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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뭇잎 Jul 05. 2024

죽음을 배우는 시간

“선생님, 이번 명절에 찾아뵐게요.”

“자네, 멀리까지 무엇 하러 오는가? 늙으니 나도 많이 변했네.”

대구에서 인천까지 올라오겠다는 제자와 한사코 말리는 스승과의 통화를 아빠 살아생전 자주 들었다. 아빠의 낡고 헤진 수첩에서 오랜 인연들을 찾아 한 명씩 전화했다. 긴 시간 알고 지낸 지인을 찾는 기준은 핸드폰 번호였다. 016, 011로 시작하는 번호를 지운 후 010으로 바뀐 흔적을 따라갔다. 

“안녕하세요, 제가 최정웅 씨 딸인데요. 경황이 없어서 전화를 못 드렸어요. 장례식 치르고 이제야 연락드려요. 죄송합니다.”

“흑흑, 아이고 선생님. 아이고 어쩌나. 내가 그렇게 간다고 해도 늙은 모습 보여주기 싫다고 하셔서 미뤘더니. 진즉에 갈 걸 그랬어요.”

돌아가신 아빠 옆에서 받는 사람 없이 계속 울리던 핸드폰에는 연락할만한 번호가 몇 개 없었다. 피붙이의 연락처만 저장되어 있었다. 그나마, 남동생이 아빠 전화기를 가져다가 입력해준 게 다였다. 기계와 먼 사람이었다. 아빠는 친구, 지인의 번호는 무늬 없는 검정 표지 수첩에 만년필로 메모했다. 수첩이 떠오른 것도 삼우제를 치른 후였다. 



혼란까지도 그 사람답다혼란의 한복판에 있는 당사자는 그것이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생각하기도 싫을 것이다하지만 타인에게는 혼란의 한복판에 있어도 그 사람다움이 보인다.

 - 돌봄동기화자유』 P. 148 -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눈이 펑펑 오는 겨울, 병원 예약일과 시간에 맞춰 자식들이 아침에 데리러 올까 봐 새벽부터 집을 나서는 사람. 고령 운전자 면허 자진 반납 후에는 약속 시간 2시간 전부터 길을 나서는 사람. 자식의 도움을 한사코 거절하다 못해 화를 내며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그리고 자주 길을 헤매다 지쳐서 힘들어하는 사람. 문제해결력이 떨어짐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사람. 초등학교 시절, 나는 친구의 아빠보다 유독 흰 머리가 많고 말이 없던 아빠가 부끄러웠다. 아빠 나이를 감추고 싶어 했다. 내가 그때의 아빠만큼 나이를 먹으니 아빠가 자신의 나이 듦을 보여주기 싫어했다. 


엄마가 입원하여 친정에 드나들 때였다. 뭐 대단한 반찬도 아닌 몇 가지를 통에 담아서 아빠에게 가져갔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어 반찬만 두고 후딱 집으로 갈 작정이었다. 아빠가 지하 주차장까지 배웅하겠다고 했다.

“아빠, 들어가세요. 엄마 없다고 밥 거르지 마시고.”

한 손으로 시동을 걸고, 다른 한 손으로는 운전대를 잡으며 유리창 너머의 아빠를 봤다. 엄마 없으면 밥은 잘 먹을 수 있을지 걱정되는 노인이 서 있었다. 뼈와 가죽만 힘없이 남은 자. 백미러를 통해서 다시 아빠를 보았다. 딸이 운전하는 차가 떠나는 모습을 꼼작 않고 지그시 바라보는 이. 어쩌면 아빠가 나를 배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날이 많이 없겠구나 싶었다. 그 장면이 아빠와 내가 현세에서 마지막으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날인지 그때는 몰랐다. 아빠 나이 82세, 언제 다른 세상으로 떠나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숫자였다. 가족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상주가 될지는 몰랐다. 현실감 없이 그냥 막연하게 죽음을 드라마 속의 한 장면처럼 그리고 있었나 보다.      


아빠와의 이별은 ‘사랑하는 이를 갑자기 잃은 상실감’이란 면에서 버티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설거지하다가 자주 바닥에 주저앉아서 울었다. 더 힘든 것은 이별을 계속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일이었다. 태어나는 일에는 순서가 있어도 가는 일에는 차례를 알 수 없다. 그냥 온 순리대로 가려니 쉽게 생각해본다면 적어도 3번의 상주 역할이 남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대충의 계산법이니, 살면서 몇 번의 이별을 더 겪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내 삶을 바꿔 놓았다.


계절에 맞춰 옷 정리를 할 때면꼭 아이들을 불러서 여름옷은 여기에 있고 긴 팔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

세 남매만 두고 되도록 남편과 같은 차를 타지 않는 일.

(이건 긍정적인 변화일지도 모르지만남편이 시부모님을 만나러 목포에 자주 간다고 해도 전혀 서운하지 않게 된 일. (나중에 후회를 불러오는 일은 하지 않아야지.)

최선을 다한 후어긋나는 인연에는 미련을 갖지 않도록 마음 무장을 하는 일

밤에 외출할 때 어두운 색깔의 옷은 입지 않는 일

검정 패딩을 입고 간다면 꼭 안에 입는 티셔츠라도 밝은색을 택해야 한다며 잔소리하는 일.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나와 타인의 죽음에 나름의 준비를 하며 살게 되었다. 물론, 삶에서 죽음을 늘 생각하며 산다고 해도 ‘철저한 대비’란 존재하지 않겠지만. 아빠는 평소에 ‘죽음의 골든타임’에 대해 종종 말했다. 빠른 대처를 하면 구할 수 있는 목숨을 판단이 늦어 살리지 못하는 때에 대한 걱정이었다. 노인이 되면 가족이 부모가 아프거나 다쳤을 때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는 이야기도 여러 번 했다. 집 비밀번호를 우리는 당연히 외우지 못할 외국 교육학자의 생일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동생 생일로 바꿨지만, 소용없었다. 성패를 결정지을 수 있는 시간은 인간이 정하는 게 아니었다. 하늘에 따르는 것. 세상 떠난 아빠의 낯선 몸을 욕실에서 뒤늦게 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죽음은 슬프고, 아프고, 힘든 것의 총합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죽음에 대한 준비 방식 역시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두려움이 축복으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자유라는 프레임으로 ‘늙음’을 보는 다소 신선한 문장을 『돌봄, 동기화, 자유』 책에서 읽은 후부터이다. 노화로 인해 자유롭지 않게 된 몸도 자유로울 수 있다니. 


자유롭지 않게 된 몸은 나에게 새로운 자유를 가져다준다. 시간을 가늠할 수 없게 됨으로써 나는 시간에서 자유로워진다. 내가 있는 공간이 어딘지 모르면 상황에 맞춰 언행을 주의해야 한다는 규율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 『돌봄, 동기화, 자유』 P. 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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