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 다녀온 뮤지엄산 전시
내가 안토니 곰리라는 작가를 처음 접했던 건 15년 전쯤, 서울의 모 갤러리에서 인턴 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사무실에서 곰리라는 이름이 자주 언급됐고, 한쪽 벽을 가득 메운 도록들 중 곰니? 공리?(‘중국인인가? 이름이 특이하단 말이지..’)를 찾아보았다. 알고보니 그 이름은 Gormley였고, 1994년에 일찌감치 터너상을 받았으니 그때 당시에도 이미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였다.
갤러리에서 다루는 곰리의 작품은 실로 다양했다. 그렇지만 그의 위상을 체감한 것은 국내의 내로라하는 기업 회장님의 댁에 곰리의 대형 작품이 설치되는 일을 계기로 일어났다. 내 키보다 더 큰, 실제 인간 사이즈의 조각이었다. 건장한 아트 핸들러 아저씨 여럿이서 나무로 된 크레이트를 옮기는 것은 장관이었다. 며칠 후 곰리의 작은 조각들 몇 십점이 또 갤러리에 우르르 도착했는데(작품 하나의 사이즈가 나의 손끝에서 팔꿈치 정도 까지의 길이밖에 되지 않았다) 그 작품들도 같은 회장님이 구입하셨다. 몇 억씩 하는 작품을 어쩜 저렇게 턱턱 사시는 걸까? 아니, 이 작가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렇게 일말의 고민도 없이 사재기를 하시는 걸까.
작품 기록을 위해 갤러리에선 입고된 작품의 사진과 함께 캡션 등을 작성해서 보관하는데, 당시 이 작은 조각 작품들의 사진 촬영을 내가 하게 되었다. 장갑을 끼고 작품을 조심스레 좌대에 올려서, 여러 각도에서 심혈을 기울여 사진을 찍었다. 조용하고 텅 빈 화이트큐브에서 이 작은 작품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귀엽기도 하고, 또 하나하나 온전한 인간의 형태를 한 모습이 꽤나 기특해 보이기도 하고 그랬다. 갤러리 대표님도, 그 회장님도 내 사진을 좋아해 주셨다.
수많은 곰리 조각들을 보면서, 비슷해 보이지만 어떤 작품의 자세나 형태가 더 예쁘고, 겉표면이 어떻게 녹슬은 것이 더 미적으로 아름다운지 등을 구별하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큰 갤러리에서 일하며 가장 좋은 점은 그런 안목을 기르기 위해 필수적인, ‘최대한 많은 작품 보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같은 시리즈 안에서도 수작은 늘 존재하게 마련이다. 작품의 밀도, 외적인 아름다움, 작가의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 여부… 마스터 피스를 알아보는 눈을 기르는 것은 미술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정말 중요하다.
몇 년 후 나는 곰리의 페인팅 작품들도 접하게 되었다. A4 용지보다 작은 사이즈의 워터컬러 작품들이었는데, 내 기억에 가격이 약 1,500만원 정도였던 것 같다. 이거라도 사둬야 하나, 고민하는 20대의 나에게 당시 갤러리의 대표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곰리는 조각으로 유명하잖니. 조각에 그 작가의 정수가 담겨있으니 사려면 조각을 사야 한다. 가죽으로 유명한 에르메스에서 가격이 싸다고 스카프나 키링을 사는 건 큰 의미가 없는 것처럼. 그런 곳에서는 가죽 제품을 사야 비로도 그 브랜드의 가치가 왜 그렇게 높은지를 이해할 수 있는거야.’
그 당시에는 설득됐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워터컬러 페인팅 작품이라도 사둘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2012년 브라질에서 곰리 전시가 크게 열린 적이 있었다. 그 전시를 위해 브라질행을 준비했을 만큼 곰리의 작품에 빠져 있던 나였다. 물론 대학생 딸이 혼자 브라질을 간다는 걸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부모님의 만류에 여행은 포기했으나… 전시 하나를 위해 여행을 계획할 수도 있을 정도로 곰리는 나에게 강렬했다. 옆에 있으면 뭐든 다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조용한 친구 같달까. 늘 평화롭고, 차분하고, 덥다고 땀을 흘리지도, 춥다고 벌벌 떨지도 않는 무던한 친구. 그런 무게감과 과묵함이 참 좋았다.
시간이 흘러 한국 미술 시장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곰리의 팬을 자처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갤러리에서 비밀스럽게만 볼 수 있었던 그의 작품들이 점차 아트페어에서, 여기저기 미술관에서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나는 곰리를 훨씬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와 같은 얄팍한 질투의 마음이 일기도 했다. 뭔가를 어설프게 경험하면 그렇다. 내 지식의 깊이는 너무나 얕음에도, 남들을 보며 괜한 시기와 견제를 하게 되는 삐딱한 마음.
아이를 낳고 일년 넘게 미술과 너무 멀어진 채 살다보니 그런 유치한 마음조차도 자취를 감췄다. 나에겐 다행인 일이다. 백지장 상태로 작가 한명 한명, 작품 하나하나를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사람과 같은 태도를 가지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야 내가 편견 없이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고, 그걸 또 아이에게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너무너무 더웠던 올해 여름, 8월 말에 아기와 함께 뮤지엄 산에 안토니 곰리전을 보러 다녀왔다. 이미 몇 달이 지났지만 이제서라도 쓰는 이유는 그만큼 좋았기 때문에, 그리고 봄비(아기 이름)에게는 첫 전시였기 때문이다. 도착하고 보니 안도 다다오가 안토니 곰리 작품 전시를 위해 만든 그라운드관은 아이들의 입장 시간을 하루 한 타임으로 제한하고 있어서, 남편과 교대로 한명씩 전시를 관람했다. 내가 먼저 본관에서 봄비와 메인 전시를 관람했고, 이후 남편과 바톤터치를 하고 그라운드관으로 달려갔다. 운이 좋게도 내가 입장한 타임에는 세 명 밖에 관람자가 없어서,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그 공간에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
그라운드관은 커다란 동굴처럼 만들어진, 실내와 외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된 건축물이다. 조명 하나 없는 공간이지만 자연광이 있기 때문에 답답하지 않다. 그 곳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왜 아이들의 출입을 한 타임으로 제한하는지 200%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는 고요할수록 그 가치가 증폭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무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도 그라운드 공간에 내 발걸음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걸 막기는 힘들었다. 내 발끝을 바라보며, 인간이 숨쉬고 존재하는 데에 필연적으로 다양한 흔적들이 남을 수밖에 없음을 곱씹어보게 되었다.
그 공간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자극에 익숙해져 있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사실은 자연스럽지 않음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8월 말의 뙤약볕, 매미 울음, 새소리, 곤충이 날아다니며 내는 소리, 나무들이 스치며 부딪히며 내는 쉭쉭 소리. 그 모든 자연의 음들이 이렇게 대단한 공간에 들어와야만 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 안에서는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것이 매우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자동으로 내 주변 환경에 의식을 집중하고, 이리저리 펼쳐져 있던 생각의 페이지들을 정리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곰리의 작품은 조각 자체보다도, 그 조각들이 주는 ‘환기’의 역할이 진정한 가치와 아우라를 더하는 것 같다. 숨을 고르고,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의식을 내면으로 가져오도록 도와주는 일 말이다. 이렇게 주변의 공기를 바꾸고 시간을 잠시 멈추는 힘을 가진 작품들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십여년전의 그 회장님이 곰리의 작품을 그렇게나 좋아하셨던 걸까?
곰리의 다양한 조각 작품 시리즈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인간의 몸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초기의 납 작품들은 동글동글하고 매끈한 것이 성장기의 아이 같고, 울룩불룩한 주철은 근육이 붙은 건장한 몸, 네모 반듯한 직선의 작품들은 인간이 경험하는 많은 경험과 가치관들의 집합체 같다. 뮤지엄 산 본관에 있는 얇은 인체 작품들은 인간의 몸과 나뭇잎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나뭇잎의 물기 많은 이파리가 마르고 닳은 후에는 얇고 가는 뼈대만 남게 된다. 인간의 몸과 비슷하다.
이날의 기억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는다. 엄청난 무더위 속에 그라운드관에서 느꼈던 해방감과 두근거림, 과거에 곰리 작품을을 접했던 숱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함께 나이들어 감을 실감하게 해준 곰리의 다음 시리즈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