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애마, 빨간색 모닝으로 퇴근을 하던 날이었다. 아, 눈부셔. 그날따라 지는 해가 유난히 쨍했다. 선글라스를 썼다. 출근길의 차 속도는 지지부진하지만, 퇴근길의 액셀러레이터는 '붕' 하고 늘 경쾌하고 가볍다. 저녁으로 뭘 먹을지는 늘 고민해도 행복하다. 큰길 맞은편에 있는 백화점 지하에서 플라스틱 팩에 얌전히 담겨 있는 샐러드를 사서 갈까, 백화점 옆 이마트에서 밀키트를 사서 후루룩 끓여 먹을까. 어쩜 저녁 햇볕이 이리 밝아. 그때였다. 쿵. 멀지 않은 곳에서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1, 2, 3초. 퍽. 차 뒤에서부터 느껴지는 진동이 내 허리, 어깨, 목, 정수리까지 전해졌다. 5중 추돌이었다. 고갯길 내리막에서 속도 조절을 잘 못 한 운전자가 앞 차를 박고 그 차는 다시 다른 앞 차를 박은 연쇄 사고였다. 중간에 끼인 나도 나지만, 인천-부천 간 7호선 지하철 연장 공사를 하고 있던 춘의사거리는 그야말로 차들이 엉켜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빨간 모닝을 몰던 초, 초, 초보 운전자인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경찰이 금방 출동했지만 사고 차량과 혼잡해진 도로를 수습하느라 어찌해야 할지 나에겐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도움 요청을 했다. 그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도착한 후 여러 가지 일을 처리했다. 차를 어떤 정비소에 맡길지 보험회사에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안심했고,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냈다. 그 이후 일은 상상하지도 못한 채. 일은 인명사고 없이 차만 수리하는 것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었지만, 내가 해야 할 뒷수습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춘의사거리를 꽉 막고 있던 거리에서 내가 놓쳤던 건 정신뿐 아니라, 지나가는 승용차, 버스 안에서 우리를 보고 있는 시선이었다. 퇴근하던 이들이 사고 장면을 보고 놀라고, 빨간 차에 함께 있는 우리를 목격하고는 커다래졌을 눈빛. 거긴 내가 근무하던 곳에서 차로 5분 거리. 아뿔싸, 우리는 비밀 커플이었는데. 그것도 학교 복도에서 마주칠 때 인사만 나눌 뿐인 교사와 사회복무요원 말이다.
처음부터 우리가 친해진 건 아니다. 이건 필시 우리 반 찬우 덕택이었다. 날이 갈수록 덩치가 커지는 찬우가 화장실 뒤처리를 못 하고 종종 실수할 때가 있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유치원생,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함께 있는 특수학교 40개 반 중에 딱 우리 반을 골라 그를 보조 인력으로 배치한 교감 선생님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아님, 찬우를 보고 웃는 그의 미소에 홀라당 넘어가 버린 내 세포들. 찬우 옆에 있는 그가 내 눈엔 해맑은 천사처럼 보였다. 그때는 말이지.
가끔은 춘의사거리에서 왜 그에게 도움 요청했을까 하고 내 머리를 쥐어박을 때도 있다. 조금만 기다렸으면 경찰보다 더 빨리 견인차가 달려왔을 테고, 친절한 설명은 보험회사로부터 들으면 되었을 텐데. 뭐, 급한 일 있다고 전화를 했을꼬. “최윤정 선생님, ○○○와 무슨 사이에요?” 다음날, 학교에 가자 질문이 쏟아졌다. 큰길 한복판에서 ‘나 그 사람이랑 사귀어요.”라고 동네방네 소문낸 게 됐다. 결국 우린 몰래 연애하다 들켰다. 그래도 ‘평생 행복 유일, 윤정’ 문구를 든 동료 교사의 축가를 들으며 결혼했다. 특수학교에서 사회복무요원을 한 경험 덕분에 퇴근 후, 내 이야기를 찰떡같이 알아 들어줘서 정말 고마운 신랑. ‘사랑과 믿음, 감사, 이해라는 주춧돌 위에 행복이라는 집을 짓고 살아라.’라는 아빠의 주례사처럼 잘 살아봄세. 주말 아침에 못 일어나고 비실대는 나를 보고 ‘이.생.망’이라면서도 부지런히 손을 놀려 쌀을 씻는 남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