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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파꽈리 Dec 01. 2023

알 수 없어요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하세요 /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


노래를 먼저 생각하고서 제목을 고른 게 아니다. 막상 제목을 써놓고 보니 자연스레 이 노래가 떠올랐다. 알 수 없는 상대의 마음이 너무나 궁금해서 나지막이 중얼거려보는 호기심과 의문. 이 노래가 나왔을 당시엔 별로 신경쓰지 않다가 지금에 와서야 뒤늦게 헤아려보는데, 궁금한 게 도대체 얼마나 들어있나 살펴보니 무려 12가지나 된다. 당신에 대해 이것저것 알고 싶은 게 있으니 제발 답 좀 해달라 애원하는 말로 노래는 끝이 나지만, 정작 노래를 들었던 나는, 내 여운은, 쉬이 끝나지 않아 찜찜한 마음. 알 수 없으니 알고 싶다는 건지, 아니, 알고 싶은데 알 수 없다는 건지, 선후관계마저 애매해져 결국엔 길을 잃고 헤매는 심정으로 다시 한번 노래를 듣게 된다. 노래 제목이 <알고 싶어요>인데, 왜 나는 순간 <알 수 없어요>로 착각해 가사를 검색하고 있었는지, 신통치 않은 검색 결과를 두고 알 수 없는 당신 탓을 하다가 끝내 이렇게 몇 자 적고 있는 나를 타박하면서까지 노래를 듣고 있다.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 당신도 쓰윽 훑고 가셔요"


멜로디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만한 폭풍 감성으로 자신의 마음을 송두리째 내어주는 노랫말을 본 기억이 없다. 말 그대로 스스로 무장해제를 한 채 상대에게 나를 보여준다. 서툴기는커녕 노골적인 고백으로 보이는 언사를 곁들이며 내 마음 쓰윽 훑고 가라 한다. 주저하는 연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라니. 나만큼이나 망설이는 당신을 위해 내 마음을 열어놓는다지만, 당신을 향해 자라난 내 마음 못 본 체하며 꺾어버릴 순 없는 이기심도 있는 거겠지. 그런 배려와 이기심 사이 어디쯤에서 서로를 만나 사랑을 하다가,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언젠가 또 무심히 헤어지더라도, 주저만 하다 끝내 돌아서는 미련으로 아파하는 것보다야 이게 훨씬 낫다는 거지. 마주 보던 그대로 뒷걸음치며 서로의 안녕을 보자는 말은 짐짓 과장된 이별의 제스처 같긴 해도, 망설임 끝에 이뤄낸 사랑을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야 할 때, 꽃피고 지는 아쉬움으로 매조지는 아련함 정도는 선뜻 눈감아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건 2절 시작되는 부분의 가사. "나의 자라나는 마음을 못 본 채 꺾어버릴 순 없네." 가사의 맥락을 따져보면 '채'가 아니라 '체'가 맞을 듯한데 검색으로 나오는 모든 페이지들에서 '채'로만 나오니,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오히려 이상한 건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 자리에서 굳이 덧붙일 필요까지는 없는 사족에 불과하지만,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어디서 이런 궁금증을 풀어 보겠나 싶은 생각에.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이었다. 그때는 한 반 정원이 60명을 넘을 정도로 학생들이 많았는데, 내 기억으론 책상을 4분단으로 나눠 분단마다 8줄 정도를 만들고 한 책상에 두 명씩 여자끼리 남자끼리 그렇게 앉았었다. 그 당시 내가 좋아하던 여자아이는 B였다. 비극적이었다. 차라리 멀리 떨어져 앉았다면 오히려 더 나았을 뻔했던 자리 배치였다. 하루는 끓어오르는 애정(이라니 그 나이에 가당키나 한가)을 참지 못하고, 옆자리 C에게 자리를 좀 바꿔 앉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적절한 이유를 찾기 위해 한동안 고민을 하긴 했으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뽑아내기엔 그때 나는 너무나 어렸다. 그냥 별다른 이유는 없고 이쪽저쪽 바꿔가며 앉아보고 싶어서, 라는 씨알도 안 먹힐 얘기를 늘어놓았다. 어리숙했던 나와는 정반대로 녀석은 그쪽 방면엔 아주 영민했다.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 놈이었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직설적으로 토해냈다. "너 B랑 가까이 앉고 싶어서 그런 거지?" 하아~ 이 새ㄲ.. 나 또한 즉각적으로 아니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과도한 부정은 긍정의 의미라는 걸 녀석에게 확인시켜 주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비록 어린 나이긴 했으나, B도 아닌 타인에게 내 마음을 들킨 게 너무나 부끄러웠다. 치욕적이었다. 아직도 녀석의 이름을 기억한다. 결국 그때 나는 자리를 바꿔 앉지 못했다.


몇 개의 직업을 거친 후 세무공무원을 하던 때였다. 매일매일 야근을 하지 않으면 그다음 날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만큼 업무량이 많았다. 내가 원했던 삶은 이게 아니었는데. 뒤늦은 후회를 곱씹다가 단물 다 빠지고 짠물과 쓴물만 씹히던 무렵 의원면직을 했다. 아무튼 당시 직장 동료들과 회식을 하던 어느 날 상사 한 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말씀의 요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신입공무원들과는 달리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상태에서 입사를 했기에, 관리자 입장에서는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부분들을 체크하고 계셨던 모양인데, 사무실 안에서가 아닌 조금은 편한 회식 자리를 빌려 잠시 그간의 소회에 대해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 당시도 그랬고 이후 지금 몸 담고 있는 곳에서도 웬만해서는 직원들과 서로 개인적인 얘기를 나누거나 하진 않는 편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대상이 직장 동료이건 민원인이건 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을 만큼의 감정을 담아 상대를 대하지 않는다. 하루는 이런 얘길 들은 적도 있었다. "화를 내시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여러 가지 뉘앙스가 섞여있는 말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적어도 겉으로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보통 우리는 즐거울 때나 기쁠 때보다는 슬프거나 힘들 때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판단의 대상이 되는 게 달갑지가 않다. 그래서 표면적으로야 내 모습이 평온한 듯해도 그 속은 전혀 다른 모습일 때도 있는 것이다. 오롯이 혼자인 시간엔 격한 슬픔에 울기도 하고,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욕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대외적으로는 바른생활 사나이란 말을 듣기도 하지만, 혼자일 때면 비도덕적인 상상으로 스스로를 희롱하기도 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상대에게 마음을 들키는 일은 오래전부터 부끄러운 것이었다. 젊은 날 희구했던 사랑부터 시작해 전면적인 내 삶의 바탕이 그러했다. 비좁은 마음속에서 넘실대고 출렁이던 감정들. 시원하게 밖으로 퍼내지 못하고, 발원한 그 자리에서 다시 서서히 잦아들기만 철저하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불쌍하고 애처로웠던 삶, 그런 삶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래서 나는 이선희의 노래처럼 당신을 궁금해하기만 하고, 정작 잔나비의 노래처럼 나를 보여주는 일엔 인색했다. 뭔가 바라는 일에만 급급했지, 차마 나를 고백하지는 못했던 날들. 알 수 없는 당신을 내가 궁금해하듯, 알 수 없는 나를 당신도 궁금해할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사소한 그 무언가에도 나는 아프고 슬프고 다칠 수 있다 얘기하는 게 부끄러워 속으로 꽁꽁 싸매기만 했던 마음. 이런 마음 들켜서 실망을 주면 어떡하지. 내 마음 편하자고 내 마음 내가 갉아먹는 동안, 쓸데없는 고민과 근심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빌어먹을! 이 말을 내뱉고 싶어서 지금껏 이 글을 써 내려온 걸까. 요 며칠 출퇴근길에 잔나비의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 당신도 쓰윽 훑고 가셔요" 감추고 보여주지 않아 읽기 어려운 내 마음이라 쓰윽 훑고 가란 말 차마 할 수 없는데, 그럼에도 최면에 걸린 듯 벙싯벙싯 웃으며 입놀림을 거듭했다. 해뜨기 한참 전에 출근을 하고 해 지고 사위가 어둑할 때에야 퇴근을 한다. 나를 맞이하는 어둠이 그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어, 어딘가 감춰두었던 용기라도 꺼내보고 싶었던 걸까. 내 마음 훑고 가셔요. 내 마음 읽어주셔요. 마음 한껏 열어놓은 채 기다리고 있을게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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