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여느 때와 달리 오늘은 일찌감치 분주하게 몸을 움직였다. 먼저 집 근처 도서관에 들러 책 몇 권을 빌렸고, 이마트에 가서 상품권 몇 장을 교환하고는, 자주 가는 반찬가게를 찾아 밑반찬 서너 개를 샀다. 딱 세 문장만을 이어 썼음에도 왠지 숨이 차는 것 같은 느낌. 언제부턴가 일상의 루틴을 벗어나면 몸이 먼저 피곤을 말하고 연이어 마음까지 덩달아 탈진의 신호를 보낸다. 이럴 때 사용하라고 지난날 그렇게 기프티콘을 보내줬던 걸까. 고마운 사람들. 스타벅스에 들러 바질 치즈 포카치아 빵과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잠시 시간을 보냈다. 원래는 대충 빵 하나 샀다고 쓰려 했는데 이왕 루틴을 벗어난 김에 스타벅스 홈페이지에서 기어코 빵 이름을 찾아 적어봤다. 여러모로 좀 이상한 하루다. 어쨌든 약간의 여유가 생긴 탓인지 비로소 주변의 풍경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가 아니라 눈이 올 것만 같은 날씨. 눈이 살짝 뻑뻑하고 침침하다 싶을 땐 비가 아니라 눈이 오곤 하지 않았던가. 잠깐 오늘 날씨를 검색해 보니 눈은커녕 비 소식도 없다. 내 기억은 점점 믿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내 일상의 루틴 중에 한 대목은 이렇다. 아침형 인간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은 찢어발긴 지 오래. 나이가 들면서 멜라토닌 호르몬의 부족으로 새벽잠이 없어진 탓에 6시 조금 넘어 회사에 도착을 하는데, 업무 준비를 비롯한 약간의 인터넷 서핑에 책도 좀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8시 부근에 이르러서는 근처 커피집에 들러 아아를 시킨 후 20분쯤 주변을 산책한다. 쉼 없이 키보드를 쳤더니 살짝 또 피곤해지는 느낌. 아무튼 그렇게 항상 가는 커피집이 있는데, 며칠 전에는 직원 한 분이 내가 주문한 아아와 함께 불쑥! 2024년 탁상달력 하나를 건네왔다. 단골 분들에게 드리는 거라는 멘트를 덧붙이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면서 받아 나오긴 했는데 한편으로는 살짝 당황스러웠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난 몇 달 동안 그곳에 들르면서 근무하는 직원들 얼굴을 한 번도 제대로 본 기억이 없다.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고 바깥 풍경을 보며 잠시 기다렸다가, 음료 나왔다고 호출을 하면 아무 생각 없이 받아서 나오는 극한의 단조로운 프로세스를 선호하는 터라 직원들 얼굴을 살피고 말고 할 여유가 없었던 까닭이다. 나는 너를 아는데 너는 나를 왜 몰라? 고조선 시대 유머가 잠깐 뇌리를 스친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작년에도 있었다. 그때는 장소를 옮겨 미용실이었다. 언제부턴가 미용실은 대부분 예약제로 사람을 받던데, 미용사를 지정하지 않으면 해당 시간대에 예약이 잡혀 있지 않은 미용사가 머리를 손질해 주는 시스템으로 굴러간다. 처음엔 누가 잘라도 그 머리가 그 머리란 생각에 미용사를 지정하지 않고 머리를 잘랐는데, 언젠가 만났던 미용사 한 분이 나름 마음에 드는 스타일로 머리를 손질해 준 적이 있어서 이후로는 그분에게 머리를 맡겼었다. 그렇게 두어 번 정도 머리를 잘랐나. 원래 성정이 그러한 건지 아니면 마케팅의 일환인 건지 머리를 자르는 도중에 슬슬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보통 나는 머리를 맡기는 순간부터 눈을 감고 자는 척하기 시작하는데,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조용히 머리만 손질하고 갔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꾸 말을 걸어오고 그러면 슬슬 부담스러워지게 되고 급기야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유튜브에 보면 보통 남자들이 이런 성향을 보인다고 하던데, 나 또한 남자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개인적 특성 때문에 그런 건지 아무튼 결과적으로 그 미용실은 다시 찾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이런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때때로 미용실이나 음식점, 그리고 유통업 등등 서비스 업종에서 발휘되는 그들의 능력은 놀랍다. 기본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것은 당연지사고, 급기야 넉살 좋은 입담으로 달력 하나를 더 얻을 수도 있고 공깃밥을 무료로 먹을 수도 있으며 할인된 가격으로 헤어 클리닉을 받을 수도 있고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유통라인을 기적적으로 뚫어낼 수도 있다. 물론 주고받는 가운데 싹트는 인정이라고 그들 또한 단골이 되거나 상호 이익창출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등 성심을 다한 보답을 하겠지만 말이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나도 이들처럼 많이 외향적이고 활달한 편이었는데, 학점을 내팽개치고 놀고먹는 일에만 집중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역설적으로 극히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탈바꿈되어버리고 말았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이건 조선 시대 유행가 가사였던가.
어쨌거나 남들이 이런 나를 알아주든 말든 내가 왜 이런지 스스로 알든 말든, 삶의 이력으로 굳어진 내 일상의 루틴은 이런 모습을 띠고 있다. 알은척하지 말아 주세요. 안 그러면 다시는 들르지 않을지도 몰라요.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불편해서, 타인이 온전히 타인이 아닌 모습을 보는 게 어딘가 모르게 부담스러워서. 궁극적으로 보면 내 이기심의 발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지 않다 느끼는 지금 시점에서 뭔가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도 사실 귀찮은 일이다. 인간관계라는 무형의 영역에서 땅따먹기를 하듯 날카로운 선을 긋는 게 사뭇 냉정하게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이런 냉정함을 알아차릴 만큼 그들 또한 그렇게 너그러운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다행히 일회성으로 끝난 탁상달력 이벤트 때문에 그 커피집에선 다시금 내 일상이 가동 중이다. 머리에 까치둥지를 얹고 있는 것 같다는 동료 직원의 의견에 힘입어 조만간 미용실에도 들를 예정인데, 그저 눈을 감은 채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언젠가의 그 역설의 시간으로 한번 되돌아가볼 참이다. 눈이 오지 않아도 뻑뻑하고 침침한 눈을 눈꺼풀 속에 굴려가며, 차마 믿을 수 없는 기억을 끝끝내 또다시 믿어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