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알지 못했던 푸드마켓 이야기

prologue. 푸드뱅크? 푸드마켓?

by Veni Jun

아직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COVID-19)로 인한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확진자 수는 점차 줄고 있지만 해외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으며, 코로나로 인한 사회·경제적 영향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계속해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더 이상 '세계 경제가 침체되었다'느니, '경제지표가 어떻다'느니 하는 먼 세상 이야기 같은 수준이 아니다. 우리 동네의 누군가가 지금 당장 먹고 살 일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코로나의 경제적 여파로 인해 생계가 어려워진 사람들이 늘어났고, 이에 따라 그들에 대한 복지 정책이 뉴스의 주목을 받았다. 그중에는 지원금이나 소액대출 및 식료품 지원 같은 긴급적인 조치들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계속되어오던 복지 서비스도 존재했는데, 바로 푸드마켓이 대표적이다. 지난 2~3개월 동안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많은 복지시설들이 운영을 중단했었고, 푸드마켓 또한 잠정 휴관에 돌입했었다. 하지만 복지가 필요한 시기에 복지의 문을 닫아놓을 수만은 없는 법. 사태가 조금씩 진정되자 철저한 방역 아래에 시설들이 하나둘 개관을 시작했고, 푸드마켓 역시 그 문을 활짝 열어 복지 정상화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데 잠깐, 이야기를 계속하기에 앞서 잠시 인터넷 뉴스 페이지에서 '푸드마켓'을 검색해보는 건 어떨까? 아마 지금부터 할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장소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정보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푸드뱅크'라고 검색해보자.

뒤의 두 글자만으로도 검색 결과가 사뭇 달라질 것이다.


푸드마켓 검색결과.jpg
푸드뱅크 검색결과.jpg
검색어: '푸드마켓' (좌), '푸드뱅크' (우)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인 <빅 카인즈>로 최근 1년간 각각의 검색어가 포함된 기사들을 검색해 본 결과, 두 단어의 쓰임이 다르다는 게 확실하게 나타났다. 이렇게 결과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전자의 경우 '푸드'와 '마켓'으로 나뉘어 쓰이는 경우가 압도적이지만 후자는 '푸드뱅크'라는 단어가 보다 포괄적이며 공식적인 기관명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1998년 9월 17일 한겨레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그럼 이제부터 그 푸드뱅크란 대체 어떤 곳인지 알아볼 것인데, 간단히 말하자면 말 그대로 food bank, 즉 음식이 오고 가는 은행 같은 곳이다. 개인이나 기업으로부터 식품 및 생필품 등을 기부받고, 이를 보관하며 다시 필요한 곳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바로 푸드뱅크의 업무다. 여기서 복지관이나 아동센터 같은 기관에게 지원하는 경우를 뱅크 업무라고 부르며, 기초생활수급자 등의 개인 이용자 분들을 대상으로 하면 마켓 업무가 된다. 위에서 언급한 '푸드마켓'은 바로 이 마켓 업무를 한정하여 칭하는 말이다.


사실 언론이나 공식 로고에서는 다들 '뱅크'라고 부르고 있지만, 적어도 내가 근무하고 있는 현장에서는 보통 '마켓'이나 '센터'라고 부르지 아무도 '뱅크'라고는 안 한다. 아무래도 뱅크 업무만 보는 곳이 아닌 이상 기관보다는 이용자 분들과 접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에 자연스레 '마켓' 쪽이 입에 붙어버린 게 아닐까?


KakaoTalk_20200419_021449448.jpg 편의점 방식으로 운영되는 푸드마켓


여하튼,

서론이 길었다.


새삼스레 말하자면, 나는 푸드마켓 - 정확히는 푸드뱅크·마켓센터 - 에서 일하고 있다. 이제는 익숙해진 이곳이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푸드마켓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그리고 이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일이라 여겨왔었고, 그렇기에 20년을 넘는 토박이가 우리 동네에, 그것도 우리 집 바로 건너편에 이런 곳이 있는지조차 몰랐었다.


그럼에도 나는 펜을 잡았다. 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하며 때로는 행복과 뿌듯함이 차올랐고, 때로는 가슴이 찡하게 울렸으며, 또 때로는 부글부글 속이 끓기도 했다. "아아, 이곳이 사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여기 이곳에서 우리에게 낯익은 맛들을 발견해보는 건 어떨까?




터무니없는 소망이지만, 부디 이제부터 써 내려갈 나의 경험들이 다양한 의미로 사회에 선순환을 가져다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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