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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ni Jun Oct 31. 2021

지금까지의 마블은 죽었다

앞으로의 MCU를 결정지을 2021년 하반기

*본 글에는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7월 <블랙 위도우>의 개봉을 시작으로, 2021년 하반기와 함께 MCU 페이즈 4의 막이 올랐다. 팬데믹의 영향 속에서 1년이 넘도록 관객들과 만나지 못했던 게 그들에게도 한이었던 걸까.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리지 말라는 듯, 쌓여왔던 이야기들이 쉬지 않고 우리를 찾아왔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이터널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정통 MCU 시리즈.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메울 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SSU)의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와 디즈니+ 속 다양한 드라마들까지. 가히 마블 콘텐츠의 홍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의 두 영화가 각각 페이즈 3의 에필로그와 페이즈 4의 프롤로그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마블이 펼칠 새로운 이야기는 <샹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들은 <샹치>에서 '탈로'라는 새로운 무대와 '텐 링즈'라는 새로운 키 아이템을 소개했으며, <이터널스>에서는 우주적 존재들을, 그리고 <노 웨이 홈>에서는 '멀티버스' 속 다른 프랜차이즈의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세계관의 확장을 예고하고 있다.


지구 - 지구 속 숨겨진 장소 - 우주 - 멀티버스. MCU의 무대는 단계별로 확장되어 갔다. 그들에게 있어 관객인 우리들 또한 히어로들과 함께 걸어가는 영화 속 일부였기에, 우리가 그들의 확장에 따라갈 수 있도록 그들은 한 계단씩 차례차례 범위를 넓혀갔다.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무대와 새로운 설정이 등장해도 큰 어려움 없이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앞으로의 MCU를 지금까지와 변함없이 기대와 기다림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베놈 2>가 개봉하고 쿠키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그 기대는 한순간에 걱정과 불안으로 바뀌었다.



베놈이 마침내 MCU로 들어왔다. 스파이더맨의 거취를 놓고 이루어진 마블-소니 간 계약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이제는 캐릭터를 회수해갈 줄 알았던 소니가 반대로 또 다른 캐릭터를 MCU로 편입시킨 것이다. 물론 이는 <노 웨이 홈>을 위한 단발성 크로스오버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베놈과 스파이더맨, 또 다른 멀티버스의 빌런들 모두 소니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들이 한순간이나마 MCU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어쩌면 그것이 지금까지의 마블을 무너트리는 균열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한 번 열렸던 문은 언제라도 다시 열릴 수 있다. 서로 다른 별개의 우주로 존재했던 MCU와 SSU는 이제 마블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 안에서 공존하게 되었다. 언젠가 다시 한번 <엔드게임>과 같은 대규모 이벤트가 벌어졌을 때, 과연 그곳에 소니의 캐릭터들이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이 MCU와 이어지는 동아줄을 잡고 있는 한, 관객들은 이제 MCU를 즐기기 위해 기존의 마블 스튜디오 작품들 뿐만 아니라 SSU의 영화들, 나아가 모든 마블 콘텐츠를 파악해야만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계관의 확장, 유니버스의 통합만이 꼭 정답인 것은 아니다. 특히 지금의 MCU와 SSU처럼 서로의 작품들 사이에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면 더더욱 그렇고 말이다. 미숙하고 인간적이며 그렇기에 성장하는 히어로들. 단순한 악을 넘어 입장과 명분을 짊어진 채 그들을 가로막는 빌런들. 우리가 그들에게 공감하고 열광할 수 있었던 것은, 성공적인 캐릭터라이징과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진 덕분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MCU와 다른 유니버스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난다. 케빈 파이기와 마블 스튜디오라는 구심점이 있었기에 마블은 21세기 콘텐츠 왕좌에 앉을 수 있었고, 그렇지 않았던 다른 영화들은 완성도 면에서 무너졌던 것이다.



SSU의 작품들이 MCU 못지않은 완성도를 보여준다면, 앞으로의 통합은 성공적인 두 프랜차이즈의 합작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현재 공개된 소니 단독의 작품 <베놈>과 <베놈 2> 모두 평단과 대중 양쪽으로부터 혹평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1편의 단점들이 고스란히 2편에도 남아있어 앞으로의 SSU까지도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팀업을 위해 급조된 영화', '2시간짜리 예고편' 등 MCU 역시 초창기에는 비슷한 비판을 받아왔기에, 아직 2편밖에 나오지 않은 SSU의 개선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마블은 지금의 소니와 상황이 많이 달랐다. 그들은 히어로 기반의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처음으로 열었던 선행자였기에 반드시 스스로 일어서야만 했지만, 지금의 소니에게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마블이 있다. 스파이더맨, 베놈 등의 인기 캐릭터들이 있다. "사실은 같은 세상이었습니다." 혹은 "이제는 같은 세상입니다."가 흥행 공식이 된 지금, 누구나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저 마블의 세계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성공은 자연히 따라오겠다고.



<베놈 2>는 괘씸한 영화다. 무너져내리는 캐릭터와 빈약한 서사, 긴장감 없는 액션을 MCU와 이어지는 쿠키 영상 하나로 덮어버리고 있다. 쿠키를 보기 위해서라도 관객들은 극장에 앉아 있어야 하며, 실제로 평가와 반비례해 흥행은 계속되고 있다. 시쳇말로 말하자면, 역시 MCU는 돈이 된다. 개선하지 않아도 흥행이 보장된다면 대체 누가 추가적인 투자를 하겠는가. 결국 SSU와 MCU의 퀄리티 차이는 줄어들지 않고, 우리들은 캐릭터를 빠트리지 않기 위해,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앞으로도 괘씸한 전략에 알면서도 넘어가야 할 것이다.




마블 스튜디오가 직접 제작하거나 참여해온 지금까지의 MCU는 이제 죽었다. 정파와 사파가 공존하게 될 앞으로의 마블에서 작품의 퀄리티 유지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나의 불안이 기우로 그칠 수 있기를. 앞으로의 MCU를 가꾸어갈 그들의 해답이 <이터널스>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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