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불의에 당당히 맞서면 어른이 된 거라 생각했다. 눈을 감지 않으면. 귀를 막지 않으면. 그게 바로 어른이라고 믿었다. 남을 이해하는 것도, 상황을 개선하는 것도, 알고 있어야만 제대로 할 수 있는 거니까. 알기 위해 세상을 직시하는 사람들이 어른인 줄 알았다. 영화 속 히어로들을 향한 동경처럼, 내게는 어른에 대한 일종의 선망이 있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불의를 타파하며 세상을 조금씩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어가는, 마치 영웅과 같은 사람. 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계속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뉴스가 알려주는 먼 곳의 이야기들부터 내 눈 앞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까지. 때로는 재미도 없고 복잡하기만 했지만 그래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넓은 마음. 더 넓은 시야. 어른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더 열심히 배워야 한다며 스스로를 독려했다.
내게 있어서 어른이란 결국 답을 찾는 사람이었다. 올바르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답.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나는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든 속에서는 계속 문젯거리만을 꼬집어냈다. 시쳇말로 프로불편러처럼, 내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것들을 하나하나 붙잡고는 어서 빨리 생각하라며 꼬리에 꼬리를 갖다 댔다. 그렇게 나 혼자 불편함과 분노에 빠지고, 또 나 혼자 이룰 수 없는 답을 생각해내고는, 불의를 지적했으니 이제 어른이 다 됐다고 자화자찬을 벌였다.
더 넓은 마음이 갖고 싶었으면서. 더 좋은 세상을 꿈꿨으면서. 사회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사실 나는 내 감정 하나만을 우선하고 있었다. 어른이 된 줄 알았는데. 결국 나는 히어로에게 이길 수 없는 악당에 불과했다. 너무 늦어버린 지금,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눈을 반짝였던 어른이 어땠는지, 그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이 잘못 달려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게 재고의 기회를 가져다준 계기는 순간 찾아왔다. 내가 꿈꿨던 상상 속 어른도, 내가 됐다고 젠체하던 가짜 어른도 아닌, 진짜 현실의 어른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말을 들으며, 어른이란 무엇인지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만 했다.
나는 불의에 뛰어들었다. 동료의 멱살을 잡으려 하며 폭언을 퍼붓던 어른을 경찰에 신고했다. 조용히 보내라는 말, 뒤로 가있으라는 말에도 나는 스스로를 상황 속으로 던져 넣었다. 신고 사실을 알리며, 나도 그 일의 관계자가 되었다. 뿌듯했다. 기죽을 일 없었다. 나는 어른들 앞에 당당히 섰다. 구청에 전화까지 하며 난동을 부리던 그 어른은 악이고, 그 악에 맞서는 나야말로 어른일 터였다. 그래야만 했고, 그러리라 믿었다. 그런데 어느샌가, 내가 죄인이 되어 있더라.
진짜 어른은 악을 무찌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악에 익숙해지고 감정이 무뎌졌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되는가 보더라.
피해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 눈 딱 감고 참아라.
그 날 죄인이 된 내게 어른들이 해준 이야기다. 피하지 못한 것이 나의 죄요, 흘리지 못한 것이 나의 죄이며, 참지 못한 것이 나의 가장 큰 죄였다.
내 죄를 알고 한 걸음 어른에 가까워진 걸까. 사과문을 작성하라는 구청의 지시에도 나는 이상하리만치 화가 나지 않았다. 억울한데. 답답한데. 아무리 화를 내려고 해도 가슴에 불이 붙지를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저 어른들의 귀에는 담기지 못하고, 내가 무슨 글을 써도 저들의 눈에는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걸 배웠으니까. 때문에 나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저 어른들도 알겠지. 내가 되고자 했던 어른이 어떤 사람인지. 어쩌면 그들 역시 어린 시절에는 나와 같은 꿈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를 알고 나를 이해했기에 그토록 상냥하며 잔인하게 얘기할 수 있었겠지. 어쩔 수 없다며 수긍하고 그들을 이해하게 됐다는 건, 드디어 나도 성장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진짜 어른이 되어가니 알겠다. 어른은 꿈꿀만한 존재가 아니다.
이제는 그럴 열정조차 남아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나는 더 이상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어른을 꿈꾸는 아이들도 언젠가 모두 어른이 되어버리겠지. 하지만 부디 어른이 되지 않기를,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제발 그러기를 바라며, 자그마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