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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Dec 04. 2018

비밀, 거짓 그리고 진실, <부탁 하나만 들어줘>

비밀은 사람을 아름답게 할까

영화가 끝난 뒤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보며, ‘이 영화에 대해 스포일러 없는 리뷰를 쓸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반전이 너무 강렬할 때, 이를 알고 보면 재미가 훅 떨어지고 동시에 이에 대한 내용을 빼면 딱히 할 말도 없어져버린다. 홍보성 글은 쓰고 싶지 않았기에 한참을 고민하던 중, ‘어차피 내 생각을 쓰는 거라면 굳이 영화 얘기를 안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영화 리뷰하는 사람 입에서 나오면 안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일까. 적당한 영화 얘기와 적당한 내 생각, 절충점을 찾아보자.


A secret makes a woman woman
(비밀은 여자를 아름답게 만든다)


만화 <명탐정 코난>의 등장인물 베르무트의 명대사인 이 문장은, 문법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 신비주의스러운 캐릭터의 특징을 함축적이고 임팩트 있게 표현한 대사로 많은 코난 독자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정말로 위 글귀처럼 비밀은 사람을 아름답게 할까?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기 전에 우선 비밀에 대해 알아보자면, 먼저 ‘비밀’은 그 사전적 정의에도 나와 있듯이 진실을 알지 못 하게 할 상대방이 필요하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면 모든 것이 나만 아는 비밀인 동시에 모두 – 나 혼자지만 – 에게 알려진 것들일 테니 말이다. 즉, 비밀은 나 이외의 누군가가 존재할 것을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해 사회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비밀은 ‘거짓말’로 이어진다.



한 가지 상상을 해보자. 2인 이상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어느 마을에서 A라는 인물에게 비밀이 생겼다. A는 마을이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다른 사람들과 원하든 원치 않든 부딪히게 되고, 이 과정에서 다른 누군가가 우연히 혹은 어떠한 의심을 품고 그 비밀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올지도 모른다. 이때 A는 어떻게 할까? 비밀은 숨겨야 하는 것이니 일단은 대답을 회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마을에 살며 매일 만나고 매일 질문을 듣는다면 언제까지고 피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결국 A는 거짓말을 하게 된다. 영화 <부탁 하나만 들어줘> 속 인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서로의 가장 부끄러운 과거를 이야기하면서도 에밀리는 아무렇지 않게 쓰리썸을 했다고 말한 뒤 스테파니의 대답을 재촉하고, 스테파니는 계속 말끝을 흐리다 결국 거짓말을 한다. 물론 거짓말의 고수인 에밀리에게 이제 거짓말 첫걸음을 뗀 스테파니의 비밀은 바로 들통나지만 말이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와서, 그래서 비밀이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일 때문에 학교 모임은 물론이고 모습 자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에밀리는 비밀의 베일로 꽁꽁 싸인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한 가지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면, 지나치게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가 있는 곳이면 학교 주차장이 패션쇼장이 되고 동네 공원이 화보 촬영지가 된다. 물론 에밀리를 연기한 블레이크 라이블리 본인도 아름답지만, 여기서는 그를 표현하는 것들에 주목하자. 찰리 채플린과 같이 모자에 지팡이까지 든 정석을 따른 슈트, 포르쉐와 호화주택이 에밀리라는 인물의 공백을 온갖 고상함과 아름다움으로 메운다. 실제로 해외 언론에서는 에밀리의 패션에 대해 ‘입이 떡 벌어지는(jaw-dropping)’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그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비밀을 감춘 채 살고 있다. 때로는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때로는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이와 동시에 비밀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한다. 나 역시 거짓말을 할 때가 있다. 일례로 살고 있는 곳을 질문받았을 때, 동 이름을 말해도 아무도 모르길래 그때마다 “서울에 거기 아시죠? 거기 근처예요~”라고 설명하기 번거로워 언제부턴가는 그냥 옆에 있는 더 알려진 동네에 산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 한편에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쌓여 간다. 어린 시절, 아직 거짓말이라는 걸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부터 거짓말은 나쁜 것이라 배워왔다. 물론 그렇게 배웠음에도 그때그때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때때로 거짓을 말하며 살아왔지만 말이다. 그런데 지금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거짓으로 가득하고, 이제는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은 바보가 된다고 한다. 그럼 비밀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까? 글쎄, 일단 거짓을 말하지 않으면 아름다울 수는 없나 보다.



영화 속 세 명의 주요 인물 – 스테파니, 에밀리, 션 – 은 모두 거짓말을 한다. 에밀리와 션은 비밀을 감추기 위해 거짓을 내면화시켰으며, 스테파니는 에밀리의 거짓을 밝혀낸다는 명분 아래에서 필요에 따라 자신의 신분을 위장했다. 에밀리의 가르침처럼 그도 언제나 해맑게 진실만을 말하며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예전에 나는 한 번 절대로 비밀을 만들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 채 살아본 적이 있다. 당연하게도 이로 인해 불필요한 감정 다툼이 생겼고, 그럴 때마다 융통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자기 멋대로인 다짐이긴 하지만 사실 지금도 이 생각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생활하는데 나와 상대방 모두 매우 피곤해질 뿐이지……. 자기 혼자 진실 되게 살겠다고 해도 그건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경험이며 사실이고, 세상을 살아가려면 ‘융통성’이 요구된다. 그렇지만 영화를 본 뒤 나는 마음속에 또 한 번 작은 다짐을 했다.


겉치레와 가식으로 점철된 포르쉐보다, 조용하고 치명적인 하이브리드를 타겠다고.


*이 앞에는 (영화의 반전과는 큰 관련이 없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에는 단 한 명,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바로 스테파니, 에밀리와 같은 학급의 학부모인 대런이다. 그는 보는 사람이 지칠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스테파니에 대해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험담하며 이런 태도를 스테파니에게 숨기지 않았다. 그러다 후에는 자신이 스테파니의 V-log를 즐겨 보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고마움을 전하는데, 자신의 방송을 봤다는 사실에 놀라는 스테파니에게 ‘사실 보고 놀림거리로 삼으려고 본 거였다’라고 말하며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될 것까지 숨김없이 이야기했다. 심지어 잘못된 정보로 집에 경찰특공대가 들이닥치자 마약의 ‘마’ 자도 나오지 않았는데 의료용 마리화나가 있다며 바로 자진신고를 하는, 정말 거짓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리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모든 사건의 끝에서 마치 영웅처럼 등장하는 그의 조용하고 치명적인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이 영화가 진실과 거짓을 어떻게 비추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진실은 바로 그런 거다. 포르쉐처럼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아도, 우리 곁에서 조용히 세상에 나올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 그리고 때로는 거짓을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진실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비밀이 사람을 아름답게 할까? 영화를 보고 스스로에게 한번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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