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무기력해져 버린 일상을 보내며
이 세상은 참 내 마음에 안 드는 것들 투성이다.
뭐,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그렇지 않을까?
가령 세상 만물에 감사하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분명 그 사람은 나처럼 불만 가득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결국 그 사람도 나와 같아질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는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혐오하는 사람도, 자기랑 반대인 사람을 무조건 물어뜯고 보는 사람도 존재하니까. 혐오의 화살을 피할 수는 없다.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는 그대로 화살에 맞아 쓰러지거나, 상대에 맞서 자신도 활을 집어 드는 것뿐이니 말이다.
나는 진심으로 혐오가 싫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혐오의 연쇄 따위 지금 당장 끊어버리고 싶다. 이런 말을 해봤자 돌아오는 건 쿨한 척하지 말라는 힐난이나 코웃음뿐이었지만,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든 간에 나는 오고 가는 혐오가 질색이다. 그냥 상대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는 없는 걸까? 꼭 트집 잡고 모함하고 손가락질해야만 하는 걸까? '예쁜 말'이 나쁜가. '예쁜 생각'은 조롱받아야 하는 건가. 예쁜 거라며. 예쁜 건 좋은 거잖아. 대체 언제부터 '예쁨'과 '가식'이 같은 뜻이 된 건데. 그게 진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 해본 걸까.
나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람도 변한다. 단지 그 방향이 나쁜 쪽으로만 향할 뿐이었다. 사람은 좋은 쪽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혐오에 물드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개심하고 개선되는 사람은 없다.
혐오가 누구를 향하든 간에 그걸 바라보는 것 자체가 내게는 스트레스였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세상 곳곳에 혐오가 가득했기에 일상이 스트레스로 가득했고, 내게 스트레스를 준 그들을 향한 분노 또한 가득했다. 그들이 누군가를 혐오했듯이, 나는 그들을 혐오했다.
물론 실상 나 자신이 혐오의 타깃이 된 적은 거의 없었다. 지극히 평범한 나 같은 사람보다는 훨씬 더 재미있는 먹잇감들이 많으니 말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내가 화를 내면 상관하지 말라며 엄포를 놓았다. 나도 안다. 눈을 감으면 되고, 귀를 닫으면 된다.
그런데-
왜 나는 흘려 넘기지 못하는 걸까.
왜 나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걸까.
왜 나는 이걸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걸까.
바보 같은 자신이 싫었다. 삶 속에서 부딪히는 작은 돌멩이 하나 지나치지 못하는 자신이 싫었다. 그렇게 내가 혐오하는 그들과 똑같아져 가는 스스로가 정말 싫었다. 혐오를 싫어한다며 정작 나 자신은 누군가를 혐오하고 있는 내로남불의 극치였다. 더러운 자신을 돌아보자, 결국 혐오의 화살은 나를 향했다.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 또한 하나의 스트레스가 되었다. 다른 이에게 악담을 퍼붓고 나쁜 상상을 해도 잠깐은 개운할지언정 나는 그 감정을 떨쳐내지 못하더라. 세상을 보며 실망하고, 나 자신을 보며 또다시 실망하고, 그 모두를 벌해야 한다는 분노만이 재생산되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많고 많은 기분 나쁜 것들 중 내가 벌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게 나 자신뿐이더라. 하지만 아무리 스스로를 혐오해도, 내 팔에 멍자국이 생기고 딱지가 앉아도, 점점 무기력해질 뿐 바뀌는 건 하나도 없더라.
조금 더 예쁜 세상에 살 수는 없는 걸까.
오늘도 몰가치한 꿈이나 꾸는 자신에게 다시 한번 실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