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ni Jun Nov 01. 2022

멀티버스의 도입은 마블에게 독이었던 걸까?

흔들리는 MCU를 잡아줄 '그'가 오기까지

MCU 속 이야기의 무대는 시간이 흐르며 점점 확장되어 갔다. 미국에서 전 세계로, 지구에서 출발해 드넓은 우주 속으로. 그리고 지난 7월 '멀티버스 사가'가 발표되며 이제는 무한한 공간, 저 너머까지도 우리들의 무대가 되었다. 지나가버린 과거의 작품들이 멀티버스의 문을 통해 MCU와 이어졌고,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들이 그 속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광활히 뻗어나가는 MCU의 확장에는 한계라 부를 것이 없었다. 그저 상상할 수 있다면, 그 꿈이 곧 현실이 될 수 있는 멀티버스 사가가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이 멀티버스에 대한 우려 역시 그 기대 못지않게 상당하다. 캐릭터의 가벼운 소비나 멀티버스 만능주의 등을 차치하더라도, 방대해진 무대와 쌓여가는 설정들은 그 자체로 피곤함이 되며, 이를 설명하기 위한 OTT 플랫폼의 작품들은 구독 피로감이라는 또 다른 압박으로 다가오고는 한다. 팬데믹 속에서도 건재했던 마블 파워가 이제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말 마블은 다 계획이 있는 걸까? 멀티버스는 과연 우리를 즐겁게 만들어줄까? 믿어 의심치 않았던 마블의 행보에 나부터가 자꾸만 걱정을 키우고 있더라. 마블 공화국을 세울 정도로 찬란했던 MCU였는데. 대체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휘청이게 만들었을까.



타노스는 우주의 균형을 맞추고자 했다. 그 수단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나오겠지만, 균형된 상태를 추구했던 그 마음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으리라. 마치 이러한 그의 의지가 반영된 듯, MCU의 제1막 인피니티 사가는 시리즈를 이어가며 하나둘 요소들의 균형을 이루어갔다. 지구와 우주, 현재와 과거, 그리고 무엇보다 과학과 마법이 함께 맞물리며 서로를 보완해주었다.


신화 속 인물들이 날아오고, 하늘에서는 외계인이 떨어지며, 하다 하다 마법사들까지 등장한 곳이 마블의 세상이다. 그러나 MCU의 중심에는 과학이 있었기에. 마블 영화는 우리에게 여느 판타지와 차별화된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기계공학, 핵물리학, 양자역학. 학문의 이름만으로도 각각의 히어로가 떠오를 정도로, 마블은 이야기에 과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난생처음 보는 판타지가 나타나더라도 그들이 과학을 통해 미지를 밝히고자 했기에, 우리 역시 그들을 따라 보다 더 쉽게 새로운 설정들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인드 스톤을 앞에 두고 토니와 배너가 마주 서서 나눈 대화들을, 스캇의 시간여행 가설에 토니가 내놓은 장황한 반박들을, 우리가 다 이해하지는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야 우리는 그들처럼 박사학위를 몇 개씩이나 갖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상의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 세상의 이론들을 통해 미지를 설명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당시에는 그들의 대화를 전문가와 함께 되짚어보는 콘텐츠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그러한 2차 콘텐츠들이 마블을 즐기는 또 하나의 요소가 되고는 했다.



이처럼 인피니티 사가에는 판타지로 치우칠 수 있는 이야기를 잡아주던 과학이 있었다. 물론 판타지도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경이롭고 신비한 판타지는 그 자체로 개연성을 이루니까. 하지만 그건 MCU가 아니겠지. 강철 슈트의 비상으로부터 시작된 시리즈에서 어찌 과학을 빼놓을 수 있으랴. 그런데 인피니티 사가 이후 시작된 페이즈 4는 조금 달랐다. 여전히 과학의 자취는 남아있다. 드라마 <완다비전>의 달시 루이스(캣 데닝스)는 천체물리학을 통해 이상공간(헥스)을 해석했고, <미즈 마블>의 브루노(맷 린츠) 또한 드라마의 가벼운 톤 속에서 나름의 과학적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작 멀티버스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이 있었는가. 인피니티 사가의 중심이 인피니티 스톤에 있었듯이, 멀티버스 사가의 핵심은 필시 멀티버스라는 개념일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피터 3(앤드류 가필드)가 초끈 이론 등을 언급하며 혼잣말을 한 것이 과학적 접근의 전부다. 인피니티 스톤의 에너지를 방사선을 통해 규명하고, 미러 디멘션의 구조마저 기하학으로 풀어갔던 마블이거늘. 과학이 배제된 멀티버스는 어느새 카메오들의 쇼케이스로 변질되고야 말았다. 어쩌면 관객들이 지금의 MCU에 예전만큼 빠져들지 못하는 것도, 설명 없이 그저 보여주기에만 급급한 페이즈 4의 진행 때문이지 않을까.



샹치, 이터널스 그리고 문나이트. 마블은 의도적으로 과학을 피하기라도 하는 듯 페이즈 4의 대부분을 초자연적 존재들에게 할애했다. 대체 그들은 무엇을 위해 이토록 과학의 등장을 아끼고 있는 걸까. 커져만 가는 아쉬움과 답답함이 쌓여 한계에 다다랐을 즈음, 마블은 단 하나의 영상을 통해 그 답을 내주었다. 2023년 개봉 예정인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예고편에 드디어 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정복자 캉(조나단 메이저스). 본명은 너새니얼 리처즈. 멀티버스의 존재를 알아낸 아득히 먼 31세기의 과학자다.


예고편 속 그는 슈트를 입고 하늘을 날며 첨단의 군대를 이끌었다. 원시적으로 그려져 온 양자 영역 속에 그만한 미래 왕국을 세우다니. 드라마 <로키>에서의 언급이나 원작의 설정을 알지 못하더라도, 그가 분명 과학에 능통해있음을 우리는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마블이 이제껏 멀티버스에 대한 설명을 아껴온 건 혹시 캉이라는 적임자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었을까? 앞선 인피니티 사가에서 영웅들이 우주적 힘을 과학으로 다뤄냈듯이, 마법과 신화로 시작된 멀티버스 사가에서는 반대로 빌런이 과학을 주도할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마블의 새 소식에는 옛날이 그립다는 댓글이 심심찮게 달리기 시작했다. 토니와 스티브가 함께하던 시절. 작품들이 촘촘히 연계되어 세상을 채워가던 시절. 마법 같은 과학과 과학 같은 마법이 제빛을 뽐내며 나아가던 시절.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MCU는 균형을 잃은 듯이 보이기도 한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지나가듯 추가되는 설정들에 마니아는 웃더라도 대중들은 지쳐갔다. 우리도 그들과 함께할 수 있게, 공통의 지식으로 조금만 더 설명해주었더라면. 분명 페이즈 4도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페이즈 4는 미래를 위한 초석일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멀티버스의 이야기, 신들의 이야기 그리고 정복자 캉의 등장을 위한 초석. 물론 캉이 나타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 하지만 누구보다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잘 다뤄낼 그라면, 우리에게 다시금 과학의 동아줄을 내려줄 그라면. 독이 되어버린 멀티버스를 장악한 뒤 우리들의 마음까지도 휘어잡을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평균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는 마블이지만, 내 마음속 열기는 어쩐지 예전 같지가 않다. 토니의 빈자리 때문일까. 갑작스레 바뀐 MCU의 톤 때문일까. 마블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멀티버스는 아직 우리들의 꿈을 이루어주지 못했고, 아쉬움과 피로감만 키워가며 MCU의 독이 되고 있다. 그래도 마침내 등장한 캉의 모습이 너무나 압도적이었기에, 산개된 페이즈 4의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일 가능성을 그에게서 발견했기에, 다시 한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러니 흔들리는 MCU를 잡아줄 그가 오기까지, 머지않아 세워질 <캉 다이너스티>를 그려보며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배우 심달기가 보여준 아픔들을 돌아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