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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ug 10. 2017

단 한 번 제대로 만나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

어바웃 타임(2015)


 오늘도 전화가 끝난 뒤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후회를 했다. 이 말도 했어야 되는데. 언제나 가장 적절한 시나리오는 순간이 지나가 버린 뒤에야 떠오른다.


 시간을 붙잡거나 혹은 빨리 지나쳐 버리고 싶더라도 우린 언제나 뚜벅뚜벅 앞으로만 나아가는 시간 속을 살아간다. 그때로 돌아가 너를 다시 만난다면, 이렇게가 아닌 달리 되었더라면. 누구나 이런 가능성을 한 번쯤 꿈꾸는 모양인 지 시간여행을 소재로 하는 픽션들은 유난히 인기가 많다.


 영화나 책 속의 시간여행자들 중에도 워킹타이틀의 2015년 야심작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 팀은 유난히도 실수 투성이어서, 저 사람이 시간 여행까지 할 줄 몰랐다가는 인생이 어떻게 됐으려나 싶을 정도다. 영화는 서툰 주인공이 소중한 사람을 처음 만나는 기회를 다시 갖기 위해 몇 번이고 시간여행을 감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 만난 날은 너무도 완벽했는데, 어쩌다 연락처도 사라지고 만난 적도 없는 사이가 돼 버린 그녀. 팀이 그녀를 다시 처음 만나기 위해 온갖 짓을 다해도 인연은 좀처럼 닿지 않는다. 여러 번의 시간 여행 끝에 세 번째 그녀를 처음 만나는 순간, 팀은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을 한다. '눈이 참 예뻐요. 얼굴의 나머지 부분도 다 예쁘지만요.'



 

 영화 속에서 팀이 시간을 돌리는 이유는 대부분 누군가를 제대로 만나서, 제대로 관계를 시작하기 위해서이다. 팀은 망친 시험 문제를 다시 풀려고, 또는 직장에서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사람과의 관계에 전전긍긍한다.


 잘못 쓴 글은 고쳐 쓸 수 있고, 이번에 실패한 일은 다음에 잘 하면 된다. 그렇지만 이번에 만난 사람과 틀어진 관계를 다음 사람과 바꿀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다음에 또 볼 사람인데, 오늘 한 번만 날이 아닌데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수많은 기회를 흘려보내왔다.



  우리는 아직은 시간 여행을 해 볼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함께하는 매 시간을 여행으로 만들어 나가는 능력이 있다. 가장 적절한 시나리오는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인 오늘을 함께 살아낼 때 함께한 시간은 우리만의 여행이 된다. 인생은 나에게 언제나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보다 '누구와'의 기억이 되기를 바라며.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
사실 남자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시공간 연속체 속에서 그 모든 일을 몇 번이고 다시 겪고 있는 중이었다

- 장강명 '그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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