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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Feb 04. 2019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주먹왕 랄프 2>

불편하면서도 이해되는 그들의 행동


<주먹왕 랄프>는 내게 있어 가장 사랑하는 극장 애니메이션 중 하나다. ‘미움받는 자’라는 주인공 설정과 여타 해피엔딩 스토리와는 다른 개성 있는 엔딩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새로웠다. 영화는 단순히 주인공이 왕자님이 되어 모두에게 환영받고 사랑받으며 끝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정체성을 새로이 확립하는 인물상을 제시했다. 때문에 후속작인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는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니리라. 기대가 높았던 만큼 실망도 크게 오는 걸까, 영화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호불호가 갈리며 1편의 영광을 누리지는 못하는 듯했다. 나도 이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쌓아 올린 캐릭터는 붕괴되었고 그들의 행동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화가 났다. 안타까웠다. 랄프와 바넬로피가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시선을 돌릴 수는 없었다. 순간 내가 바라보는 것이 스크린이 아니라 거울처럼 느껴졌으니까.



이번 영화에서의 랄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집착의 화신’이었다. 친구인 바넬로피에게 집착해 다른 캐릭터들의 게임을 망쳐놨으며, 인터넷 세상 전체를 무너뜨릴 뻔했다. 랄프는 익숙한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는 바넬로피가 자신을 떠날까 봐, 그리고 자신이 혼자 남겨질까 봐 두려워했고, 이 두려움은 의심이 되고 분노가 되어 결국 바이러스의 모습으로 터져 나왔다.


랄프가 집착하는 대상인 바넬로피도 그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단지 집착의 대상이 인물이 아니라 ‘꿈’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바넬로피는 인터넷 세상에서 자신의 꿈을 구현해놓은 듯한 새로운 게임을 만났고 그곳에 매료되었다. 스릴 넘치는 매력에 빠진 그는 자신이 있어야 했던 본래의 게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랄프와의 약속마저 잊어버렸다. 열정적으로 자신의 꿈을 좇는 행위는 매우 바람직하고 칭찬받아야 할 행위다. 하지만 목표에 맹목적이 되어 주변에 상처를 입힌다면, 그것은 이기적인 고집불통에 불과하다. 때문에 두 캐릭터들의 행동은 충분히 비판받을 만했다. 나 역시도 보면서 불편함을 느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한순간, 마치 손바닥을 뒤집듯이, 그들이 이해됐다.


나도 그랬으니까.


친구에 집착했고, 사랑에 집착했다. 변하지 않는 지금 이대로가 좋았고, 언제나 손이 닿는 거리에 친구가 있으면 했다.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붙잡지 않으면 사람은 모두 떠나갈 거라고 믿었다. 내 꿈을 위해 남들을 옭아매고 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랄프와 바넬로피가 함께 게임센터로 돌아가는 엔딩을 기대했고, 디즈니가 보여준 엔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캐릭터들은 각자의 길을 나아갔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서로 화해하고 우정을 재차 확인했음에도, 둘의 발걸음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임에 틀림없다. 섕크의 대사처럼, 친구라고 꼭 같은 꿈을 꿀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설령 손이 닿지 않더라도, 목소리가 닿고 마음이 닿는다면 두 사람은 함께 있는 것이라는 걸 배웠다. 우리 모두는 마음속 어딘가에 랄프 같은 혹은 바넬로피와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화는 스크린 속 두 캐릭터들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를 되돌아볼 기회를 만들어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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