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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뭇잎 Jun 20. 2023

‘작가와의 만남’, 달콤한 기억이기를

학교 앞 빨간 카페의 단골인 나는 8시 10분이 되면 항상 고민한다. 마실까, 참을까. 커피를 직접 내려 먹거나 커피 믹스를 마셔도 되지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는 다른 이가 만들어주는 커피니까. 돈 4천 원을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카페인을 충전하여 오늘치의 에너지만큼은 힘껏 내보겠어. 이번 주의 가장 큰 행사는 '그림책 작가와의 만남'이다. 특수교사인 내가 그동안 작가초청행사를 진행할 일이 없었다. 일반 학교에 다니는 특수학급 학생이 다른 학생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통합교육에 관한 예산이 나왔다. 나의 역할은 목적에 어긋남이 없이 돈을 잘 쓰는 일이었다.  

        

“작가가 되면 돈 얼마나 벌어요?” 학생이 내게 질문했다. 작가의 수입이 궁금해서 묻는 아이의 솔직한 질문이었지만, 행사 진행이 걱정되었다. 작가님이 오셨는데 아이들이 핸드폰을 보거나 졸면 어떡하지. 작가님에게 곤란한 질문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책 읽기를 어려워하는 특수학급 친구들에게 어떤 방법으로 내용 전달을 잘할 수 있을지도 고민이 되었다. 그림책의 글은 길지 않지만, 행간에 숨어있는 의미가 더해져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이럴 때는 반복이 답이다. 책을 읽고 또 읽었다. 혼자서 읽고, 여러 명이 함께 함께 둘러앉아 읽고, 다시 읽으며 인상적인 문구 써보는 방법을 택했다. 자신에게 와닿는 문구를 고르는 일도 아이들에겐 고민이었나 보다. 심각하고도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어떻게 하면 글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을까. 마음으로 새길 수 있을까. 마음에 남길 문장을 건져 올리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환경 관련 그림책이어서 제로웨이스트 키링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문구를 발췌한 후 미리캔버스 화면에 입력하여 출력했다. 그걸 안 쓰는 플라스틱 카드에 붙이면 끝. 어렵지 않은 과정이지만, 책에서 인상적인 구절 뽑으랴, 문장을 바라보며 어울리는 그림 생각하랴, 고민의 시간은 절대 짧지 않았다.   

  

다음은 강연회 하는 장소인 학교 도서관은 어떻게 꾸미면 좋을지 고민했다. 도서관 앞, 강연자가 앉을 책상, 학생이 경청하게 될 공간을 머리로 그려보면서 무엇이 필요할까 메모했다. 일단 도서관 입구, 학교로 들어오는 통로와 유리문에 붙일 커다란 포스터 3장을 만들며, 혹시 겉치장에만 자꾸 신경을 쓰고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정성을 들이면 어디선가 티가 나게 되어 있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빛이 나는 법이니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행사가 시작되었다. 앞에 앉기를 쑥스러워하며 삐죽삐죽 뒷자리를 선호하는 나와는 달리 아이들이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앉는다. 오호, 감이 괜찮은데. ‘작가와의 만남’은 처음이라 참여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다며, “선생님이 가보라고 하니 참여할게요. 그림책을 쓰고 그린 작가님을 진짜 만날 수 있는 거 맞아요?”라고 묻던 특수학급 학생들도 다른 친구들 사이사이에 착석했다. 작가님의 어린 시절, 반려묘를 만났던 이야기, 동물권에 관한 그림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를 듣는 아이들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고 입꼬리는 예쁘게 올라가 있었다. 핸드폰만 보며 세상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앉아있을까 봐 걱정했던 건 기우였다. 특수학급의 학생들도 작가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기꺼이 줄을 섰다. 이런 반응이라면 성공이다.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다. 앞으로 살날이 많은 아이에게도 언젠가는 외롭고 힘든 시련의 시간이 닥칠 것이다. 옆에 있는 어른이 혹시 진짜 어른이 아닐 때, 도움을 청할 친구가 남아 있지 않을 때 책에서 위로와 응원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심심할 때 할머니를 졸라서 듣는 옛이야기처럼 문득문득 떠오르는 아련한 달콤함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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