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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누 Jan 13. 2022

또다른 빙하기가 찾아오면 어떡해

2022년 1월 12일 수요일 5회차

분명 늦게 잤는데 눈이 너무 일찍 떠졌다. 날씨가 너무 춥길래 미적거리다가 겨우 집을 나선다. 생각 없이 나섰다가 마스크를 쓰고 나오지 않은 것에 놀라 허겁지겁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걷기 시작. 생각보다 날이 춥지 않아 걷는데 힘이 들어간다. 며칠 전 눈이 온다는 소식은 응달의 트랙에 남은 눈들로 겨우 확인하고 나는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뛴다. 날이 아주 맑다. 문득 고개를 들면 끼어들기 감시 구간이라는 표지판이 높다란 방음벽 위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다. 5일차가 되면 겨우 한 번을 더 뛰는데 이제는 한강 공원 안까지 진입하게 됐다. 사람이 없는 정오의 달리기. 문득 모든 것이 거짓말 같아지는 순간이 온다. 나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마스크를 벗고 크게 차가운 공기를 마신다. 저 멀리 이름을 알 수 없는 다리가 그 위용을 자랑하고 그 위로는 수많은 햇빛이 부서진다. 조금 더 달리다 보니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오리가 떠 있던 천의 교차로는 꽝꽝 얼음이 떠 있다. 또다른 빙하기가 찾아오면 어떡해. 그런 가사를 잠시 떠올리다가 다시 뛰기. 오늘 같은 날은 마지막 달리기를 하고서도 힘이 들지 않아 그것이 마지막이라는 것도 끝에 가서야 알게 된다. 돌아와서는 거나하게 점심을 차려먹고 방바닥에서 낮잠을 잤다. 그런 것이 백수의 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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