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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일 차 : 생각이 많았던 날

19.3km, 6시간 걷기

by 베라노드림


아침에 일어났는데 무릎이 안 좋은 느낌이 들어서 천천히 걷기로 생각하고 출발했다.

느낌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걷다 보니 걸을 때마다 왼쪽 무릎이 아팠고 무릎이 안 아프다 싶으면 발목이 아팠다.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혼자 뒤처져서 천천히 걷고 있는데 동행들이 한 명씩, 잠깐씩이지만 내 속도에 맞춰 같이 걸어줬다.

나를 위해 이렇게 해주는 게, 너무 미안하면서도 너무 고마웠다.


오늘은 햇빛이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했고 바람이 많이 불었으며 무릎도 안 좋아서 걷기 힘들었다.

가는 도중, 흐렸던 날씨가 조금씩 개면서 풍경은 좋았지만 내 컨디션은 좋지 않았고 '무릎도 안 좋은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건지, 앞으로 계속 걸을 수 있을까, 완주할 수 있을까' 등등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다.


오늘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머물면서 한식을 먹고 기운을 내기로 했다. 점심으로 라면이랑 김밥을 먹었는데 얼마 만에 먹어보는 김밥인지,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김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알베르게도 가격 대비 너무 깨끗하고 시설이 좋아서 만족스러웠다.


점심 먹고 빨래하고 각자 개인 시간을 보내다가 몇 명 동행과 마을 구경하러 나갔다.

마을은 커 보였는데 지나다니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아서 의아했지만 고즈넉하게 느껴지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좋았다. 마트 가는 길에는 평지로 걷다가 돌아올 때는 약간 언덕 너머로 올라갔는데 언덕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생각지도 못했는데 풍경이 너무 이뻤고 평화로워 보여서, 그런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았다.

저녁은 알베르게에서 신청한 비빔밥을 먹었다. 원래 비빔밥을 좋아하지 않는데 해외에서, 그리고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너무 맛있었다.


분명 걸을 때만 해도 컨디션이 좋은 상태가 아니었고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깨끗한 알베르게에 머무를 수 있게 됐고 그리웠던 한식을 먹고 이쁜 풍경을 보고 나니 이러한 소소한 것들이 나의 기분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줬는데 이런 게 바로 이 길의 묘미가 아닌가 싶었다.


오늘 걸으면서 우려했던 무릎통증이 시작된 거 같아서, 발목까지 아픈 상황에서 과연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지, 통증이 있는데도 이렇게 걷는 게 맞는 건지 신경 쓰이고 걱정돼서 내 몸 상태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걷기도 했었는데 동행 중 한 명이 갑자기, 평소에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며 걷는지 나에게 물었다. 그러나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걷고 있지?' 나에게 되묻게 되더라.

대부분은 걸으면서 걷는 그 순간, 집중해서 '어깨 아프다, 발바닥 아프다' 이런 생각을 생각하거나 아니면 '도착하면 뭘 할지, 맛있는 거 뭐 먹을지' 등 이런 것 위주로 생각하는 거 같은데 생각을 정리하고자 했던 문제들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깨달았고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갑자기 이게 맞는 건지, 내가 순례길을 걷는 의미가 있는 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오늘은, 동행들과 같이 걸을 때는 이야기하며 걷다 보니 괜찮은데 혼자 걷게 되면 한 없이 또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서, 계속 걱정하고 안 좋은 생각만 했다.

안 그래도 통증 때문에 여러 생각이 들었는데 동행의 질문에 생각이 더 많아진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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