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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뭇잎 Aug 05. 2023

미지의 그곳, 인도 ‘레(Leh)’

대학교 4학년 2학기만 남겨 둔 여름이었다. 이대로 졸업하기엔 너무 아쉬웠다. 사회에 나가는 게 무섭기도 했다. 임용고사 준비를 하지 않아 붙을 자신도 없었다. 행운의 여신이 공부하지 않은 나를 불쌍히 여겨 합격의 운을 선물해 직장인이 되어 버리는 일이 나는 더 두려웠다. ‘이럴 수 없어! 대학교를 졸업하고 백수가 되는 것보단 휴학생의 신분이 낫겠어!’ 백수도 직장인도 싫은 나는 일단, 비행기 표부터 샀다. 목적지는 인도였다. 날짜에 맞춰 휴학계를 내고 집에는 일방 통보해버렸다. 올해 임용고사는 보지 않고, 서울에서 1년만 더 지내겠다고. (인도에 가겠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MBTI 중 극강의 무계획 INFP답게 여행 계획은 치밀하지 못했다. 발길따라 가는 것이 여행이고 머물고 싶은 곳에서 더 지내다가 떠나고 싶을 때 훌쩍 출발하는 게 자유라 믿었다. 비행기에서 만난 터번을 두른 중년의 인도인이 “인디아 이즈 베리 베리 홋(India is very very hot)!”이라며 H.O.T(홋)을 강조 또 강조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배낭만으로 출발한 나를 위해 여름에도 비교적 시원한 높은 지대의 도시 몇 군데를 추천해주었다.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인도의 수도, 델리의 더위는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시장 거리 몇 걸음만 걸어도 뜨거운 열기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중부지역의 숨 막히는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북쪽 지역으로 여행경로를 변경하기로 했다.      


비행기에서 만난 아저씨가 알려준 도시 목록에 ‘스리나가르(Srinagar)’와 ‘레(Leh)’가 있었다. 나는 ‘스리나가르(Srinagar)’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접점 지역으로 분쟁이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걸 증명하듯이 무작정 떠나 도착해보니 ‘스리나가르(Srinagar)’에는 군인이 어찌나 많은지. 그때야 여기가 분쟁지역이구나 싶었다. 시내에서 떨어져 거대한 연꽃으로 그득한 ‘달 호수(Dal Lake)’ 수상가옥 숙소에 있으니 분쟁지역이라는 게 많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건 내가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이후로 파키스탄과 인도의 분쟁 뉴스를 접할 때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무리 멋진 곳이라도 위험한 곳은 가지 말아야지.


<‘스리나가르(Srinagar)’ 사진  출처: UnsplashDivya Agrawal>


‘고갯길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Ladakh 라다크 지역. 인도 Ladakh 지역의 ‘레(Leh)’로 들어가기 위해 ‘스리나가르(Srinagar)’에서 육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중간 지점에서 밤에 잘 숙소를 잡고 잠깐 눈 붙이는 시간까지 포함하여 30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하는 곳이었다. 기상에 따라 육로가 닫히기도 해서 들어가기도 힘들고 나가기도 어려운 곳.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티베트 옛 라다크 왕국의 수도,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의 종착지인 ‘레(Leh)’를 포기할 수 없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앗! 이 버스로 정말?!’ 이 세상에서 나보다 세월을 더 많이 보낸 듯한 버스에 짐도 싣고, 정해진 인원보다 많은 사람도 타고, 간혹 닭장 속의 닭도 같이 탔다. ‘오, 마이 갓! 이렇게 많은 것들을 ‘꾸역꾸역’ 싣고 출발한단 말이지?’ 해발 1,590m 스리나가르(Srinagar)에서 출발하여 해발 3,495m 레(Leh)로 가는 길은 푸른 숲이 있는 초원에서 바위, 돌, 모래 가득한 사막으로 가는 여정이었다. 초록색 물감으로 그린 그림에 황토색 물감을 엎어버린 듯, 순식간에 눈앞의 풍경이 달라졌다. 마치 다른 행성으로 가는 길처럼 보였다. 더 압권은 버스에서 보는 꼬불꼬불한 길이었다. 한 발자국만 잘못 디디면 바로 떨어질 것 같은 낭떠러지 길이 계속되었다. 아찔했다. 이미 탄 버스에서 내릴 수 없다면 잠자는 것을 선택하는 수밖에. ‘안 봐야지, 안 봐야지. 못 보겠다.’  

   

나에게 남은 것은 싸이월드에 기록한 ‘레(Leh)’의 어느 티베트 사원 앞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일 뿐이다.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먹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도, 20년도 더 된 인도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레(Leh)’를 선택할 수 있다. 쉽게 갈 수 없는 곳을 주저 없이 선택한 20대의 나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사진 밖으로 뚫고 나올 듯한 강렬한 햇볕 아래 펼쳐진 땅을 느릿느릿 다니던 나. 다행히 고산병에는 걸리지 않았지만, 숨이 가빠 최대한 천천히 도시의 기운을 음미하며 걸었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유달리 하늘은 파랬다. 힘든 기억은 남지 않고 좋은 추억만 남아 미화되었는지 ‘레(Leh)’는 잊을 수 없는 풍경이 되어 내 맘에 남았다. 힘든 여정 뒤에 오는 대자연이 보여주는 광활한 풍경은 감격이라는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니! 풍부하지 않은 내 어휘가 참 아쉽게 느껴졌다.    


<‘레(Leh)’ 사진 출처: UnsplashPrabhav Kashyap Godavarthy>


뜨거운 여름날, 멀리 보이는 히말라야의 설산들과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그곳의 황량함이 각각 다른 공간에서 저 멀리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던 ‘레(Leh)’. 내가 여기 있는 곳이 과연 세상에 존재하는 장소인지 믿을 수가 없던 ‘레(Leh)’. 미지의 그곳, 동경의 장소에서 맞았던 여름은 살면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다시 가고 싶어 비행기 표만 수십 번 검색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용기도 같이 사라져버렸나. 떠나려니 망설여진다. 20년 전 여름 한복판에서 혼자서도 씩씩하게 배낭을 메고 다니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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