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특정 국가나 정당을 지지하지도 혐오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항상 복잡한 세상이었지만, 요즘 들어 부쩍 더 복잡하게 느껴진다. 연일 뉴스에서는, 전략물자 수출 시 우대를 받는 '백색 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고 밝힌 일본에 대한 소식이 반복 재생되었다. 이는 상당히 커다란 일이다.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면, 한국으로의 부품 수출 허가에 필요한 절차가 복잡해지고 당연히 걸리는 기간은 그에 비례하여 길어지게 된다. 다시 말해, 제품 생산에 필요한 부품이 한국 공장에 도착하기까지의 기간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이로 인해 모든 공정이 지연되고, 결과적으로 한국의 제조업 생태계가 마비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당장 7월부터 반도체 소재의 수출이 사실상 금지되었기에, 반도체 강국이었던 한국은 벌써부터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저항으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발표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시작되었다. '독립운동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불매운동에는 참여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사람들은 너도 나도 불매운동에 동참했다. 일본 기업과 그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국내 기업들을 정리해 놓은 리스트가 만들어졌고, 마트의 진열대에서는 일본산 제품들이 사라졌다. 나는 이 불매운동을 함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를 반대하거나 참여자들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 운동에 참여하는 것도, 부분적으로만 참여하거나 혹은 아예 참여하지 않는 것도 모두 개인의 자유이자 선택이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강요할 필요도, 다른 한쪽을 비난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건 그냥 그 사람의 자유니까.
내 주변에는 의외로 적극적으로 불매운동에 지지를 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생각보다 의외였다. 그들이 불매운동에 참여한다는 점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생각을 밖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잠시 한일 관계가 아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곳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부터 내 속에 상반된 두 가지 마음이 자리 잡았다. 하나는, 모처럼 얻은 기회이니 마음속에만 담아놓았던 이야기들을 남들과 나눠보고픈 소망. 흔히 '커뮤니티의 금기'라고 불리는 정치, 성별, 종교에 관한 이야기들,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사회이슈들에 대한 이야기들.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나는 어떤 질문을 받고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
행복한 고민들에 빠져 스마트폰 메모장이 꽉 차도록 아이디어들을 기록했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그 아이디어들은 메모장 안에만 묻혀 있었고, 나는 글을 쓰지 못했다. 글을 쓰려고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는 순간, 나의 소망과는 반대되는,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걸까, 악플을 받으면 어떡하지?
모두가 나에게 실망하고 돌아서면 어떡하지?
나는 언제나 겁쟁이였다. 논의의 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며 약한 자신을 잊으려 했지만, 대중의 문 앞에 서자 그 얄팍한 최면이 풀려버리고 말았다. 나는 결국 글을 쓸 수 없었다. 이후에는 원래대로 영화에 관한 글들만 적었다. 그러다 최근 옳다고 믿었던 나의 생각들이 과연 정말 옳은 것인지, 나는 이대로 글을 쓰고 이대로 생각하며 살아도 괜찮은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일본의 문화를 즐긴다. 그래도 괜찮은 걸까. 혹시 나는 잘못된 사람인 걸까. 말 그대로 쓸데없는 고민의 늪에 빠졌었다. 그러다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자신의 신념을 따르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존경스러웠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말했듯이 나는 불매운동에 동참하지 않고, 오히려 일본의 문화에 호감을 갖고 있다. 그 나라의 애니메이션을, 소설을, 음악을, 영화를 좋아한다. 어린 시절 비디오테이프를 산처럼 쌓아놓고 포켓몬과 디지몬을 봤던 시절부터 - 그땐 그게 어느 나라 만화인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 이 마음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일본의 대중문화와 함께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 속에 담긴 음식문화나 일상의 풍경에 익숙해지게 되었고, 이에 관련된 성우와 배우, 작가 분들까지도 좋아하게 되었다. 설령 앞으로 두 나라의 관계가 더욱 악화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이 문화들을 계기로 나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 서로 같은 것을 보고 즐기며, 각자의 의견을 공유해왔다. 그 사람의 국적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SNS는 글로벌하니까.
누군가는 내게 왜 일본을 미워하지 않는지, 불매운동에는 왜 동참하지 않는지 물을 지도 모른다. 글쎄. 국가 간의 갈등으로 인해 사람과 사람의 인연까지 끊어야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변질된 것이 아닐까.
여기서 한 가지 확실히 하자면, 난 딱히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 나라에 대해서는 특별한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저 내게 추억을 만들어준 문화들을 사랑하는데, 그중 일본의 문화도 있을 뿐이다. 물론 이는 한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글의 첫 줄에 특정한 국가나 정당을 지지하지도 혐오하지도 않는다고 적었다. 지지한다고 해서 '빠'가 되고 싶지도, 혐오한다고 해서 '까'가 되고 싶지도 않다. 마음에 드는 부분은 좋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좋지 않을 뿐이다.
예를 들어 볼까? 어떤 나라가 좋은지 싫은지는 무엇을 근거로 판단하는 걸까? 말하자면 국가 브랜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 기준은 모두 다를 것이고 같은 기준 내에서도 척도가 천차만별일 것이다. 나 같은 경우 중요한 것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벌써 20년도 넘게 살아오며 내린 결론은, 어느 날은 좋았고 어느 날은 나빴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가? 그래서 나에게 한국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어서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만 살아온 나는 일본에 대해서도 ''안 살아봐서 모르겠어요.''라고 답하지 않을까.
정당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 다른 당들에게는 죄송하지만 -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두 당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고 묻는다면, 이 역시 ''글쎄요.''나 ''둘 다 아닌데요.'' 같은 애매한 대답이 나오게 된다. 지난 제19대 대선 기간, 첫 투표권 행사에 두근거리며 공약집을 하나하나 읽었었다. 각 후보들의 공약 중 마음에 드는 것에 동그라미를, 아닌 것에 세모를 표시했더니, 심지어 14번 후보의 공약에서도 좋은 아이디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어떤 후보도 완전한 동그라미나 완전한 세모를 받지는 못했다. 누구도 혼자만으로 모두의 - 적어도 나의 -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는 없던 것이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생각을 보완하거나 다른 이의 의견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만이 옳다며 타인을 힐난하고 혐오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 말이다.
슬슬 이번 한일 갈등 이야기를 하며 글을 마무리지어야겠다. 화이트리스트 제외 건은 한국과 일본 사이 국제무역에 관한 일이다. 구성요소들이 다각화되고 다원화되어 복잡하게 얽힌 현대 사회에서 어떠한 사건을 다른 사안들로부터 분리하여 다루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를 정치나 문화의 영역으로 끌어 와 혐오를 확산시키는 것만은 지양해야 한다. 물론 이번 일은 양국에게 있어, 한국에게는 특히 더, 이전까지의 한일 갈등과는 수준이 다르게 중대한 일이다. 그렇기에 격한 반응들도 당연한 일이리라.
그러나 두 나라 모두 지금 당장의 감정보다는, 조금 더 미래의 상황을 고려해야만 한다. 한국과 일본은 식민 지배의 역사를 지니고 있기에 감정의 골이 깊게 패어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현재는 미국을 중심으로 군사적 협력관계에 놓여 있으며, 수많은 문화와 사업의 교류가 계속되어 왔다. 서로에게로의 관광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미국을 경유해있을 뿐 설령 동맹은 아니라 할지라도, 부딪히기 쉬운 이웃나라와의 합리적인 상생방안을 찾는 것이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손해보다는 이득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를 위해서는 하루빨리 논의의 장이 열려야 한다. 이는 비단 정치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염없이 그들을 기다릴 것인가?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
이미 각 나라 내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상대 나라를 향한 혹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향한 분노가 커져 사회는 양분되었고, 그 결과 서로 대립하는 파벌이 형성되었다. 과연 지금의 상황이 계속되어 행복할 사람은 누가 있을까. 국민들의 감정을 극단으로 몰아붙여 웃을 수 있는 건, 결국 정치인뿐이다. 실제로 이미 불매운동에 정치적 프레임을 씌워 총선에서의 득표로 이어가려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재차 말하지만 나는 자유한국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굳이 고르자면 이쪽은 혐오에 가까울 정도다. 그럼에도 나는 무엇이든 '막말'이 되는 지금의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집단이 거대해질수록 그 영향력은 강해지지만, 개개인의 이성적 판단력과 발언권은 줄어든다. '다수의 뜻'이라는 미명 아래에서 다른 의견을 묵살하는 것은 민주정을 중우정으로 바꾸는 것과 다름없다.
당신은 제대로 분노하고 있나요?
어쩌면 그 분노의 기원은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미디어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촛불집회를 거쳐왔다. 지금 내 감정이 진짜 내 마음을 따른 것인지, 아니면 미디어와 정치인들의 이야기에 따른 것인지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대립이 고조되어 이득을 보는 자들은 누구일까?
기업은 흔들리고 국민이 분노할 때, 입지를 다지는 자들은 누구일까?
무언가에 대해 이성적으로 분노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욱 우리의 외침이 정치적으로 소비되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선거에서 당선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입을 연 것이니 말이다.
언제나 옳기만 한 사람도,
언제나 틀리기만 한 사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