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km, 9시간 걷기
아침에 일어나 준비하고 있는데 동행 중 한 명이 일찍 준비를 마친 후 토스트를 만들고 있었다.
더 잘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동행들을 위해 아침을 만들어준 건데 그 따뜻한 마음에 감동을 받았고 토스트도 너무 맛있었다. 덕분에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출발할 수 있었다.
대도시이다 보니 도시를 벗어나는 데만 1시간 넘게 걸렸는데 도시를 벗어나 열심히 걸어가던 중 갑자기 이제 산티아고 도착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이 확 다가왔다. 그 말은 곧 동행들과도 헤어질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말이기도 했는데 그 생각을 하니 너무 슬퍼져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지만 동행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일부러 맨 뒤로 갔다. 맨 뒤에서 혼자 걸어가면서 앞에 걸어가고 있는 동행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복잡했다.
3시간쯤 걷다 보니 쉴 수 있는 카페가 나왔다. 카페는 어느 시골 마을의 작은 가게 느낌이었는데 사장님도 너무 인자하셨고 정겹게 느껴져서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좋았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니 못 보던 이름의 메뉴들이 많아서 고민하다가 주문했는데 이름만 낯설었을 뿐, 흔히 보던 음식이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고 오랜만에 가게에서 직접 착즙 한 오렌지 주스를 마실 수 있었는데 너무 신선하고 맛있었다. 그렇게 간식을 챙겨 먹고 쉬다가 다시 출발했다.
원래 다음 휴식은 12km 떨어진, 3시간 정도 걷고 나서 쉬기로 했는데 다들 너무 힘들어서 7~8km 지점에 있던 카페에서 쉬기로 했다. 여기에서도 그동안 보지 못했던 메뉴들이 많았는데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부터 디저트까지 다양해서 고민하다가 애피타이저 빠에야와 케이크를 주문해서 맛있게 먹으며 쉬었다.
여기서 쉰 이후로는 쉴 만한 곳이 없어서 3시간 정도를 계속 걸어가야 했고 최근 계속 내리던 비로 곳곳에 생긴 물 웅덩이 때문에 도저히 건너갈 수 없는 곳들이 있어서 우회해서 가야 했는데 그래서 더 힘들었으며 위험한 순간들도 있었다.
오늘은 동행들이 다들 힘든 건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건지 대부분 말없이 걷기만 했다.
특히 나는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면역력 저하로 주기가 바뀐 건지 아니면 부정출혈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하루 종일 계속 신경이 쓰였다.
출발한 지 9시간이 지나서야 오늘의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들 피곤했는지 씻고 침대에 누워서 쉬는데 나는 이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너무 마음에 들어서 꼭 구경을 해야겠다 싶었고 마침 비도 안 와서 기회다 싶어 당장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걸으면서 오른쪽 무릎이 좀 불편했었는데
도착하고 나니 더 안 좋아진 느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뚝거리면서도 돌아다녔다.
마을이 크지는 않았지만 나름 매력 있었고 특히 오늘 일몰이 너무 이뻤다. 핑크빛으로 물든 하늘이, 어느 순간도 놓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아름다워서 한동안 계속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완전히 깜깜해질 때까지 자리를 뜨지를 못했다.
역시 힘들어도, 무릎이 좋지 않아도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고 오늘 하루는 이 순간이 가장 기억이 남을 정도였는데 그만큼 하늘이, 이 마을이 너무 이뻤다.
오늘은 처음으로 배낭 메고 32km를, 9시간 동안 걸었다.
산티아고 도착까지 일정을 줄이고자 약간 무리를 했는데 역시나 힘들었고 그래서 내일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원래 내일은 오늘보다는 더 많이, 38km 정도를 걸으려고 했는데 오늘 걸어보니 안 되겠다 싶어서 내일은 26km 정도만 걷기로, 컨디션 조절을 위해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32km 걷는 것도 힘들었는데 산티아고 도착 전까지, 내 짐을 짊어지고 40km 걷기 도전을 해보기로 했던 다짐이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내 몸의 이상변화가 너무 신경 쓰이고 걱정되는데 내일은 괜찮아지길 바라며 내일도 무사히, 오늘보다는 덜 힘들게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