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km, 5시간 30분 걷기
어제는 새벽 2시쯤 잠에서 깼고 그 이후로 자다 깨다 반복하다가 누군가의 알람소리에 나도 일어나서 준비하고 7시쯤 동행들과 함께 출발했다.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두 갈래 길이 나왔다.
무릎 상태가 걱정되어 처음에는 짧은 길로 가려고 했는데 반대쪽 길이 더 이쁠 것 같다는 얘길 듣고 고민하다가 좀 더 긴 거리를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오르막길도 없고 힘든 길도 아니어서 무릎에 큰 무리는 없었고 듣던 대로 가는 길도 이뻤다. 그렇게 1시간쯤 걷다 보니 갈림길에서 헤어졌던 동행들을 만났고 카페에서 잠시 쉬었다.
다 같이 쉬고 있는데 동행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일부터 몇 일간은 따로 걷겠다고, 혼자 걸어보고 싶다고 했다.
계속 혼자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는데 동행들과 친해지다 보니 같이 걷는 게 너무 재밌고 좋아서, 익숙해져서 혼자 걸을 엄두가 안 났는데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될 것 같다고, 단 며칠이라도 혼자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어차피 이 길은 혼자 걷고, 혼자 생각하려고 온 곳이니까 당연히 그게 맞는 건데도, 그래도 슬픈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은 수녀님들이 운영하시는 알베르게에 묵기로 했는데 깨끗하고 좋아 보였고 무엇보다 2층 침대가 없고 모두 1층이라 더 마음에 들었다.
침대를 배정받고 정리하고 있는데 동행 중 또 다른 한 명이, 다른 동행과 함께 내일 우리가 예정했던 것보다 더 많이 걸어가기로 했다며 그래서 내일부터 따로 걷게 될 것 같다고, 아마 2주 뒤쯤 산티아고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부터 대충 생각해 둔 일정이 있었고 혼자 걸었으면 충분히 가능했을 일정인데 동행들이 너무 좋아서 계속 같이 걷다 보니 이 상태로라면 계획했던 걸 이룰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에, 오전에 다른 동행이 며칠간 혼자 걷겠다는 말을 했고 그 말에 오는 내내 고민해 보다가 결정했다고 했다.
그 결정 또한 당연히 존중하긴 하지만 내일부터 동행 몇 명이 없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면서 너무 슬펐다. 벌써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슬프고 아쉬웠는데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진짜 헤어져야 할 때는 어떤 마음이 들지, 얼마나 슬플지 가늠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부터 대도시 도착까지 3일 앞둔 시점인데, 그 3일만이라도 다 따로 걷다가 대도시에서 만나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의견이 나왔다.
동행들도 순례길을 걷겠다고 결심했을 때, 혼자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자 했을 텐데 첫날부터 마음 맞는 동행들을 만나 계속 함께 하다 보니 너무 익숙해졌고 헤어지기 싫어서 오늘까지 이렇게 다 같이 걷게 된 게 아닌가 싶었다. 나 또한 계획했던걸 변경하면서 까지 계속 같이 걸었는데 혼자 걷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다 같이 의견이 모아졌고 그래서 내일부터 3일간은 따로 걷기로 했다.
2주 넘게 같이 걷고 있다가 내일부터 따로 걷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뒤숭숭하고 벌써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번은 겪어야 될 감정인 것 같았다.
원래는 점심 먹고 시간이 많이 남아서 마을 구경을 하려 했는데 도착 후 비가 계속 내리기도 했고 너무 추워서 도저히 마을 구경을 못 할 것 같아서 숙소에서 쉬다가 동행 몇 명과 함께 빨래하러 빨래 방으로 갔다.
빨래가 되는 동안 소소하게 얘기를 나눴는데 내일부터 혼자가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이 시간도 참 좋고 애틋했다.
저녁 시간까지 숙소에서 잠시 쉬다가 저녁 먹고 숙소로 돌아오던 길에, 첫날부터 며칠간 봤었지만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아 걱정됐던 외국인 순례자를 우연히 만났는데 너무 반가웠다. 한동안 보이지 않아 걱정 됐었는데 이렇게 만나서 너무 다행이었고 그동안 어떻게 걸어왔는지, 근황을 주고받으며 사진도 함께 찍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일기를 쓰는데 오늘은 마음이 참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오늘을 끝으로 산티아고 도착까지 약 2주간 못 보게 되는 동행들도 있고, 내일부터 며칠간 갑자기 혼자 걷게 됐고, 여러 모로 마음이 이상했다.
같이 걷다가 혼자 잘 걸을 수 있을지 걱정되기 시작했지만 혼자 있어봐야 동행들의 소중함도 더 알게 될 테고 또 원래 혼자 걸으려 왔으니 이 기회에 여기로 떠나온 이유에 대해,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부터 각자 걷게 될 텐데 동행들 모두 다치거나 아프지 말고 무사히 걷기를, 나도 씩씩하게 잘 걸을 수 있기를, 그리고 이 기회에 정리하고 싶었던 생각들이 정리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