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게 있어 <범죄도시 시리즈>가 온전히 빠져들기 쉬운 작품들은 아니다. 내가 장르로서 액션을 그다지 선호하지도 않거니와, 육체형 캐릭터보다는 지능형 캐릭터에 더 끌리기에. 마석도(마동석)의 주먹으로 악인들을 때려잡는 이 시리즈가 내게는 조금 멀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1편과 2편 모두를 긍정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건, 필시 장첸(윤계상)과 강해상(손석구)의 강렬함 덕분이리라.
손도끼를 내리찍고, 마체테를 휘두르고. 말 그대로 한국 영화에서는 흔치 않은 야수적인 액션이었다. 그러면서도 세력을 확장하고 적의를 간파하며 탈출을 꾀할 때에는 지능적 면모까지 보여주었으니, 빌런의 매력에 기꺼이 빠져들 수밖에. 그들이 무리의 우두머리로서, 또 한 마리의 사나운 늑대로서. 작품 속에서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냈기에, 영화 <범죄도시>는 여타 ‘마동석 영화’들과는 달리 흥행을 계속하며 시리즈로 이어질 수 있었다.
소포모어 징크스라고 하던가. 1편보다 나은 속편은 나오기 어렵다고들 하지만, <범죄도시 시리즈>는 개봉을 거듭할수록 착실하게 발전하고 있다. 단지 그 방향이 내가 원하고 기대하던 쪽과는 달랐을 뿐이지. 가벼워지고, 밝아지고, 빨라지고. 코미디를 곁들인 스릴러에서 스릴러가 첨부된 코미디로. 상영 등급은 낮아졌으며 상영 시간은 짧아졌다. 분명 누군가에게는 이 변화가 긍정적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실제로 700만을 앞에 두었던 1편을 넘어 <범죄도시 2>는 팬데믹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1,000만 관객 돌파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시리즈의 기조를 이어가는 3편 역시 기록적인 오프닝 스코어를 보인다는 점에서, 분명 영화는 옳은 선택을 한 것일 테다. 더 많은 관객이 더 큰 재미를 얻고, 그렇게 영화가 더 높은 수익을 이룬다면, 그것이 곧 정답일 테지. 그러니 나도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보내줘야 하겠지만, 글쎄, 나 한 명 정도는 아쉬움을 느껴도 괜찮지 않을까. 여전히 재밌고 또 믿고 보는 영화지만, 조금씩 쌓여가는 아쉬움에 노파심이 올라왔다.
앞서 이야기했듯 <범죄도시 3>는 코미디의 측면에서 여전히 높은 타율을 보였다. 전 변호사에 이은 주 변호사와의 만남도 유쾌했고, 김만재(김민재)나 김양호(전석호) 등의 캐릭터들은 마석도와의 합은 물론 그들 자체로도 상당한 재미를 남겼다. 마동석의 캐릭터들에게 너무 많이 반복되어 이제는 그만했으면 싶은 ‘영단어 잘못 말하기’도, 내게는 억지스러웠을지언정 실제 상영관 속 분위기는 좋았고 말이다. 단지 내게 턱 걸렸던 아쉬움은 그 성취 뒤에서 영화가 빌런의 희생을 선택했다는 점이었다.
이번 작에는 메인 빌런이 두 명이나 있고, 또 그들의 수하 격 캐릭터들도 다수 등장하지만, 정작 내 기억에 남은 인물은 주성철(이준혁)도 리키(아오키 무네타카)도 아닌 마하(홍준영)뿐이었다. 마치 격투 게임의 캐릭터인 양 붉은 정장을 걸친 그의 액션은 시리즈 최고라 불러도 부족할 정도로 놀라웠고, 이후 실제 선수분께서 연기하셨다는 걸 알게 되자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여기까지만 해도 아쉬움은 작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정작 메인이 되어야 할 리키와 주성철은 어땠는가. 두 캐릭터 모두 묵직한 분위기를 풍기고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관객의 기대를 끌어올렸지만, 결국 마석도와의 충돌은 너무나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단적으로 비교해서, 1편의 공항 화장실 전투, 2편의 마지막 버스 전투와 비교해서 본작의 구룡 경찰서 전투는, 적어도 내게 있어, 그만한 임팩트를 남기지 못했다.
물론 액션으로만 봤을 때에는 마석도의 연타를 볼 수 있어 새로움이 있었지만, 이런들 저런들 대적자에게 빠져들지 못했기에 영화의 클라이맥스로서는 인상적이지 못했다. 혹시 영화는 빌런을 마석도와 ‘맞서는’ 인물이 아니라 단지 마석도에게 ‘쓰러질’ 인물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들만의 서사가 생략된 채 그저 몇 차례 충돌하다 꺾일 뿐이라면 앞서 쓰러져간 단역들과 무엇이 다른 걸까.
이 시리즈 속에서 마석도는 절대적일 정도로 강하다. 그가 승리하는 것은 당연하고, 적들의 몽둥이질에 그가 쓰러지지 않는 것도, 그의 주먹 한 방에 적들이 쓰러지는 것도 역시 당연하다. 때문에 <범죄도시 시리즈>는 히어로와 빌런 사이에서 오가는 액션의 핑퐁보다는 악을 때려잡는 권선징악의 희열에 초점을 두어 왔다. 이를 위해 결말 직전까지도 주인공인 마석도보다 장첸이나 강해상의 행적에 더 많은 조명을 비추었고, 그렇게 그들을 강렬한 악인으로 완성해 갔다.
마치 스크린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그들이 우리를 덮쳐올 것만 같이. 자라나는 긴장과 공포가 빌런을 빌런답게 만들었고, 이는 자연히 그들을 때려잡을 마석도의 완성으로도 이어졌다. 빌런이 소비되지 않고 제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었기에, 우리는 마석도 앞에서 고꾸라지는 그들의 모습에도 시시함 대신 통쾌함을 맛볼 수 있었으며, 긴장 속에 곁들여진 유머에도 편안하게 웃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3편의 빌런들은 스크린의 장벽을 넘지 못한 채 그저 ‘빌런 A, B’로만 남고 말았다. 사실 그들은 시리즈의 인플레이션에도 묻히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존재감을 뽐낼 수 있었으리라. 장첸의 손도끼, 강해상의 마체테와 같이 그들에게는 각각 일본도와 권총이라는 트레이드 마크가 있었고, 거대한 세력을 지닌 야쿠자와 경찰 내부의 적이라는 캐릭터성,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열연이 합쳐져 어쩌면 그 장첸에 맞먹는 이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키의 경우 일본어에 일본도를 쓴다는 점을 제외하면 야쿠자라는 특이성이 발휘되지 못해 2편의 조은캐피탈과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쿠니무라 준의 특별출연에도 불구하고 조직으로서의 대응이 적었다면 차라리 1편의 흑룡파처럼 작품 바깥에만 존재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주성철 역시 세관 언급이나 문서 파기 등을 빼면 경찰 지위를 이용해 우위를 점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기에, 오히려 리키보다도 유의미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정리하자면, 영화의 코미디는 좋았다. 액션도 좋았다. <범죄도시 3>는 결코 못 만든 영화도, 재미없는 영화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여전히 1편을 떠올리고 장첸을 그리워하는 건, 필시 그때의 색깔이 점차 옅어지고 있기 때문이겠지. 범죄 느와르에서 일종의 버디 캅 코미디로. 마석도와 김만재 콤비를 보고 있자면 시리즈 1편보다는 오히려 영화 <공조>의 실루엣이 더 먼저 다가온다.
팬데믹 이후 더욱 심해진 한국 영화의 부진, 아니 영화계 전체의 침체를 생각하면, 이렇게 평균 이상의 작품이 개봉되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벌써 후속의 후속까지 계획된 이 시리즈가 선택한 방향성이 과연 앞으로도 이제까지와 같은 성과를 이뤄낼 수 있을까. 이야기의 밀도가 줄어들고 캐릭터가 쉬이 소비되어 버린다면, 결국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다시 1편의 색으로 돌아가든, 혹은 지금의 경향을 이어가든. 부디 4편에서는 빌런을 제물로 삼지 않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