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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May 02. 2020

점심시간은 없습니다

ep.2 탁상공론의 피해자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네, 푸드마켓입니다."

"거기 점심시간이 몇 시까지인가요?"

"저희 점심시간 없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똑똑똑 유리문이 열린다.)

"안녕하세요, 푸드마켓입니다."

"혹시 지금 점심시간인가요?"

"아뇨, 저희 점심시간은 없습니다."




진짜다. 언제부턴가 우리에게서 점심시간이 사라져 있었다. 아니지, 그래도 점심을 먹고는 있으니, 말하자면 브레이크 타임이 없어졌다 정도가 되겠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12시~1시까지의 시간을 점심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실제로도 그것을 누리면서 살아왔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건 점심시간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리라. 물론 '점심시간'이 문자 그대로 점심을 먹기만 하는 시간인 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잠시 숨을 돌리는 시간이 되기도 하며, 업무의 마무리 및 다음 준비를 위한 시간으로도 활용된다. 그런데 그런 점심시간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끼니나 휴식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이 없어졌을 뿐 틈틈이 먹고 틈틈이 쉬면 그만이니 말이다. 진짜 문제는 업무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식당의 브레이크 타임을 생각해보자. 점심 영업을 마친 뒤 그들은 곧바로 저녁 서비스를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왜? 출근해서 준비한 재료들은 점심에 모두 소진됐고, 열심히 달린 주방과 홀은 재정비가 필요하니까. 푸드마켓도 마찬가지다. 오픈 전에 꽉 채워놓은 성품들이 점심 즈음되면 매대를 빠져나가니 다시 한번 잔뜩 준비해놓을 필요가 있고, 기관과 이용자분들이 오시기 전에 오전 동안 빵집에서 기부받아온 빵들의 분류와 영수 작업을 끝내야 한다.


본래는 여기에 점심시간을 활용했었다. 밀차(a.k.a. 구루마)가 왔다 갔다 하며 빵 상자가 늘어져있어 센터가 복잡했고, 영수 작업을 위해서는 카운터의 포스기를 사용해야만 했기에, 당연히 센터에 이용자분들이 오시지 않을 때 끝내는 게 서로에게 부담이 없었다. 그래야 우리도 이용자분들도 부담 없이 공간을 활용할 수 있으니까.


점심시간이 없어진 지금은 연신 지나가겠습니다뒤에 조심해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잠시만요!를 입에 달고 산다. 그래도 신기한 건, 우리가 금세 새로운 스케줄에 적응했다는 점이다. 다소 불편함이 따르고 정신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 점심 러시에 익숙해져 갔다. 우리가 조금 더 바빠진 대신 마켓을 찾아오시는 분들의 이용이 편해진다면, 충분히 감수할 만한 변화였다.




이 변화가 부작용을 낳은 건 바로 얼마 전의 일이었다.


"어르신, 혹시 이번에 푸드마켓 이용하시라고 문자나 우편 받으셨나요?"

"아유, 나는 문자 그런 거 못 보는데……."

"저희가 선정되신 분들만 이용하실 수 있으신데, 어르신께서는 명단에 안 계셔요."

"저기 그, 동사무소에서 가라고 해서 왔는데… 동사무소에다 전화해봐요."


푸드마켓은 홀로 운영되는 곳이 아니다. '푸드뱅크' 차원에서도 내가 일하는 곳과 같은 기초푸드뱅크·마켓 위로 광역푸드뱅크중앙물류센터가 있으며, 지자체 및 보건복지부까지 연결된 꽤나 거대한 사업체계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 종종 다른 기관과 연락을 취해야 하는 일도 있는데, 대표적인 게 바로 이런 경우다.


마켓을 찾아오신 어르신의 성함은 이용자 명단에 없었지만, 어르신께서는 주민센터에서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했다. 이용자 선정은 각 동(洞)과 구(區)에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일개 푸드 청년이 그 절차를 알 리가 만무하고, 이런 경우 우리는 해당 주민센터의 푸드마켓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점심시간이라 담당자가 자리를 비워…"


그렇단다. 우리는 벌써 잊고 있었는데, 지금이 점심시간이었다. 어떡하랴. 기다려 드려야지.

기다리는 건 어렵지 않다. 다른 일을 하다가 시간이 되면 다시 연락하면 되니까. 그런데 지금 카운터 앞에 앉아계신 어르신은? 그분은 결국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 앉아계시기만 해야 했다. 선정 여부가 확실하지 않으니 이용을 시켜드릴 수도, 그렇다고 나중에 다시 와달라고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그저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라며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우리는 일하는데 남들은 왜 쉬고 있냐는 투정이 아니다. 이용자 편익을 늘려 복지를 증진시키겠다는 취지의 결정이 이상한 부작용을 낳고 있음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그 어르신은 장장 1시간을 남들 이용하는 모습만 바라보던 끝에 겨우 담당자와 연락이 닿아 이용하실 수 있었다. 점심시간을 없애니만 못했던 것이다. 기관 간 연계가 필요한 업무에서 한쪽이 자리를 비우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이 권고 아닌 권고를 내린 곳은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점심시간을 없애고, 출근 후 준비시간과 마감시간까지 운영시간을 연장해서, 이전보다 얼마나 많은 긍정적 변화가 일어났을까. 실무자의 눈에는 작은 장점보다 큰 결함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위'에서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사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 예상하는 바가 있다. 기다리는 시간을 없애준다니! 영업시간을 늘려준다니! 우리가 은행이나 병원을 갈 때마다 시간을 체크하는 걸 보면, 이용자 입장에서 이는 상당한 플러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결국 눈먼 이상에 불과했다. 의도는 좋았으나 선의의 피해자를 낳고 만 것이다. 점심시간이 사라진 우리도, 점심시간에 연락을 받아야 하는 담당자도 아닌, 마켓을 찾는 분들이 어느샌가 탁상공론의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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