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km, 6시간 30분 걷기
비적응 사이, 어느 경계
적응과 비적응 사이, 어느 경계
분명 몸은 너무 피곤한데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 원래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못 자긴 하는데 어제는 분명 코 고는 사람도 없고 조용했는데도 불구하고 새벽에 여러 번 깼다. 몇 일째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어서 내 몸 상태가 걱정되었지만 오늘도 걷기 위해 6시쯤 일어나서 준비했는데 내가 늦게 준비한 탓인지 동행들이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여서 먼저 보내고 나는 뒤늦게 출발했다.
사실 어제 도착하기 20~30분 전부터 왼쪽 발목과 아킬레스건이 좀 아팠었는데 도착하고 나서부터는 아프지 않아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은 걷기 시작하자마자 아프기 시작해서 너무 불안했다. 물집은 아닌 거 같은데 무언가 걸리적거리고 신발에 닿는 느낌이 들어서 밴드를 붙이고 걸었는데 걷다 보니 다행히 괜찮아졌다.
오늘은 가는 길에 무료로 와인을 마실 수 있다는 곳이 있다고 들어서 기대했다. 8시부터 마실 수 있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생각해 보니 오늘은 공휴일이었고 그래서 운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쉬웠지만 사진만 찍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는데 여기서 먼저 갔던 동행들을 만났고 이후에는 같이 걷게 되었다.
걷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는데 왼쪽길은 1km 더 짧지만 가파른 길, 오른쪽 길은 1km 더 가야 되지만 평탄한 길이었는데 어느 쪽으로 갈지 고민하다가 동행들끼리 나눠서 걷기로 했고 어쩌다 보니 나는 왼쪽 길로 가게 되었다. 다행히 생각보다는 가파르지 않았고 동행들과 얘기하며 걷다 보니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숲 속 길을 걷다가 어느 순간,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을 걸어야 했는데 여기서부터 힘들어졌다.
앞서 걸어오던 길이 많이 힘들지 않아서 이제 이 길에 적응된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 구간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햇빛이 너무 강해서 지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푸드트럭이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푸드트럭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너무 반가웠고 아까 갈림길에서 헤어졌던 다른 동행들이 기다리고 있는 걸 보니 더 반가웠다.
너무 목이 마르고 힘들었는데 메뉴에 아이스크림이 있길래 1초의 고민도 없이 주문했지만 초콜릿 아이스크림 밖에 없었다. 그래도 너무 맛있게 먹었다. 원래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만 지금은 너무 목이 말라서 갈증을 해소시켜 줄 만한 맛의 아이스크림이 필요했는데 그래도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잠시 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달콤한 휴식도 잠시, 계속해서 그늘 하나 없는 땡볕을 걸어가야 했다. 너무 덥고 힘들어서 어떻게 걸었는지도 모르게 걷다 보니 도착지까지 3km 남았다고 했고 힘내서 걸으려 했는데 오늘 걸은 것 중 이 마지막 3km가 가장 힘들었다.
다 온 거 같은데 아직도 남았고 숙소도 보이지 않고 오늘도 여전히 힘들어하며 걷다 보니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얼른 씻고 빨래하고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이 마을이 큰 마을도 아니었고 오늘은 공휴일이라 슈퍼나 식당이 거의 문을 열지 않아서 가지고 있던 라면을 먹기로 하고 맥주도 같이 마시기로 했다. 여기 숙소에는 맥주 자판기가 있었는데 너무 신기해서 마셔 보고 싶었다.
걸을 때만 해도 싫었던 햇빛이 지금은 따뜻하게 느껴졌고 야외에서 맥주와 함께 라면을 먹는데 맥주도, 라면도 너무 맛있어서 오늘 힘들었던 걸 다 보상받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다 먹고 나서 동네 구경을 하러 나가려 했는데 햇빛이 너무 뜨거워 도저히 엄두가 안 났고 마침 슈퍼도 5시 이후에 문을 연다고 해서 그때쯤 나가기로 하고 그동안 잠시 쉬었다. 잠은 오는데 지금 자면 밤에 못 잘 것 같아서 눕지도 못하고 의자에 앉아서 겨우겨우 버텼고 5시쯤 슈퍼에 가려고 나왔는데 여전히 햇빛은 쨍쨍했고 갈 데가 없어서 몇몇 동행들이 쉬고 있는 가게로 가서 같이 쉬다가 거기서 저녁으로 피자 먹고 숙소로 들어왔다.
오늘, 그늘 하나 없는 땡볕을 걷다 보니 힘들었는지 다들 지쳐했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 적응을 한 건지 가방의 무게 때문에 어깨가 아픈 생각은 거의 들지 않았지만 출발할 때부터 발목과 아킬레스건 통증으로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통증은 심해지지 않았다.
이 길에 적응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적응하지 못해서 생각하지 못한 곳에 통증이 생긴 건지 모르겠지만 걷는 건 여전히 힘들게 느껴진다. 하루빨리 이 힘듦을 받아들이고 적응되길 바라며 내일은 또 어떨지, 동행들과 사이좋게, 아프지 않고 무사히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