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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식 Jul 12. 2021

10억을 투자받았습니다?!??

[자기혁신공작소 프리시즌(3)]

※주의: 오늘의 글은 80% 픽션입니다. 사실로 오인해 발생하는 결과와 사회적 물의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장마와 높은 습도를 기록하던 지난 주 어느날, 남산골 산책을 즐기는 나에게 그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남산골에 사는 허생이라 하는데..."


가끔씩 길을 걷다 마주치는 범상치않은 나이를 알 수 없는 장년이다. 나보다 연배는 더 있어보이나 장년도 아니고 노인도 아니고 애매한 사람이다.


"가끔씩 마주쳤는데 이번 기회에 통성명이나 제대로 합시다."


상당히 떨떠름했다. 정상인듯 정상아닌 이런 사람에게서 풍기는 아우라를 경험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거부할 수 없고, 도망가기도 애매한 그런 아우라. 외견상으로는 전혀 불법적이지도 않고, 나에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니니까...


공원 구석에 앉아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들어야만 했다.


"일찌기 책만 읽고 공부만 하려고 했는데, 마누라 성화에 비즈니스에 뛰어들게 되었죠. 사업은 해본 적 없지만, 공부를 하다보니 지금 이 시대는 노동이 돈을 버는게 아니라 자본이 돈을 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


우선 투자자가 필요해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채업자 변 회장을 찾아가 10억을 융통했죠. 이후 나는 돈으로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했어요. 자본을 손에 넣고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유통에 투자해 돈을 불리는 데 성공했어요."


이 범상치 않은 허생이라는 자는 요즘 말로 액셀러레이터와 벤처캐피탈 무를 하는 사람이었다. 투자자였던 변회장은 허생과 엑시트하며 10억의 투자금을 100억으로 불렸다 한다. 이후 변회장이 소개한 정재개인사들과 함께 허생은 창업기업들을 대상으로 여러가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후 변회장이 나에게 했던 모험 투자를 나도 시작하게 됐어요. 전국을 돌아다니며 기업을 탐색했지. 아이디어는 좋은데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을 모으기 시작했어.


전국을 돌아다니다보니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특구들도 알게 되어 벤처타운을 하나씩 만들고, 거기에 스타트업을 차례대로 입주시키고 투자인프라와 운영인프라를 제공해 하나씩 성공시켰지..."


알고보니 가끔씩 신문에서 보게되는 <율도벤처타운>이 그의 입김이 들어가 만들어진 곳들이었다. 대체 이 사람은 뭘 하려는 걸까? 내게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 걸까?


"사실 당신에 대해 나름 조사를 해봤어. 고생만 들입다 하고 해놓은 거 얼마 없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더군?"


불쾌했다. 한참 이야기하더니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폄하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왜 내게 접근한 걸까? 별 볼 일 없다면서 가는 사람을 붙잡아놓고 뭐하는 거냐고 따져 물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지 않나? 일부러 나를 만나려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은데, 이렇게 오며가며 계속 부딪히는 것도 특별한 인연인거지!! 그래서 그런 인연을 앞으로 잘 이어가볼까 해!"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내게 충격적인 말 한 마디를 뱉았다.


"당신에게 10억을 투자할까 해!!"


엥? 갑자기? 그리고 뭐라고? 10억? 무슨 근거로? 이거 신종 사기 아냐?


"당신 페이스북을 뒤져 보니까, 뭘 좀 해보려니 판공비가 연간 1억은 필요하다면서? 한 10억 넣어줄테니까 10년간 해봐! 아니 아예 1년에 3억씩 써서 3년 안에 뭔가 해봐!"


하긴 몇 달 전에 페이스북에 그런 글을 쓰긴 했다. 사실 내가 이끄는 팀을 건사하기 위해 최소한 그 정도 매출을 올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각오를 표현한 거긴 한데... 그게 이렇게 튈 줄은 몰랐다. 일단 침착하게 물어보았다. 내가 별 볼 일 없다고 해놓고 왜 투자할 생각을 하는 거냐고?


"알고보니 당신 나하고 여기저기 얽혀있었어. 벤처기업 막내로 있던 시절, 길가던 술취한 사람 불러놓고 PT해서 나중에 DI가 붙어 3억 투자 진행되었던 거 기억나나? 그때 그 투자팀 관련자가 나랑 일하는 사람이기도 해.


그밖에 자네가 구멍가게 창업해서 뭐 한다고 하던 시절에 거래하던 수입사 있었지? 거기 마케팅 담당자가 내가 투자한 스타트업 대표야. 자네를 알더군.


그리고 인쇄소에서도 일했지? 그때 자네가 마케팅한다고 보낸 팩스가 우리 집에도 한 장 와 있다네. 거래 업체 중 하나가 내가 투자한 출판사야. 뭐 이래저래 나랑 인연이 길어..."


나의 흑역사를 이렇게 꿰고 있는 사람을 처음 만나본거라 격하게 당황했다. 간만에 등골 사이로 왕땀 여러 방울이 또로록 흘러내려간다. 근질근질함과 긴장감에 몸을 살짝 떨게 되었다.


"무엇보다 얼마 전 고3을 대상으로 셰익스피어를 웨비나로 강의 했지? 그거 내 딸이 보고 있는 걸 우연히 지나가다 봤다네. 당신 얼굴이 나오더군.


이 정도로 나랑 징하게 인연이 깊어. 그래서 10억을 투자할 맘을 먹었지. 떼먹고 도망가더라도 어디선가 만날 거 같아서..."


여기까지는 여담이라고나 할까? 투자와 관련한 진솔한 이야기는 이후 식사+음주를 하면서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진실로 원한 건 자기가 투자한 스타트업들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었다. 기업으로서는 미숙한 스타트업... 그러나 존재가치를 증명해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그들에겐 또다른 특별한 뭔가가 요구된다. 그런 특별함을 두드러지게 할 평범한 누군가, 평범한 뭔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따라서 나는 그 생태계가 윤택하게 굴러갈 뭔가를 알아서 찾아서 해주길 바란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된다면 어차피 진행할 모험투자가 헛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 3년간 10억을 소모해 투자생태계가 건강해진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비용이라고...


여튼 저널리스트로서는 특종을 바라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러 다니는 잡종기자이면서, 고객이 주문하면 할 수 있는 메뉴는 다 만들어 올리는 심야식당 컨셉의 잡상인 컨셉의 비즈니스를 하는 나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즉, 꿈이었다. 꿈이라고요. 꿈!!! 첨부터 픽션이라고 했잖아요!!!


재미있으셨나요? 이 글은 WOD(Write on Demand; 주문자 방식 작문) 컨셉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애독자의 요청에 따라 얼마든지 장르와 내용을 구성해 연재가 가능한 싸구려 작가 윤준식이올습니다요... 흐흐흐...

저에게 스타트업 투자이야기를 컨셉으로 제가 10억을 투자받는다는 결말로 끝나는 짧은 소설 한 편 써달라는 요청을 받아 남산골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등장하는 '허생전'을 모티브로 작성해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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