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2학기가 시작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선생님께서는 며칠 여유를 줄 테니 교실 뒤 벽면을 깔끔하게 꾸며보라는 과제를 내주셨다. 말하자면 환경 미화의 일환이었던 셈. 그러나 막상 우리들의 나태함 때문에 해당 일은 지지부진했고 급기야 정해진 날짜로는 도무지 과제 달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결국 어느 날 방과 후 선생님께서는 당시 그 일의 책임을 맡았던 나를 부르시어 따끔하게 혼을 내셨다. 훈계의 내용이야 뭐 뻔한 것이었는데 사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며칠이 지난 후 어머니가 나를 부르시고는 그 일에 대한 언급을 하셨던 것.
말씀의 내용이 내가 짐작하고 있었던 바가 아니었기에 좀 의아했다. 그러니까 내 딴에는 "앞으로는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정도를 예상했는데, 의외로 "선생님께서 말씀하실 때 꼬박꼬박 '~습니다'로 대답했었니?"라는 물음을 던지셨던 것이다. 이를테면 "예"를 "알겠습니다"로, "아니요"를 "아닙니다"로, "열심히 할게요"를 "열심히 하겠습니다" 식으로 대답했던 나 때문에 선생님께서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말투가 너무 딱딱한 것이 아무래도 가정적으로 혹시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 급기야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까지 하셨던 것. 소령으로 예편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은 탓도 있었을 테지만, 어쨌거나 나는 당시 선생님을 대하는 내 말투에 대해 그 어떤 부자연스러움도 느끼지 못했었는데, 정작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꼬마 아이가 꼬박꼬박 군대식으로 대답을 하는 것에 심히 난감함을 느끼셨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때 그 일로 어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다소 허탈한 웃음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말투에 관하여 다시 한번 난관에 봉착했던 때는 대학을 다니기 위해 다년간의 여수생활을 마치고 막 서울로 올라갔을 시기였다. 야들야들하고 간드러진 서울 말투가 허벌나게 남사스러워서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거센 억양의 사투리로 점철된 19년 숙성의 내 언어는 과연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그러나 사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한 6개월 정도 지나고 보니 나도 모르게 서울 말투에 적응이 돼 있었으니까. 물론 이 같은 적응은 지극히 대외용이었고 고등학교 동문이나 고향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또 자연스레 투박한 사투리가 나오곤 했었다. 여기서 주의사항 한 가지! 그런 자리에서 혹시나 실수로 서울 말투를 구사하기라도 하면 십중팔구 매장 당하는 분위기였다는 것.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방심을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생일대의 비극이 일어나고 말았다.
서울생활에도 어느 정도 이력이 붙으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주로 서울 말투를 쓰게 되었는데, 하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여자 동생과 바로 그 서울 말투로 전화 통화를 하다가 용코로 걸려버렸다. 누구에게? 당연히 고등학교 동문, 그것도 1년 선배에게. 이 부분에서 나름대로 변명을 좀 하자면, 통계로도 나와 있듯이 보통 남녀 사이에 전화 통화를 하게 되면 동성끼리 하는 것보다 억양이나 말투가 조금씩 부드러워지지 않는가. 그래서 생각하건대 당시 내 통화 또한 "밥 묵었냐?"를 "밥 먹었니?"로, "감기 걸렸냐? 글믄 약을 묵등가 개기등가!"를 "감기 걸렸어? 약은 먹었니?" 정도로, 그러니까 보통이라면 그다지 무리 없는 수준의 언어 구사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별것 아닐 수도 있었던 그 일이 엄청나게 커져버렸다.
그 후로 선배는 동문들이 모이는 자리만 생기면 어김없이 그때의 일을 들먹였다. "야가 그때 어쨌는지 아냐? 아따 니글거리는 비음을 섞어 코를 벌렁거림시롱 '어머머, 감기 걸렸엉~? 이를 어쩐다니~!'라며 온갖 아양을 다 떨어불드마!"와 같은 충격적인 발언을 일삼았던 것. 그 당시 주위를 살피지 못한 채 전화 통화를 했던 내 행동에 대해 쓰나미로 몰아치는 후회를 삼키며 나름대로 해명을 했지만 상황을 되돌리기엔 도무지 역부족이었다. 그 얘기가 언급될 때마다 동문 선배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혀를 끌끌거리며 쓴웃음을 지었고, 동문 친구들은 벌레 씹은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으며, 동문 후배들은 "진짜 그래부쏘? 왜 그랬소? 아따 거 좀 참지~"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오곤 했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었다. 정말이지 쪽팔려서 디지는 줄 알았다.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당시 내 가슴을 쥐어짜던 쪽팔림의 강도는 약해졌지만, 고향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그 얘기가 나올 때면 아직도 살짝 움찔움찔하게 된다.
영어에 baby talk라는 게 있다. 대표적으로 엄마가 아가에게 말을 할 때 "호로로로롱 까꿍~", "우리 애기 까까 먹을까요", "땅에 떨어진 건 찌찌라 먹으면 때찌할 거예요"와 같이 어린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귀엽고 앙증맞게 구사하는 용어를 일컫는 말이다. 이처럼 엄마가 어린아이에게 말을 할 때나 아이돌 스타를 향한 팬심을 표출할 때, 그리고 연인들끼리 사랑의 속삭임을 주고받을 때 등등 일상에서 다양한 베이비 토크의 예를 접할 수 있다. 웃지 못할 내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베이비 토크라는 것도 실은 그 어떤 정형화된 패턴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에 따라 어떤 표현은 베이비 토크가 되고 또 어떤 것은 해당 사항이 없고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베이비 토크처럼 온몸에 닭살을 돋게 하는 말들의 범위가 내 경우엔 다른 사람들보다 다소 넓은 편이었던 것. 어렸을 때부터 "~습니다"식의 표현에 익숙해져 있었던 내가 그 언젠가 아는 여자 동생과의 통화 중 무심코 내뱉었던 말은 나 스스로 자초한 치명적인 과오였던 셈. "감기 걸렸어? 약은 먹었니?"라고 한마디 했다가 단박에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야 했었던 내 슬픈 추억, 그 아킬레스건! 사정이 이러하니 내게 있어서 "밥 먹었엉?", "우리 애기 귀요미!", "쓰담쓰담~" 이런 말들은 사실 거론할 필요도 없는 전형적인 베이비 토크들이다. 내 피부를 심각할 정도로 오돌토돌하게 만드는.
그러나 나는 내 닭살을 이유로 베이비 토크를 하는 사람들에게 "그거 좀 안 하면 안 되겠소?"라고 할 수는 없다. 들리면 들리는 대로 그냥 꿋꿋이 참아내야만 한다. 그리고 남몰래 다짐한다. 나도 언젠가 다시 누군가와 사랑을 하게 되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감춰진 본능에 불을 지르는 심정으로 침을 튀기며 베이비 토크를 뿜어내보리라. 물론 오직 내 사람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라고까지 써놓고 보니, 어느새 내 몸에 닭살이 돋아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