일을 상상해 본다. 독자님들은 작가를 어떤 모습이라고 상상하고 오실까? 글을 읽으며 상상한 모습과 내 모습이 같다고 느끼실까, 다르다고 느끼실까? 혹시 실망을 하시는 건 아닐까? 지금이야 쓴 글이 얼마 없어서 기억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지만 글이 아주 많아진다면 그 안에서 추출되는 내 모습은 어떨까? 그쯤 되면 나 자신보다 내 글을 읽는 이들이 나를 더 잘 알고 있다고 해도 될까?

     

작문을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분들은 필자의 글을 두고 분석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그가 글을 쓰면서 어떤 문장 성분을 자주 썼는지 빈도를 분석하고 문장의 구성도 분석한다. 글의 흐름을 어떻게 끌어가는지도 분석 대상이다. 그 방법을 에세이에 적용해서 작가가 어떤 주제를 자주 썼고 글 전반 안에서 어떠한 감정을 주로 느꼈는지를 따져 볼 수 있을 것이다. 상대의 허락 없이 그런 짓을 벌일 일은 없지만 내 글에 한해서 해보고 싶기도 하다.      


예상한 대로 어제 쓴 글이 다음 메인과 카카오톡 채널에 올라갔다. 워낙 핫한 키워드로 써서 글의 수준과 별개로 다음카카오의 알고리즘에 걸린 것이다. 악플이라고 하면 유난스럽지만 받고 나서 기분을 모호하게 하는 댓글이 하나 달렸다. ‘시호는 공무원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딱 한 줄. 너무 친근하게 부르시길래 내 지인이 글을 보고 연락을 취한 줄 알았다. 평소 우리 외삼촌이 저렇게 말하시는데, 삼촌인가?   

   

글 한 편만 보고도 ‘내가 공무원 스타일이 아닌 것’을 알게 되셨다니 내가 글을 잘 썼나?' 하는 허영심이 하늘을 찌르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누군가 글만 읽고 그렇게 판단을 내릴 정도이니 공직에 들어서지 않길 잘했다.’싶어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어떤 마음으로 쓰셨는지 모르지만 좋게 생각하려 해도 기분이 썩 좋아지지 않아서 댓글은 지웠다. 작성자분의 상상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을 한 사람이었을까? ‘저는 ~~ 한 사람입니다.’라고 한 대서 상대방이 ‘아, 저 사람은 ~~ 하구나.’하고 전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데.     


17일까지가 브런치 북 응모기간이어서 브런치 북 발간 알람이 주기적으로 울렸다. 애초에 그럴 수준도 못되지만 브런치 북은 아예 나랑 먼 얘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는 있지만 아직 내 글의 방향성이나 특징을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앞서 잠깐 밝힌 대로 글이 어느 정도 쌓인 후 주제, 소재, 감정을 분석하면 어떻게 묶고 다듬어야 할지 가닥이 잡힐지도 모르겠다.

    

학생 시절 닥치는 대로 소설을 읽을 때는 양귀자 선생님의 책을 좋아했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원미동 사람들' 속  에피소드가 너무 재밌어서 작가님의 책을 거의 다 읽었다. 소소한 에피소드를 가지고도 글을 참 따뜻하고 맛깔나게 쓰신다고 생각했다. 글을 보니 마음도 따듯한 분일 것 같아 ‘친해지고 싶은 어른 목록’에 올려놓기도 했었다. 아직 속단하긴 이르지만 내 글이 그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도 좋을 것 같다.


글쓰기 관련 글을 자주 쓰는 것 같아 매거진을 따로 발간했다. 빠져나가 보려 애를 써도 결론은 '오늘도, 내일도 써야겠다.' 이다. 그래서 오늘도 썼다. 나는 오늘  내 글에 어떤 색을 입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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