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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누 Jan 05. 2022

오리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보았다

2022년 1월 4일 화요일 1회차

2021년 2월, 울고 싶은데 울 힘도 없어서 나는 나를 데리고 뛰러 나갔다. 새로 이사 간 곳에는 마침 근처에 천이 있었고 나는 마침내 30분 간 무리 없이 달리기에 성공했으면서 동시에 다시 실패해 해가 다 갈쯤에는 1주 1회차 달리기만을 반복하는 사람이 되었다.


2021년에는 총 27시간 5분 4초 동안 173.5km를 9'22"의 페이스로 달렸고 약 8,000 칼로리를 소모했다고 한다.


겨우?

그러니까 2021년 내내 달리기를 한다고 그렇게 생색을 내고서는 전부 달린 시간이 하루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황당하고 조금 재미있다. 일주일에 네 번을 뛰었던 때가 있는가 하면 한 달에 하루도 뛰지 않은 날이 있기 때문이겠지. 2022년에는 조금 더 허황되지 않은 계획을 세우기 전에 조금 더 구체적인 달리기 플랜을 짜 보려고 한다. 최근에 OKR과 관련된 책을 읽었기 때문에 아직 다른 새해 계획은 짜지 못 했지만 이 포스팅을 위해서 달리기와 관련된 계획만 짜 보았다.

커다랗게 보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기초 체력 꾸준히 다지기가 목표지만 그것을 위해 달리기를 선택했으니 달리기 OKR을 설정해 본다.


기간: 3개월

O: 체력을 길러 지구력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달리기를 한다

KR1: 매주 월, 수, 금요일에 달린다

KR2: 런데이 30분 달리기 도전과 30분 달리기 능력 향상을 모두 뛰기(총 30회)

KR3: 5km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달리기 평균 페이스를 7초대로 마무리하기

오늘은 비록 화요일이지만 우선은 게으른 몸을 이끌고 나가서 뛰었기 때문에 기록을 남긴다. 달리다 보니 저쪽에서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는데 문득 해가 지는 곳으로 달리고 싶어졌고 지는 태양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뛰다가 내가 1년 내내 이쪽 길로는 한 번도 달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길로 쭉 가면 한강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늘은 비록 1주 1회차인지라 한강까지는 못 갔다. 달리는 도중에는 참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데 작년에는 남기지 못 했다. 올해는 조금이라도 남겨 보자는 취지에서 두서 없이 쓴다.

막 나갔을 때는 아주 추웠는데 달리다 보면 손가락 끝까지 열이 퍼지는 게 겨울 달리기의 신비로움이다. 아주 힘들었을 때는 그게 너무 감격스러워서 뛰다가 울컥한 적도 있었다. 밖이 아무리 추워도, 무슨 생각을 해, 그냥 뛰러 나가면 손끝까지 열이 돌고 저 멀리까지 뛸 수 있다. 그리고 그게 감사한 날이 온다. 나는 2020년에 발목을 접질리면서 3개월 간 부목을 차고 다녔다. 병원에서 잘못하면 수술을 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해서 한동안은 혼자 재활 운동도 참 열심히 했다. 그때, 두 다리로 걸어다니는 게 너무 생경해서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했던 걸 생각하면 역시나 천변을 달리는 지금은 감개가 무량하다.

외로울 때, 슬플 때, 세상이 나를 알아보지 않는 게 억울하거나 계속 살아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을 때, 내게는 달리기만한 게 없었다. 달리면, 달리다가 나 말고 이 시간에 달리는 사람들을 볼 때, 그 사람들이 나를 스쳐지나갈 때, 수없이 많은 강아지들이 산책하며 기쁘게 꼬리를 흔들 때, 천이 은하수 같을 때, 겨우내 얼어있던 땅들이 녹으며 이름을 알 수 있는 꽃들과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차례를 지키며 피어날 때, 그 모든 자연의 황홀한 탄생과 멸망을 목도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우리를 지나쳐가고, 우리는 두 발로 중력을 거스르며 땅 위를 박차고 앞서나간다. 물론 찰나에 다시 지구로 되돌아온다. 땅에 발이 착지하는 순간이 안도되던 날들. 나른하게 하품하는 고양이를 만나거나 친구와 함께 뛸 수 있던 날들.

지금부터는 그 날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추신. 달리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어쩐지 나이키 러닝보다는 런데이를 쓰고 있고 이 애플리케이션은 노래를 트는 게 다소 짜증 난다는 것 말고는 꽤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다. 런데이의 협찬을 받는다면 좋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혼자 다운받아 이용하고 쓰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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