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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Aug 22. 2021

누가 그들을 인질로 만들었을까, <인질>

영화 <인질>의 결말이 우리에게 남긴 것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배우 황정민을 연기하는 배우 황정민. 그의 출연작들을 언급하며 메타 발언을 쏟아내는 영화의 예고편. 개성이 뚜렷했던 만큼, 영화 <인질>은 개봉 전부터 대중들의 이목을 착실히 끌어모으고 있었다. <모가디슈>와 <싱크홀>,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프리 가이> 등 국내외의 대규모 영화들 사이에서 <인질>은 당당히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호기롭게 출발 신호를 울렸다. 그 기세를 잃지 않고 연일 정상을 유지하고 있는 지금, 과연 받아온 기대에 걸맞은 평가가 내려지고 있을까?


아쉽게도 그렇지만은 않다. 호평의 대부분은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되어있으며, 나머지는 그저 예상한 딱 그 정도라는 평이 주를 이룬 실상이다. 전형적인 캐릭터들로 채워진 뻔하디 뻔한 이야기. 킬링타임용으로 적당한 팝콘무비. 나 역시도 어느 정도는 이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 영화의 러닝타임 중 약 95% 정도는, 단지 조금 더 현실적일 뿐, 우리가 익히 봐왔던 범죄극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남은 5%, 영화의 결말은 달랐다. 주인공의 납치로 시작된 영화가 어떻게 끝날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누군가에 의해 구출되거나 혹은 자력으로 탈출하거나. <인질> 역시 마찬가지였다. 납치범들의 패배는 정해져 있었고, 눈앞의 잔혹함에 긴장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해피 엔딩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작중 황정민의 대사처럼 경찰, 변호사, 검사에 심지어 조폭까지 다 해본 그가 어떻게 해피 엔딩을 불러올지만이 나의 모든 관심사였다. 피해자는 무사히 풀려난다. 일상으로 돌아오고 행복하게 마무리된다. 그러한 해피 엔딩이 바로 나의 맹점이었다.


보통 이야기는 사건의 종결과 함께 끝이 난다. 3막 구조든 5막 구조든 좋은 결말에 요구되는 것은 사건의 해결이니까. 영화의 끝자락, 납치범들의 리더인 최기완(김재범)이 쓰러지고 무사히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도착하며 화면은 한 번 암전 되었다. 인기 배우 황정민의 납치 스토리는 거기서 마무리된 것이다. 그대로 크레디트가 올라오고 상영관의 불이 켜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으리라. 하지만 곧이어 '2년 후'라는 자막과 함께 영화는 이어졌고, 나는 그 뒤의 5%야말로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이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진짜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시작에서 황정민이 처했던 상황, 들었던 대사, 그의 앞에 섰던 범인의 의상까지. 납치의 대상이 바뀐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똑같이 재현되어 다시 한 번 반복되었다. 연예인을 노린 모방범죄인가? 최기완이 다시 풀려난 것인가? 갑작스러운 전개에 온갖 상상이 떠오르던 찰나, 카메라가 돌며 그곳이 영화 촬영장임이 드러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재미있는 에필로그라며 끄덕이고 있었다. 실화 바탕의 영화라는 건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이었으니까. 영화 속에 또 다른 영화를 넣어 작품의 현실성을 높이는 전략이라고만 여겼다.


세트장에 나타난 황정민은 거의 다 회복된 것처럼 보였다. 다리에는 후유증이 남은 듯했지만 부러졌던 코나 상처투성이의 얼굴은 예전처럼 돌아와 있었고, 곧 복귀할 테니 다들 긴장하라며 농담을 던지는 그의 모습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다음 장면에서 나와 그의 몸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그야 우리의 눈앞에 그토록 지독했던 납치 살인범 최기완이 다시 나타났으니까. 그 누구라도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자그마한 숨조차 쉬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실은 납치범 역의 후배 배우에게서 본 환영이었다는 것을 알고도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했을 정도로, 우리를 향해 걸어오던 폭력의 그림자는 너무나도 섬뜩했다.



앞선 사건 속에도 수많은 공포와 긴장감이 있었지만, 세트장에서의 충격은 그것과 결이 달랐다. 급박하고 터질듯한 무서움이 아니라 스멀스멀 내 몸을 죄어오는 두려움. 나아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을 것 같은 무력감. 그 순간의 우리는 불안과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겠지만, 피해자들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 자의와는 상관없이 세상 속에서 불현듯 그때의 악몽들이 떠오를 때, 그것을 지켜보는 그들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


심각하고 잔혹한 살인사건이었으며 톱스타의 납치사건이었으니, 분명 전국민적 이슈가 되었을 것이다. 그 엄청난 에피소드를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겠지. 그러니 겨우 2년 만에 영화화가 진행되었을 테고 말이다. 세상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들이 꽤나 있다. 그중에는 물론 진실을 밝히거나 애도를 전하려는 진심이 담긴 작품들도 있지만, 애석하게도 모든 실화 기반의 콘텐츠들이 그렇지만은 않다. 재난이든 범죄든, 사건만 터졌다 하면 콘텐츠로 가공해 소비하기에 바쁜 것이 우리네 세상의 현주소가 아닌가. 공감과 위로의 연대보다는 조회수, 관객수, 구독자수, 온갖 숫자들이 더 중요해져 버린 세상이니까.



만일 이 작품이 여느 영화들처럼 사건 이후 되돌아간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며 끝났더라면, 나는 또다시 아무렇지 않게 영화 속 인물들을 흘려보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결말 직전까지 나는 어디까지나 관객의 입장으로, 제3자의 시선으로 그들의 납치극을 관망하고 있었으니까. 팔짱 낀 채 자리에 앉아 그저 하나의 콘텐츠로서 사건을 바라볼 뿐이었다. 물론 이 영화는 픽션이며, 그것은 우리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영화가 아니라 뉴스나 기사에서 이러한 일들을 접했을 때, 혹은 정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물이 나왔을 때, 그럴 때의 나는 이 영화를 볼 때의 나와 과연 다른 마음을 갖고 있었을까.


어쩌면 영화의 사건 이후로도 그는 여전히 인질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몸을 구속한 사슬도 테이프도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가 만들어낸 폭력의 망령은 그의 주변을 계속 맴돌고 있었으니까. 영화 <인질>의 결말은 우리에게 이러한 물음을 던졌다. 대체 누가 그를 인질로 만들었을까. 최기완이 사라진 후에도 왜 그는 그의 환영에 숨죽여야만 했을까. 영화는 우리가 이제껏 미처 보려고 하지 않았던 피해자의 시선으로 사건의 이후를 바라보게 하여, 우리 스스로가 맹점을 깨닫도록 했다.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는 후배의 요청에 트라우마를 이겨내면서까지 어색하게나마 웃어 보일 수 있었던 건, 영화를 지켜본 우리가 그와 함께 두려워했고 그의 아픔에 공감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영화 <인질>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그런 자그마한 배려의 시작이 아니었을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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