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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May 06. 2022

마블의 확장이 가져온 빛과 그림자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와 마블의 미래

지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쿠키 영상으로 예고편이 공개된 이후 줄곧 기대감을 더해오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드디어 실체를 드러냈다. 과거 소니의 스파이더맨 트릴로지를 담당했던 샘 레이미 감독의 복귀와, 드라마 <완다비전>으로 스스로의 서사를 펼쳤던 완다(엘리자베스 올슨)의 합류 소식만으로도 기대감을 부풀리기에는 충분했으나, 아마 사람들이 기대하던 건 따로 있지 않았을까. 바로 광활한 멀티버스 속에서 등장할 수많은 카메오들. '누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영화'라는 말처럼, 이 영화가 지닌 가능성에는 한계가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예고편을 돌려보고 포스터를 뜯어보며, 어떤 캐릭터들이 등장할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추리하곤 했다. 누군가는 캐릭터들을 설명하는 분석 영상을 만들었고, 누군가는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복습 리스트를 만들어 이곳저곳으로 공유했다. 우리는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상상력을 펼치며 이 영화를 즐기고 있었다. 어쩌면 그랬기에 누군가는 공개된 영화를 보고 실망과 아쉬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예상과 달리 꽤나 심하게 호불호가 나뉘고 있으니 말이다. '대혼돈'이라기엔 카메오들이 너무나 미비했기 때문일까? 러닝타임 내내 풍기는 B급 향기가 조금은 낯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의 상상력이 너무나 커져버렸기 때문일까.



마블은 경계를 허물고 확장을 거듭하며 분명히 성장하고 있다. 인피니티 사가 이후 페이즈 4의 영화들이 모두 기존 MCU 작품들에 비해 평가가 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각각이 저마다의 색깔을 진하게 띠고 있다는 평가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으리라.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동양 판타지와 무협 액션을, <이터널스>는 혀를 내두를 정도의 훌륭한 영상미를, 그리고 이번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감독 특유의 연출 스타일을 살려 B급 호러와 컬트적인 재미를 MCU에 가져왔다.


MCU의 페이즈 4는 단순히 세계의 확장이 아니라, 장르의 확장이며 동시에 가능성의 확장이다. 원래부터 마블은 슈퍼히어로라는 장르에 또 다른 장르를 첨가하여 새로움을 만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기존의 것들이 첩보물이나 하이틴, 스페이스 오페라 등 할리우드의 메인 스트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반면, 최근의 작품들은 조금 더 매니악해졌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렇기에 여전히 마블에 열광하면서도, 실망의 목소리가 꾸준하게 들려오는 거겠지. 장르의 확장은 MCU의 색채를 다채롭게 하지만, 그만큼 기존의 색깔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마블이 새로운 캐릭터들과 새로운 공간을 소개하며 그들의 세계는 더욱이 넓어졌고, 세계가 넓어진 만큼 가능성의 범위 역시 잇따라 늘어났다. 서로 다른 프랜차이즈의 히어로들이 만나 힘을 합치는 건 더 이상 허황된 꿈이 아니며, 우리는 언제나 다음 어벤져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의 니즈를 반영하듯, 마블은 꾸준히 새로운 영화 속에서 기존 작품들 혹은 후속작들과의 연계점을 자아내고 있다. <샹치>에는 웡(베네딕트 웡)이 등장했고, <이터널스>에서는 타노스가 언급되며, <노 웨이 홈>에서는 역대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캐릭터들이 대거 출동했다. 마찬가지로 이번 영화에서 또한 멀티버스를 이용해 다른 작품의 캐릭터들을 불러왔고 말이다.


이는 언뜻 작품 간 연계가 잘 짜인 MCU의 장점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나는 이것이야 말로 확장의 그림자라고 생각한다. 높아져 가는 진입장벽만이 마블의 약점이 아니다. 자꾸만 다른 캐릭터들의 등장을 기대하게 되는 우리의 상상력이야말로 마블의 가장 큰 적이 될 것이다. 상상은 결코 죄가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사람인 이상 그 상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소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라는 거대한 기적을 이미 경험했기에, 어쩌면 우리는 그 이후로 계속해서 실망해오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페이즈 4가 시작되고, 인지를 뛰어넘은 우주적 존재들의 등장과 멀티버스를 아우르는 범우주적 위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블의 계속된 확장에는 분명 커다란 청사진이 존재할 것이다. 각각의 작품들이 모두 제2의 어벤져스가 모이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젠가 찾아올 순간을 믿고, 이대로 실망을 거듭하며 기다려야만 하는 걸까? 우리도, 마블도 모두 다른 길을 찾아야만 한다.


작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의 주인공임에 틀림없다. 주인공의 모험, 주인공의 고뇌, 주인공의 위기와 성장이 그 무엇보다도 중심에 있어야 한다. 이번 작품을 예로 들자면, 일루미나티의 일원들이 누구누구인지 보다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와 크리스틴 팔머(레이첼 맥아담스)의 이야기가 더 중점적으로 다뤄졌어야 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닥터 스트레인지니까. 결말에서 보여준 그의 새로운 출발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그 감정선에 더욱 집중했어야 했다.


볼거리는 중요하다. 팀업을 전제로 하는 히어로 영화의 특성상 작품 간 연계 또한 분명히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성급한 팀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DCEU), 마구잡이식의 확장이 얼마나 작품성을 떨어트리는지(SSU) 모두 지켜봐 오지 않았는가. 무리하게 확장에 집착하지 말고, 조금은 천천히 걸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도 조금은 그들 개개인에게 집중해도 괜찮지 않을까. 언젠가 어벤져스는 새로운 멤버들과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테지. 그때까지 실망하며 기다리기보다는, 조금 더 영웅들에게 다가가며 그들과 함께하는 게 영화를 더 즐길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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