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가사의 보사노바
나는 보사노바가 좋다. 나에게 있어 거의 20년동안 변하지 않은, 몇 안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보사노바에 대한 꾸준한 사랑인 것 같다. 작년과 올해를 지나오며 나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첫번째로 직장을 다시 구했다. 미술 업계가 아닌, 원래 내 커리어의 시작이었던 금융 시장으로 돌아왔다.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 함께했던 사람들, 나를 이끌어준 상사들과 선후배들이 있는 곳.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또 그만큼 나의 20대를 불태웠기에 추억도 많고, 그리우면서도 다시는 보기 싫었던 애증의 여의도.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 돌아왔음에도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많았고, 일도 익숙해 금방 적응했다. 운이 참 좋았다.
두번째는 내가 이제 아기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는 것. 작년 가을에 딸을 낳았다. 어느새 9개월이 되어 열심히 여기저기를 기어다니는 아기가 우리집에 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너무 많지만 오늘의 주제는 보사노바이기에 그것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보사노바는… 흘러가는 음악 위로 중얼거리는 듯한 가사, 클래식의 기본적인 화음을 완전히 깨버리고 랜덤 워크처럼 흘러가는 음정들을 가졌고. 보사노바를 흥얼거리고 있으면 음이 틀려도 전혀 괜찮을 것만 같은 여유로운 늘어짐과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가사! 보사노바의 가사들은 하나같이 다 너무 아름답다.
최근 자주 듣는 곡은 Bebel Gilberto의 Samba de Orly라는 곡이다. 아주 작은 원숭이 혹은 열대우림의 새가 우는 것 같은 소리로 시작하는 이 곡은 Bebel 특유의 시원하게 훑고 가는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그런데 Orly는 프랑스에 있는 공항 아닌가? 문득 의문이 들어 곡에 대한 배경을 찾아보았고, 가사를 깊게 살펴보고는 이 곡이 더 좋아졌지.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1964년 브라질에서는 국군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후 군사정권이 집권했다. 군사정권 아래 1968년 발표된 법령인 AI-5(제도법 제5호)는 헌법보다 우선시되었으며, 정부에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들과 그들의 정치 활동을 무력으로 억압할 수 있는 권한을 정당화했다. 검열과 체포, 몰수, 고문 등의 인권유린이 자행되는 결과를 낳았다.
브라질의 가수였던 시쿠 부아르키(Chico Buarque)는 그가 각본을 쓰고 작곡한 연극(Roda Viva)에 대한 검열로 1968년 12월, 자신의 집에서 체포되어 구금되었다가 풀려난다. 당시 그의 노래 A Banda가 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있어, 비슷한 시기 이탈리아에서의 공연에 초대받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그는 이탈리아로 망명을 떠나게 된다. 원래는 10일짜리 여행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이탈리아에서 18개월 간 머물게 된다.
이탈리아에서 생활하는 기간 동안 작곡한 곡이 Samba de Orly이다. 이 곡에는 토킹뉴(Toquinho)와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Vinicius de Moraes)가 함께 작업했다. 브라질을 떠나며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 그러나 여전히 조국을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가사이다.
Vai, meu irmão
이제 가봐, 형제여
Pega esse avião
이 비행기를 타고
Você tem razão de corer assim
이렇게 떠나는게 맞아
Desse frio, mas beija
이 추위에서, 그러나 키스해줘
O meu Rio de Janeiro
나의 리우데자네이루에게
Antes que um aventureiro lance mão
어떤 모험가가 붙잡기 전에
Pede perdão
용서를 구해
Pela duracão dessa temporada
이 계절이 너무 길어진 것에 대하여
Mas não diga nada
그렇지만 아무 말 마
Que me viu chorando
내가 우는걸 보았다고
E pros da pesada
그리고 무거운 짐들은
Diz que vou levando
내가 짊어질 거라고 말해
Vê como é que anda
어떻게 되어가는지 봐
Aquela vida à toa
그 한가로운 삶
E se puder, me manda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에게 전해줘
Uma notícia boa
좋은 소식을
조국을 뒤덮은 어둡고 차가운 현실을 피해 망명을 떠나면서도 나의 사랑하는 도시에 입맞춤을 남기는 뒷모습과, 좋은 소식이 있다면 꼭 전해달라고 당부를 잊지 않은 것. 당시 브라질에서 망명한 많은 이들이 파리 오를리 공항을 통해 유럽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들의 입장에선 오를리 공항이 고국에 대한 슬픈 기억과 새로운 보금자리에 대한 막연한 안도감이 뒤섞인, 묘한 중간계의 공간으로 느껴졌을 것 같다.
원곡은 시쿠 부아르키의 것이지만, 나는 베베우 지우베르투(Bebel Gilberto)가 부른 버전을 더 좋아한다. 베베우는 시쿠의 조카이다. 시쿠의 곡은 브라질의 아픈 역사와 그에 따른 자신의 표류를 담았다면, 베베우가 이 곡을 불렀을 당시에는 나라가 다시 안정을 되찾았을 시기이기 때문에 조금 더 다양한 색이 느껴져서 그런 것 같다. 나에게 정말 소중한 무언가, 혹은 누군가의 곁에 지금 당장 있을 수는 없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는 듯한 느낌. 나는 그래서 이 곡이 좋은가 보다.
시쿠 부아르키가 이후 브라질에 돌아와 발표한 소설이 있다고 한다. 제목은 ‘엎지른 모유’. 시쿠에게 브라질의 맨부커상과 같은 자부치상을 안겨준 작품이라는데, 그가 글도 썼다는 건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라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읽어보신 분이 있다면 소회를 공유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