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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파꽈리 Mar 01. 2024

들꽃처럼 피고 지는

며칠 전 TV 채널을 돌리다가 어느 케이블에서 <주몽>을 재방송해주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검색을 해보니 첫 방송 날짜가 무려 2006년 5월. 세월 참 빠르다. 잠시 채널을 고정하고 시청을 하던 중 문득 떠올랐던 건 들꽃에 관한 에피소드. 역사왜곡이니 뭐니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의 재미는 딱! 해모수가 죽을 때까지만 유효했던 것이기에 그 이후로는 아예 잘 챙겨보지도 않았었다. 


어쨌든 들꽃은 해모수와 주몽이 유화부인을 빗대어 했던 말인데, 언덕배기에 앉아 노을 지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한 사람은 그 언젠가 사랑하던 여인을 지켜주지 못했다 자책하면서, 또 한 사람은 현재 어머니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바로 이 들꽃의 이미지를 가져오고 있었다. "나에겐 들꽃 같은 여인이 있었단다."로 운을 뗀 해모수에게 주몽이 "저 또한 들꽃 같은 여인이 있습니다."로 화답했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당시 드라마 속의 상황도 상황이었지만, 굳이 그것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들꽃은 우리에게 가녀리고 연약해서 보호해줘야만 할 것 같은 이미지로 자리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 그대만을 위해서 피어난

저 바위틈에 한 송이 들꽃이여

돌 틈 사이 이름도 없는 들꽃처럼 핀다 해도

내 진정 그대를 위해서 살아가리라

언제나 잔잔한 호수처럼

그대는 내 가슴에 항상 머물고

수많은 꽃 중에

들꽃이 되어도

행복하리



하지만 조용필의 <들꽃>은 이와 다르다. 1985년에 발표한 그의 7집 앨범에 실려 있는 곡. 이 노래의 가사를 음미해 보면 뭐랄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사람이 있는데 그 마음씀씀이를 드러내지 않은 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끝없이 상대방을 응원하는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녀리고 연약한 모습으로 피어난 들꽃이 누군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돌 틈 사이 이름도 없는 들꽃으로 피어도 진정 그대를 위해서 살아가겠다 하는 다짐에서 엿볼 수 있는 사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상호 간에 온갖 감정을 복합적으로 교류하는 그런 보편적인 양상을 띠는 것이 아닌, 어느 한쪽에서 상대방의 슬픔과 괴로움을 다독이는 위로의 형태로 그려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이름이 없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평소 상대방이 그 들꽃 같은 존재를 잘 알지도 못한다는 의미 아닌가. 행여 알아도 별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다는 것 아닌가. 


흔히 정열적인 꽃으로 대변되는 장미와 같은 사랑까지는 아닐지라도 평소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들꽃의 사랑이라니 가히 측은하다 할 수 있겠으나, 또 한편으로는 이 같은 들꽃의 이미지가 오히려 사랑의 본질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복효근의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라는 제목의 시도 이 노래의 분위기와 비슷하다.

                                                                                                                                                                      


내가 꽃피는 일이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면

꽃은 피어 무엇 하리

당신이 기쁨에 넘쳐

온 누리 햇살에 둘리어 있을 때

나는 꽃피어 또 무엇 하리

또한

내 그대를 사랑한다 함은

당신의 가슴 한복판에

찬란히 꽃피는 일이 아니라

눈두덩 찍어내며 그대 주저앉는

가을 산자락 후미진 곳에서

그저 수줍은 듯 잠시

그대 눈망울에 머무는 일

그렇게 나는

그대 슬픔의 산 높이에서 핀다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가을 산자락 후미진 곳에서 잠시 그대 눈망울에 머무는 꽃. 그렇다, 이게 바로 들꽃이다. 당신이 기쁠 때는 그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곁에 있을 것이므로 나는 안중에 없을 것이나, 당신이 후미진 곳에 앉아 슬픔으로 괴로워할 때 불현듯 당신의 눈에 띄어 잠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그런 존재로서의 나. 


비록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당신의 눈망울 속에 피었다 진다 한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또다시 예전처럼 까마득히 잊힌다 한들 묵묵히 당신을 생각하고 응원하는 존재, 들꽃. 이 같은 들꽃의 위로를 사랑이 아닌 그 어떤 다른 의미로 읽을 수 있을까. 특히나 마지막 시구는, 당신이 슬픔에 젖어있는 고통스러운 순간에야 비로소 내 사랑이 전해질 수 있다는 의미로도 읽히는 터라 더더욱 애잔한 느낌이다. 


이쯤에서 다시 조용필의 <들꽃>을 떠올린다. 가사도 가사지만, 낭만적으로 들리는 노래의 선율에서 어딘가 모르게 왠지 서글프고 안타까운 면모를 감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언젠가 누군가의 눈망울 속에서 잠시 들꽃처럼 피었다 진 적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혹시 또 모르지, 지금 한창 피어나고 있는 중일지도. 사랑 때문에 들꽃이 피고 진다. 아니다, 들꽃은 지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들꽃의 존재를 잊어버리는 것일 뿐. 잊고 사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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