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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Sep 03. 2017

떠난다는 선택지가 없는 사랑에 대하여

내사랑 , 2017

 어떤 순간은 우리의 인생을 영원히 바꾼다. 모드가 식료품점에서 소심한 몸짓으로 에버렛이 붙인 <가정부 구함> 전단을 떼어낸 뒤 경쟁률 '1:1'의 면접을 보러 에버렛의 집에 찾아간 순간이 그랬을 것이다. 또 지나가버린 순간들은 아무리 바꾸고 싶어도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에버렛이 모드의 뺨을 때린 순간, 모드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자신의 신세한탄만 늘어놓던 순간처럼 말이다. 이 이야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순간들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고, 큰 방향을 바꾸는 지를 두 사람의 천천히 흘러가는 삶을 통해 보여 준다.


 작은 시골 마을의 이모 집에 얹혀사는 모드는 관절염으로 인해 잘 걷지 못하고, 그림 그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이모와도 사이가 좋지 않고, 삶의 의욕도 없던 어느날 모드는 어떤 충동에 이끌려 가정부를 구한다는 마흔 살 남자 에버렛의 집 문을 두드린다. 에버렛은(이 집 서열은 나-개-닭-그다음이 너다! 라는 심한 소리까지 해가며)  몇 번이고 모드를 내쫓지만 그녀는 끈질기게 그의 곁에서 집을 가꾸고, 매일 저녁 따뜻한 밥을 차린다. 그러나 작은 집일 지언정 누구와도 나눌 줄 모르는 에버렛은 모드에게 매정하고, 폭력적인 고용주의 역할을 지킨다. 모드 또한 쉽게 납득이 안될만한 고집으로 에버렛의 곁을 지킨다.  


"사람들은 당신을 싫어해요. 나는 당신을 좋아해요. 당신은 내가 필요해요."


 칙칙한 먼지구덩이 같던 에버렛의 집은 모드의 조심스러운 붓질로 꽃과, 새와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차 간다. 붓 하나만 있으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고 말하는 모드는 집에 굴러다니는 나무 판자에, 벽면에, 계단에 자신만의 색채 가득한 그림을 끝없이 그린다. 그동안 에버렛은 장작을 패고, 생선을 판다. 그녀의 그림이 조금씩 유명해지면서 에버렛과 모드는 동업자 겸 부부로 두 사람의 세계를 서툴게, 천천히 세워 나간다.


 아직도 사랑하는 법을 잘 알지 못하고 또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의 세계에는 충돌하고, 상처주지만 결국 서로 밖에는 의지할 데 없는 시간들이 이어진다. 건장한 신체에 늘 씩씩해 보이지만 약간 어둡고 감수성이 부족한 에버렛과, 붓만 잡으면 동화같은 색채의 그림들을 완성해 내지만 몸이 약한 모드는 함께 삶을 그리기엔 너무 달랐던 건 아닐까? 자신과 조금만 더 닮은 이를 만나 사랑했더라면, 둘 다 조금은 편안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들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좁힐 수 없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느릿느릿 서로를 보듬고 잘못을 뉘우치며 함께 살아간다. 왜 당신이 아니면 안되는지에 대한 아무런 계산이나 이유나, 그 흔한 영화적 개연성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연애 코칭으로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한 인스타그래머가 '마음에 안들면 쿨하게 버려라. 계속 버리면 점점 더 좋은 사람을 만난다'라고 조언하는 글을 본 기억이 난다. 그가 모드 혹은 에버렛의 친구였다면 '이런 인간을 뭐하러 만나? 차버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상상된다. 모드는 뭐하러 그런 인간의 집을 청소하겠다고 구인 공고를 훔쳐가면서까지 제 발로 걸어 들어갔을까. 뚝심있게 일할 가정부를 구한대놓고 에버렛은 뭐하러 몸도 아픈 모드에게 '여편네야!'라고 욕설을 퍼부어가면서 굳이 또 같이 살았을까. 우리의 인생을 영원히 바꿔 버릴 중요한 선택들에 왜 그리도 이유가 없는 걸까. 어쩌면 어떤 사랑은 '버린다(조금 순화해서 떠난다)'라는 선택지 자체가 아예 없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더 나은 삶보다도 그냥 너와 함께 하고 싶기 때문에. 네가 바뀔 수 없고, 나도 바뀔 수 없다면 그냥 이대로라도 같이 살아야 하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에 평생 몸이 약했던 모드는 에버렛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모드의 그림으로 가득찬 집에서 에버렛은 불을 끄고, 문을 닫아 어둠에 스스로를 가둔다. 서로의 차이를 좁히려고 치열하게 싸우는 순간도, 평화롭고 행복한 짧은 순간도 언젠가는 모두 끝난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들은 모여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삶의 방향과 큰 모양을 만든다. 다음에 잘 하면 된다고, 이번만 내 맘대로 하겠다고 생각하며 무심코 넘겨버리는 순간들이 많아질 수록, 우리는 어두운 집에 홀로 갇힌 에버렛의 마지막 모습에 조금 더 가까워 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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