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km, 5시간 30분 걷기
오늘도 동행들과 같이 출발했지만 어느 순간 혼자 걷기도 하고 같이 걷기를 반복하다가 도착할 때쯤 내리막길에서는 무릎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천천히, 혼자 걸었다.
혼자 걸으려고, 생각을 정리하려고 떠나온 순례길인데 막상 이 길 위에 혼자 있게 되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외롭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게 인생인 건가 싶기도 하고, 계속 함께 하는 거에 익숙해졌는데 혼자가 돼서 그런 건지, 나는 원래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덕분에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이 생겼다.
오늘은 혼자 걸을 때, 내가 여기에 온 이유에 대한 생각보다는, 그냥 갑자기 나 자신에 대해, 나는 어떤 사람인지 등 이런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 결론은 여전히 나 자신을 잘 모르겠고 나는 왜 이런 성격인가 회피하고 체념하면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적인 생각만 잔뜩 했다.
동행들과 같이 걷다가 작은 성당을 발견했는데 신기해서 들어가 봤다.
수녀님이 한분 계셨는데 작은 목걸이를 목에 걸어주시면서 이 길을 무사히 잘 걸을 수 있도록, 따뜻한 말을 건네주시고 기도해 주셨는데 스페인어로 말하셔서 정확하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마음만큼은 너무 잘 전해졌다. 낯선 이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고 감동이었다. 목걸이를 받고 나오는데 마음이 몽글해지면서 기분이 너무 좋았고 기도에 힘을 얻어 덕분에 힘내서 씩씩하게 걸을 수 있었다.
오늘의 도착 마을은 규모가 커 보였는데 문 연 식당이 없어 보일 정도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삭막한 느낌까지 들었다.
일단 숙소에 도착해 먼저 씻은 후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일요일이 아니었는데도, 마을이 작은 거 같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문 연 식당이 1곳 밖에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메뉴도 2개밖에 없어서 둘 중에서 먹고 싶은 걸로 시켰는데 맛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맛을 평가하기보다는, 한 군데라도 열려 있는 식당이 있어서, 뭐라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 했다.
비는 안 왔지만 동네 구경을 하러 나가기엔 너무 추웠고 삭막해 보여서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점심 먹고 바로 숙소로 가서 일기 쓰고 쉬면서 시간을 보냈다.
저녁은 알베르게에서 신청해서 먹었다. 샐러드, 빵, 따뜻한 감자수프 같은 걸 주셨는데 따뜻한 걸 먹어서 몸은 따뜻해졌지만 맛있게 느껴지지는 않아서 아쉬웠다. 그러나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밥을 먹는, 그 분위기는 참 좋았다.
오늘은 걷는 동안 비는 오지 않았지만 걷는 내내 계속 바람이 불어서 너무 춥고 걷기 힘들었으며 무릎이 안 좋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또 도착은 했다.
오늘은 혼자 걸으면서 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는데 여전히 나는, 나를 잘 모르고 나 자신에 대해 온통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쯤 나를 제대로 알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내일은 제발 바람이 덜 불고 덜 추웠으면, 무릎도 덜 신경 쓰였으면, 하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