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에 대하여
8월 말에 트레드밀에서 발등 통증을 느끼고 건막염 진단을 받은 뒤, 9월의 달리기는 처참했다. 미처 다 낫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저 의욕만으로 달리려니 몸도 마음도 모두 괴로웠다. 그러다가 10월 초 길고 긴 추석 연휴를 보내며 가능한 한 예전 상태로 몸을 되돌리기 위해 무리를 하지 않고 나니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10월의 달리기 결산은 다음과 같다.
모두 트레드밀 대신 야외 달리기다. 트레드밀에 비해 km당 페이스는 떨어졌지만, 그리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억지로 참아가면서 가혹한 페이스에 몸을 맞추기보다는 느리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은 적절한 페이스로 적당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달리기 궤적이 타원을 그리는 곳은 최근에 발견한 트랙이다. 공식 명칭은 영등포구 안양천체육공원 내 인라인스케이트장. 가장 바깥쪽으로 돌면 한 바퀴가 400m를 조금 넘고, 두 바퀴 반을 돌면 대략 1km가 찍힌다. 같은 곳을 맴도는 게 약간 지겹지만, 밤에 조도가 낮은 안양천변을 따라 달리는 게 그다지 쾌적하지 않아서 트랙을 돌아보기로 했다. 몇 차례 달려 보고 딱 열다섯 바퀴를 달리기로 결정. 그러면 6km를 조금 넘고, 시간은 30분이 채 안된다. 도쿄에 있을 때 처음으로 익숙하게 달리게 된 거리가 6~7km 정도였는데, 건막염으로 고생한 걸 감안해서 약간 줄였다고 생각하기로.
사실 인라인스케이트장 안에서 ‘조깅’은 하지 말라고 되어 있다. 입구 표지판에 그렇게 쓰여 있다. 그런데 밤에 찾아가 보면 조명만 켜져 있고 사람이 아무도 없다. 6 시대에 인라인 강사와 아이들 두세 명이 트랙 안쪽의 필드에서 턴을 연습하다가 7시가 되면 퇴장하는 것을 두어 번 목격했을 뿐이다. 나는 그들과 멀리 떨어져 가장 바깥쪽의 트랙을 달린다. 부딪힐 일도, 눈을 마주칠 일도 없다. 트랙 바깥쪽은 자전거와 함께 달리는 안양천변 도로를 생각하면 훨씬 안전하다. 특히 밤이면 더 그렇다. 그저 도로에 비해 훨씬 강한 ‘지루함'이 최대의 적이다.
지루함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봤다. 정확하게는 지루함을 이기는 방법에 대해. 벅스 앱에 30곡쯤 모아서 만들어 놓은 ‘달리기용’ 음악 리스트-주로 업비트의 걸그룹 댄스곡-을 주로 들으며 달렸는데 트랙을 달릴 때는 뭔가 답답했다. 곡이 바뀌면 풍경도 바뀌는 게 정상인데 풍경은 가만히 있고 곡만 바뀌니 생각이 몸을 따라가는데 약간의 오차가 발생하고, 그게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생각이 몸을 돌보는 것을 그만두게 되고, 그러다 보니 오버페이스를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적절한 ‘운동량’이니 트랙을 도는 속도를 좀 줄여야 했다. 그러다가 이걸 들으며 달리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카투사 시절에는 달리기를 엄청나게 싫어했지만, 20년 만에 케이던스(라고 한다)를 들으며 달리니까 트랙을 맴도는 ‘지루함’이 다소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기보다 지루함이 익숙해졌다고 하는 게 맞겠다. 지루함은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그냥 내내 지루한 채로 달리는 게 어쩌면 달리기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케이던스를 억지로 내뱉으며 새벽 PT시간을 견뎠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참으로 행복하지 않은가.
그래서 11월에는 10월보다는 조금 더 많이 달렸다.
엊그제 기온이 낮아져서 언더아머에서 비니를 하나 샀다.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달리기에는 돈을 들여야 한다. 그래야 본전 생각이 나서 조금이라도 더 달리게 된다.
아, 하나 더.
10월부터 실내에서 달리지 않는 대신 근육운동을 조금씩 시작했다. 프리레틱스니 버피테스트니 하는 걸 하면 좋겠지만, 그럴 만큼의 운동광은 아니어서 간단하게 땀을 내는 정도로. 먼저 팔굽혀펴기를 100개 한다. 20개를 하고 30초를 쉬고 다시 20개를 하고 쉬는 식으로. 20개씩 5세트를 하면 100개. 그리고 플랭크를 5분 동안 한다. 5분 내내 한 자세는 도저히 못하겠고, 가운데-좌측-우측을 처음에는 1분, 그 뒤에는 30 초씩 돌아가면서 자극한다. 이렇게 5분을 채우면 몸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플랭크가 끝나면 스쿼트를 100개. 이것도 팔굽혀펴기처럼 20개 하고 30초 휴식하는 방식으로. 모두 다 하는데 15분이 채 안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