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아빠의 두 번째 기일이었다. 전국적으로 돌풍과 강우가 예상된다는 뉴스에 어린이날 광화문에서 탈 2층 서울시티버스 탑승권을 취소했다.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오전 아이들과 외출 후, 오후에 전 부치려면 시간이 빠듯했을 텐데.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재촉하여 들어오기 위한 잔소리 발사는 모두 내 몫. 어린이날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모든 법적 서류에 적혀있는 아빠의 사망일은 5월 7일. 하지만, 아빠의 일기장은 5월 4일에서 멈췄다. 아빠의 일기가 5월 4일에 멈췄다는 것은 5월 5일에 아빠가 우리가 사는 세상과 이별했다는 뜻이다. 해서, 아빠의 기일은 5월 5일이 되었다. 경찰은 절대 알 수 없는 아빠의 습관인 매일 일기장에 기록하기와 수첩에 메모하기. 김수환 추기경 선종한 2009년 2월 17일부터 노무현 대통령 서거일, 엔니오 모리코네의 사망 소식까지 기록되어 있는 아빠의 일기장엔 정작 당신이 떠난 날의 기록은 없다.
아빠가 하루에 있었던 일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면서 생각을 짧게 덧붙이는 일기를 썼다면 엄마는 책을 보고 베껴 쓰는 일을 했다. 책은 주로 성경책이었다. 가끔 나태주 시집도 필사했다. A4 크기 속지를 구멍에 맞게 고급스러운 붉은색 바인더에 끼우면 두께와 무게가 상당해졌다. 성경 필사 바인더가 책상 아래 발밑 공간을 한가득 채웠다. 내가 어릴 적, 네 식구 장판 위에서 둘러앉아 먹던 밥상이 엄마가 24시간 펼쳐놓는 책상이 되었다. 밥상 아니, 엄마의 책상은 크지 않아서 진한 남색 바탕에 금장 글씨가 박혀 있는 성경책과 쓰기 성경 스프링 노트, 그리고 펜으로 꽉 찬다. 그래서, 얼마 전엔 출판사에서 성경 필사를 위해 제작한 은총 성경 쓰기 잠언과 요한복음 편을 샀다. 홍보 문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필사’. 이렇게 간편하게 나온 것도 있냐며 엄마는 좋아했다. 엄마에게 필사는 투병 기간을 견디게 하는 힘, 아빠가 떠난 집에서 혼자라는 외로움을 잊게 하는 도구였다. 어쩌면 엄마 당신도 금방 떠날 수 있다는 두려움까지 안으며 스스로 토닥이는 시간과 힘을 얻었을지 모르겠다. 엄마의 필사는 신앙이자 취미였다.
시작은 글을 쓰기 위해 자리를 잡았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아 멍하니 소파에 앉아서 흰 바탕에 몇 줄 적힌 컴퓨터 화면을 보는 일. 운전하여 출근하면 50분, 대중교통으로는 1시간 30분으로 시간이 늘어난다. 그래도 지하철에서 책을 읽겠다고 다짐하며 아침에 30분 일찍 서두르는 일. ‘내가 엄마, 아빠의 딸이 맞긴 하네.’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빠처럼 수십 년 동안 매일 쓸 자신도 없고, 엄마처럼 기울어짐 없이 반듯반듯한 글씨로 필사할 능력도 안 되지만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내 습관도 아빠와 엄마로부터 물려받았음이 분명하다. 그동안 참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예전에 아빠가 사용하는 초록색 네모 칸이 그려진 600자, 1,000자 원고지를 촌스럽고 구닥다리 유물처럼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나는 내 돈 주고는 절대 사지 않을, 하지만 아빠에겐 있으면 좋겠다 싶어 ‘몽블랑 만년필’을 백화점 1층 부내 나는 매장에서 첫 월급으로 사서 선물했었다. 금테 돋보기 쓰고 안경 너머로 글을 뚫어지게 보면서 신중하게 고쳐 쓰던 아빠. 성당 미사 직후 신부님께 필사 노트를 어떻게 처리하냐 물으며 당신 사후에 동생과 내가 아무렇게나 버릴까 봐 걱정인 엄마. 엄마, 아빠의 유전자가 나에겐 반의 반도 오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아이들에게 줄 수 있을는지. 이렇게 멋지고 따뜻한 유산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