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벤선생 May 03. 2023

미술과 산호초

해양 생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예술가들

4월 중순부터는 본업으로 인해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날이 따뜻해지고 활동성이 높아지는 봄에는 예술계도 기지개를 켠다. 온갖 아트페어가 열리고, 전시들도 꽃피기 시작한다. 확실히 나도 지난달보다 더 자주 작품을 보러 다니고, 새로운 작가들과 갤러리도 많이 알게 되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여러가지 자극을 한꺼번에 받다보면 그것이 공통적으로 모이는 지점이 한두개씩 떠오르게 마련이다. 1월에 그 키워드는 와비사비였다. 내가 보고 듣게 되는 많은 매체들에서 그 단어와 마주쳤다. 지난 2주간 새로 접한 작가와 갤러리들을 곱씹어보면 그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해양 생물'인 것 같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바다 속의 생태계에 관심이 많고, 그중에서도 산호초를 늘 사랑해왔다. 식물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동물이고, 수많은 미생물들의 안식처이며, 살아있을 땐 온갖 색으로 빛나다 죽어감에 따라 색을 점점 잃어가는 것까지 참 슬프면서 아름답다. 바닷속에서 건강한 산호는 무어라 이름을 부를 수도 없는 찬란한 색들로 각기 빛난다. 마치 '도'와 '레' 사이에 우리가 임의로 합의한 지점의 음인 '도샵'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 사이에 무수한 음들이 존재하듯, 바닷 속은 우리가 감히 정의하고 부를 수 없는 색들로 발광한다. 그러나 수온이 높아지면 산호의 광합성 능력이 떨어지고, 산호 표면에 서식하는 미생물들에게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 이는 산호초 백화현상으로 이어진다.


산호초에 대해 궁금하다면 '산호초를 따라서'라는 영화를 추천한다. 넷플릭스에서 볼수 있다.


산호는 생명의 둥지이다. 산호초는 해저 면적의 1%도 안되지만 전체 해양 생물종 1/4의 안식처라고 한다. 그러니 얼마나 생명들에게 따뜻하고 안락한 쉼터를 제공하는지 가늠이 간다. 산호의 외형적 아름다움과 다른 생명을 품는 온기는 예술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소재이다.  


지지난주 열린 더프리뷰 성수에서 갤러리 신라가 선보인 장회영 작가의 코랄 시리즈 도자기 작업은 단순히 산호초의 모양을 띄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구워진 도자기와 그 위에 발라진 유약은 고체와 액체의 병치이고, 서로 다른 매체의 물성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모노하 작가들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는게 갤러리 측의 설명이었다. 얼핏 보면 너무 다른 형태의 작업들이 개념적으로는 이렇게나 긴밀하게 맞닿아 있을 수 있다니 신기한 일이지 않은가.


경리단길에 있는 에스더쉬퍼 갤러리에서는 이사 멜스하이머의 전시가 한창이다. 건축적인 요소, 특히 브루탈리즘 건축을 연구해 드로잉으로 해석하는 그녀는 2017년 Fogo Island에서의 레지던시 이후 해양 생물에 대한 관심을 키우며 작품에 여러 동식물을 등장시킨다. 갤러리 2층 나무 테이블 너머에 걸려있는 작품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래 그림 속 건축물은 실제 Fogo Island에 있는 호텔이다. 강철 기둥이 고래의 등을 관통해 고래들이 죽어있다. 이 시기 작가는 고래의 심장, 이끼 등에 크게 관심을 가지며 생태계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고 적어도 이 그림을 그렸을 당시에는 그리 밝은 미래를 보진 않았던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이사 멜스하이머(Isa Melsheimer)의 과슈 드로잉. 경리단길 에스더쉬퍼에서 현재 전시중이다.


주말에 친구를 통해 새로 알게 된 또다른 작가는 Max Hooper Schneider라는 사람이다. 그는 해양 생물학과 조경학을 전공하고, Marian Goodman에서 전시하던 Pierre Huyghe 스튜디오에서 아쿠아리움 어시스턴트를 구한다는 채용 공고를 보고 예술계에 발을 들였다.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작은 수조 안에 다양한 생물들을 등장시킨다. 인간과 비인간, 문명과 자연, 파괴와 회복 등의 주제를 던지며 우월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닌, 생태계의 한 요소로 작게 존재하는 인간을 묘사한다. 그의 작품 속에 있는 네온 불빛은 특정 파장에만 반응하는 생물들에 대한 언급이다. 나는 이것이 들으려고 하는 사람에겐 들리고, 보려고 하는 이들에게는 보이는 자연의 언어로 느껴졌다.


Max Hooper Schneider의 작품 및 작업실 풍경. 해양 생태학자의 실험실 같다. 사진출처는 모두 New York Times.


제목의 '미술과 산호초'에서 미술은 art이기도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misool 섬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한데, 인도네시아의 지명이다. 파괴된 산호초를 되살리기 위해 MPA(Marine Protected Area)로 지정된 이후 산호 및 상어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고, 생태계의 다양성이 유의미하게 증가 중인 세계에서 몇 안되는 지역 중 하나이다. 인간과 자연의 공생관계는 아주 옛날부터 예술에서 자주 다뤄지는 주제인데 마침 요즘은 산호초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것 같아 반갑고 기쁘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으기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