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준식 Jun 09. 2022

조금 특이한 글재주&말재주,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윤준식 사용설명서(2)] 2022.06.09.

도저히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엉덩이 싸움이 중요한 일이라 자신을 감금한 채 하루가 되어가지만 진도는 나가지 않는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 작업을 재개하려는데, 뜬금없이 사방에서 전화가 온다. 결국 반쯤 포기한 상태... 뭐라도 끄적여야 또 한 걸음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머릿 속의 답답한 상념을 날려버리지 않으면 될 것도 안 될 것 같다. 산책없는 '남산골 산책일기'라니... 나 원 참!!!


지난 회에 이어 이번 회도 "준식씨의 특성 시리즈"로 이어 간다. 오늘은 그 두번째 '기술'편...

    *지난 편

         (1편) 지식 https://brunch.co.kr/@ventureman/31



(2편) 기술

남과 다른 글재주와 말재주는 있는데... 설명하기 참 애매하다!!!

눈썰미가 좋아 빨리 쓰고, 설명만 잘한다.


나는 문돌이다. 막손에 똥손이다. 공학적 개념, 벡터 공간감, 방향감각 그런 것도 없다. 그뿐인가 전형적인 요리못이다. 쏘맥도 내가 말면 맛이 없다. 커피믹스조차 나의 손을 만나면 그 맛을 잃는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매우 암담하다. 대체 내가 할 줄 아는 건 뭐냐?


그럼에도 지금까지 끈덕지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나도 나만의 생존기술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굼벵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나는 나대로의 재주가 있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니 뭐라도 털어보자. 우선 자격증이라고 할 만한 게 달랑 2종뿐이다. 운전면허증, PC정비사 2급 자격증... 


더 이상 쓸 게 없다. 갑자기 허탈하고 한심하다. 내가 고작 이것뿐이구나. 그러므로 이번 회는 이걸로 마치자...하는 암울한 생각을 뚫고 솟구치는 뭔가가 있다. 그렇다. 이런 암울함 속에서도 나의 손은 쉬지 않고 한 타, 한 타 쳐 나가고 있다. 이것이 나의 재주, 특화된 기술이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그렇다면, 나의 재주를 글재주라고 하면 될까? 그럼 나의 글쓰기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일반인 레벨에서 본다면 나는 글을 잘 쓰는 편에 속하지만, 작가를 지망하는 이들이 모이는 이 브런치 세계에서 본다면 그 중에 묻힐 수밖에 없는 수준에 불과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나는 그다지 사색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속필(速筆)이라 불릴 정도의 속도는 아니지만 급하게 글을 쓸 경우, 평균 분당 30글자 정도의 속도로 글을 쓸 수 있다. 이게 뭐 대수냐고 하시겠지만, 분당 30글자를 쓰면 1시간에 1800자가 써지는데 이 정도면 A4 1장 반 정도의 분량이다. 즉 2시간을 주면 2페이지의 글을 쓴 후 1차 퇴고까지 가능하다는 소리다. 대체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보다 2~3배 정도 더 걸린다. 양호하다고 자부해도 될 듯하다.


대단한 글재주가 아니지만 정량적으로 분석하니 조금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그렇다면 정성적인 면에선 어떨까? 내 글을 읽고 감동했다, 뭔가 개념이 머릿 속에 쏙쏙 들어왔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냥 이런 설명이구나 정도로 이해했다는 정도의 평가다. 이런 이야기라면 문장 자체가 예쁘지는 않은 거다. 문학적 감수성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뭔가 다이내믹한 서사 구조를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탁월함은 없는 거다. 다만, 평가 속의 의미가 내 글에 실용성이 있다는 걸 인정받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겠다. 고로 점수를 메긴다면 70~80점 사이인 걸로 치자.


그렇다면 이런 글재주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독자에겐 이해가 안 되겠지만, 그건 눈이 좋아서다. 베껴 쓰기, 고쳐 쓰기를 잘 하는 게 나의 글재주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즉 짜깁기를 잘 한다는 소리다. 참고가 되는 텍스트에서 필요한 부분을 추려내 베끼고, 고쳐쓰며 요약하고, 이런 작업을 몇 번 반복하다보면 글 한 편이 완성된다. 창의력, 창작력이 부족하다고 비난하시는 분도 있을 게다. 그러나 나의 목적은 완벽한 글을 써내는 것이 아니라, 완성된 글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비난도 감수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학자로서의 두뇌가 있는 건 아니다. 빨리 훑고 베끼고 고치고나면 모든 기억은 문서에 저장되지 내 머리에 저장되는 건 아니다. 마치 컴퓨터의 메모리(RAM)와 하드디스크의 원리와 같다고나 할까?


이밖에 눈이 좋아 가진 특장점이 있다면, 글을 고쳐 쓰는 방식이 다른 이와 다르다는 점이다. 대부분 글을 고치기 전에 글을 찬찬히 읽고 그 의미를 곱씹고 난 후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그런데 나는 글을 고쳐나가면서 읽는 편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능력이 누구에게나 다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렇지 않았다. 이런 특성이 궁금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니 생각보다 이런 역량을 지닌 사람은 소수더라는... 속도의 빠름은 여기서도 작동하는 듯하다.


이런 재주들이 합성되다보니 말하기도 제법 잘 한다. 여기서도 구체적으로 따지자면 '설명'을 잘 하는 것 같다. 진행되고 있는 대화 내용을 파악해 요약해 전하거나 주위를 환기시키는 재주가 있다. 단, 유머가 넘치거나 멋진 말 한 마디로 청중을 사로잡지는 못한다. 그냥 설명 잘 하는 것까지다. 


좀 더 자의식 과잉 상태로 가 본다면, 설명을 잘 하는 재주가 있다보니 추가 설명을 위해 핵심적인 질문도 잘 던진다. 즉, 모든 담화가 설명에서 설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특성이 있어 팟캐스트가 나와 잘 맞았던 것 같다. 비인기 팟캐스트이지만 꽤 오랫 동안 여러 코너에 출연하거나 진행했다. 2014년이 처음이었으니 벌써 8년의 시간이 쌓였구나.


자자... 이제 정리해보자. 나는 글 잘 쓰고, 말 잘 하는 사람이다. 평균보통인보다 글을 빨리 쓰며, 그 이유는 베껴 쓰고 고쳐 쓰는 속도가 빨라서다. 텍스트 속에서 중요한 정보를 캐치하는 눈썰미가 있다는 건 안 비밀. 이런 특징들이 모여 설명을 잘 하는 장점도 갖고 있다. 설명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질문을 잘하기 때문에 대담을 잘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걸 토대로 콘텐츠를 만든다. 인터뷰 잘 하고, 팟캐스트 열심히 한다. 자랑에 이어 광고 하나 하고 가겠다. 들어달라.  (계속)



    *덕업상권: 지속가능한 창업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8853


    *매거진S: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꾼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8691


    *헬스톡톡: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5742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지식: 지적 대화와 상관없는 넓고 얇은 덕질일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