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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Jan 14. 2020

네가 그러고도 친구냐

헤어지면 추억은 다 사라지는 걸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라고들 한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사랑의 시간도 어느 순간 끝나버릴지 모르는 일이다. 사랑에 빠지는 이유가 다양하듯 사랑이 떠나가는 이유 또한 수천수만 가지가 되고, 이별의 모습 또한 각양각색이다.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서로에게서 멀어져 각자의 생활로 돌아갈 수도 있으며, 누군가는 이별의 아픔에 몸과 마음을 앓을 수도 있다. 그런데 개중에는 이별의 충격이 큰 탓인지, 헤어진 연인의 험담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것이 내게는 꽤나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도 이전에 한 사람을 연인으로서 사랑했고, 헤어졌다.


서로 대학 생활이 바빠 자주 만나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만난 날이었다. 설레는 마음에 꽃집에 들려 꽃다발을 샀고, 그녀를 만나 건넸다. 언제나와 같았다. 함께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은, 다를 것 하나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평범. 언제부턴가 우리의 만남이 그렇게 느껴졌다. 재미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도 일률적이고 반복적인 만남이었다. 이전부터 느껴오던 권태감이었고 그 날 처음으로 이에 대해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그녀 또한 관계 속에 권태를 느끼고 있었고, 우리는 이야기 끝에 서로가 변하는 대신 관계를 끝내기로 결정했다. 나도, 그녀도, 자신이 바뀌지 않으리라 믿었던 걸까. 어찌 되었든 그 날로 우리는 헤어졌다.


그 뒤로 며칠간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조심히 들어가라고 인사하며 헤어진 뒤,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돌아왔고 아무렇지 않게 다음 날, 그다음 날의 생활을 이어갔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는데 기쁠 리는 만무했지만, 특별히 슬프거나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정도의 건조한 감정뿐이었다. 친구가 여자 친구에 대해 묻자, 그제야 주변에 얼마 전에 이별했음을 알렸다. 그리고 이때부터 진기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날의 이야기를 들은 내 지인들은 모두 나를 위로해주었고, 그중 몇몇은 그녀를 비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나도 대체 그녀는 왜 그랬을지 분노와 같은 감정들이 올라왔지만, 그것들은 타오르지 못하고 곧 잠들었다. 나는 그녀가 비난받는 게 싫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심판대에 오르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이 어떠했든, 그 기간 동안 내가 그녀와 함께 해 행복했던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결국 이후로 그녀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는 언제나 그녀의 변호인이 되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때 나의 변호에도 불구하고 자기 딴에는 내 위로를 해준다며 그녀를 지탄했던 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더라. 그 친구는 맥주잔을 비우며 본인이 얼마나 노력했고 고생했는지, 연애 초기부터 상대방이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이야기했다. 자신이 누군가를 위로해주었듯이 이번에는 자신이 나에게 위로받고 싶었던 걸까. 헤어진 연인의 이야기를 하며 계속해서 내게 동의를 구해왔다.


"걔 진짜 나빴지?"

"너도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해?"

"네 생각에는 누가 나쁜 것 같아?"


"너."


"내가 잘못한 것 같다고?"


"누구 한 사람 잘못은 아니겠지만, 일단 들은 것만으로는 너도 잘못한 것 같은데."


...


"야, 네가 그러고도 친구냐?"


글쎄. 내 가치관을 다른 이에게 강요해서는 안 되겠지만,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설령 그녀와 더 이상 연인관계가 아니고 사랑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곧 그녀를 미워하고 비난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사랑했었다는 기억은 사라지지 않으니 말이다. 한 순간이라도 자신이 상대방에게 사랑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고, 그 사랑에 자신이 행복해졌던 것 또한 사실이다. 내게 큰 행복을 준 그 사람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는가. 그 사람이 정말로 나쁜 사람이라면 나는 왜 그 사람을 사랑했겠는가.


이별 이후, 사귀었던 시간을 되돌아보며 내게 그녀를 향한 미안함과 감사함이 자리 잡았다. 못해준 게 많았고, 못 해준 것도 많았다. 그런 나를 사랑해주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 준 그녀에게 꼭 사과와 감사를 전하고 싶다.


나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한다. 물론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좋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말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기준에서 좋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만난다. 꼭 연애나 결혼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있어 말이다. 부디 그 좋은 사람이 계속 좋은 사람으로 있을 수 있도록, 나 자신도 다른 누군가에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그 사람과의 추억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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