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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ug 21. 2017

쓰여지지 않은 삶

동주, 2015


 친구와 서로의 성격을 묘사하던 중 "문학적 감수성은 없는데 성격은 또 지나치게 감정적이다"라며 자조적으로 이야기한 기억이 난다. 농담처럼 말하긴 했지만 사실 나의 어릴 적 꿈은 시인이다. 김용택 시인처럼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쓰고 싶었다. 그로부터 20년을 더 사는 동안 시적 감수성은 메말라 갔고, 내가 아이일 땐 아이들과 함께하는 게 마냥 즐거울 줄 알았는데 그 또한 소질도 흥미도 없음을 깨달아 가긴 했지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일 저녁에 보고 자기 좋은 잔잔하고 별 감흥없는 영화(?)를 찾다가 우연히 '동주'를 보게 되었다. 윤동주의 삶을 다룬 영화라는 걸 알면서도 감흥이 없을 거라고 예견하는 것만 봐도 내가 얼마나 '시'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잔잔하지만 여운이 너무 오래 남아 다음 날까지도 슬픈 기분이 채 가시지 않았던 영화였다. 영화는 사실 지극히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윤동주의 삶과 시를 이야기한다. 윤동주와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다른 한 축은 '송몽규'라는 인물인데, 그는 시대를 바꾸기 위해서는 시 안에 숨어서는 안된다고 행동과 참여를 강조하는 인물로 윤동주와 대립하는가 하면, '어디든 함께가자'고 약속하는 둘도 없는 친구이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하지만 같은 절망감으로 시대에 유감을 표한다.

 우리말이어도 70년동안 참 많이도 바뀌었을 텐데, 영화 내내 이어지는 윤동주의 시 나레이션은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의 시에 대해 아름답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내 표현력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의 시는 후대에도 계속해서 사랑받았으며, '동주' 영화 개봉에 이어 초판본 디자인을 그대로 살린 그의 시집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인기는 이어졌다. 당대보다 세월이 지나 더 사랑받는 수많은 작가, 시인, 예술가들을 보면 마음이 이상해진다. 홀로 글을 쓰는 수많은 밤 참 외로웠을 텐데, 나중에나마 이만큼 사랑받게 된다는 걸 알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을 텐데.




 송몽규 역을 맡았던 배우 박정민은 그의 에세이에서 (그렇다, 이 영화로 입덕 부정기는 끝났고 산문집까지 단숨에 구매해 읽어버리게 되었다) 윤동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남기지 않아 잊혀진 인물을 다시금 주목받게 하기 위해 노력하였다는 언급을 한다. 독립을 6개월 앞두고 숨을 거둔 윤동주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그의 시들이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싯구를 썼기에 더 큰게 아닐까?


우리들 중 상당수는 후대가 길이 사랑할 예술 작품이나 존경받을 만한 역사적 행보를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해 주었으면, 흔적을 남겼으면 해서 자식을 낳는다는 사람들도 종종 보게 된다. 나처럼 자녀계획 조차 별로 없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나야 뭐 아직 내 삶의 가치를 평가받기엔 너무 어리지만, 잊혀지기엔 너무나 아까운 삶을 살다간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동주'는 오늘과 기껏해야 내일 정도에 급급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희미해진 어제의 가치를 조용히 일깨워준다. 최근 개봉한 '박열' 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준익 감독의 잊혀질 뻔한 생애들을 재조명하는 작품들이 참 좋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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