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글씨, 그리고 편지.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우리가 과연 가까운 미래에 "손글씨"라는 단어를 보게 되리라 짐작이나 했을까 싶다. 글씨야 당연히 손으로 쓰는 거라는 생각에 이 같은 단어의 출몰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것 자체가 그저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었을 테니까. 한 나라의 국어는 실로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창조되고 조립되면서 다듬어지는데, 그중 한 예가 바로 이 손글씨처럼 많은 사람들에 의해 빈번하게 사용되는 단어가 신조어로 채택되는 경우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편지"는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하는 건지도.
요즘엔 좀 뜸한 것 같은데, 아무튼 손글씨라는 단어가 출몰하기 시작할 즈음부터 방송이나 신문에 악필에 관한 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했었다. 주로 초등학생이나 논술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이 타깃이 되었는데, 요약하자면 예전 학생들에 비하여 대체적으로 그들의 글씨가 엉망이라는 것이었다. 인터넷 게임이나 워드 프로세서 등 컴퓨터에 익숙한 세대들이라 단지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과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보니, 정작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은 줄어들게 되고 그 때문에 그들의 글씨가 점점 더 엉망이 되어 간다는 논리를 담고 있었다. 물론 이런 종류의 기사는 악필 그 자체보다는 컴퓨터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야기되는 일상의 여러 폐해들에 대하여 일종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지만, 어쨌거나 이 같은 악필의 증가는 세대가 거듭할수록 그들이 손글씨의 장점과 매력을 점점 더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방증으로도 볼 수 있었다.
지금의 내 글씨체는 중학교 때 완성된 것이다. 완성이라고 하니까 어감이 좀 이상한데 아무튼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러 지금은 내 나이에 걸맞지 않게 되어버린 그때의 그 글씨체를 아직까지도 쭉 고수하고 있다. 한창 글씨체를 연습하던 시절에 한 번은 바탕체로도 써보고, 한 번은 이탤릭체처럼 글씨를 아예 한쪽으로 기울여서도 써보고, 또 어떤 때는 초록색 칠판을 하얗게 수놓던 어느 선생님의 글씨체를 흉내 내보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돌이켜보건대 내가 나만의 글씨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제일 먼저 했던 일은 모든 글씨를 고딕으로 쓰는 것이었다. 정확한 기간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동안 그렇게 쓰다가 어느 순간부터 자음과 모음의 형태에 조금씩 변화를 주기 시작했는데, 막상 '아, 이렇게까지 바뀌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의 내 글씨체는 고딕의 형태와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난 그 글씨체가 마음에 들었다.
지금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디지털화되어 버린 시대다. 이 같은 일반적인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며 여전히 각광을 받는 것들이 있으니 그중 하나가 바로 손으로 직접 쓴 편지가 아닐까 싶다. 손글씨의 경우에서처럼 사람들은 이것을 손 편지라고 부른다. 이것과 대비되는 디지털 서신의 표본으로는 E-Mail을 생각할 수 있겠는데, 따지고 보면 사실 E-Mail이라는 것도 보다 더 간편하고 신속한 사용이 가능한 메신저 프로그램이나 SNS서비스에 그 자리를 내준 지 이미 오래다. 스피드가 생명인 현대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실로 당연한 것이지만 누가 어떤 내용을 전달하든지 간에 그 모든 것이 돋움체나 바탕체, 굴림체 등처럼 컴퓨터가 허용하는 몰개성의 TTF(True Type Font)로 간단하고 무료하게 표현된다는 사실은 때때로 기분을 씁쓸하게 한다.
사용자의 기호가 다양한 만큼 시간이 흐를수록 컴퓨터에서 사용 가능한 폰트의 수도 늘어나고 있지만, 과연 이 같은 폰트 수의 변화가 사용자들에게 몰개성 타파의 느낌을 심어 줄 수 있을까. 하기야 여러 업체들에서 다양한 폰트를 개발/제공하는 것은 각 사용자의 개성 추구보다는 자사의 상업적인 이득에 초점을 맞춘 하나의 전술에 불과하므로 애초부터 나의 관점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긴 하지만. 더구나 폰트 종류의 양적 팽창은 상대방이 손으로 직접 쓴 글씨를 보면서 글을 쓸 당시 그 사람의 마음도 함께 읽어내는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날로그적 감성이란 그저 옛것을 동경한다는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가깝게 지내 온 사람에게서 나는 향기와 같은 따뜻하고도 정겨운 일상의 냄새들을 잊지 않고 그리워한다는 일종의 열의다. 그리고 적어도 내게 있어 손으로 쓴 편지는 그 같은 열의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등장하던 종이갑 편지함이 내게도 있다. 오래도록 들춰보지 않아 가물가물한 기억의 틈바구니 속에 표류하고 있을 여러 이름들. 필체가 시원시원했던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편지, 미모만큼이나 예쁜 글씨체를 지니셨던 중학교 영어 선생님의 편지, 대학교 오리엔테이션 때 친구들과 나눴던 롤링 페이퍼, 그리고 오래전 친구들의 삐뚤빼뚤 글씨가 담긴 크리스마스카드 등등 이 모두가 해묵은 편지함 속에서 조용조용 저마다의 숨소리를 내고 있을 것이다. 서로 함께 어우러지면서 그렇게 구수한 냄새로 발효되면서.
사랑받는 기분을 경험한 사람의 마음속에 자연스레 사랑을 주고픈 마음이 생기는 것처럼, 손으로 쓴 편지를 받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은 그렇게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것이다. 상대방이 보내온 편지 속 글씨에서 그 사람의 표정을 읽어내는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은 또한 그렇게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것이다. 그는 컴퓨터의 폰트로는 결코 공유할 수 없는 그 어떤 소중한 감정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가끔씩 누군가에게 애정을 담은 손글씨로 말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