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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0일 차 : 내가 울게 될 줄은 몰랐다...

19~25.5km 정도, 4시간 40분 걷기

by 베라노드림

아침에 눈을 떴을 때만 해도, 숙소에서 나설 때만 해도 비가 오지 않았는데 마을을 벗어나기 전 카페에 들러 아침을 챙겨 먹고 출발하려니 바람은 불지 않지만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고 있어서, 오늘도 어김없이 우의를 입고 시작해야 했다.


동행들과 떨어져 혼자 걷고 있었고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숲 속을 내려가고 있는데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원래 개를 무서워하는데 산 속이라 보이는 건 없고 어디서 들려오는 건지 알 수 없으니 순간적으로 무서움이 밀려와 얼어버렸다.

내가 멈춰서 무서워하고 있는 걸 본, 지나가던 순례자가 무슨 일인지 물었고 나는 상황을 설명했다.

내 얘기를 듣고는 나를 안심시켜 줘서 그분 덕분에 안정을 되찾아 다시 걸어갈 수 있었는데 숲 속을 지나 마을입구에 도착하자 저 멀리 큰 개가 보였고 나는 또 무서움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뒤에 따라오고 있었던, 조금 전에 나를 안심시켜 주던 순례자분이 ”No problem"이라고 말하며 다시 한번 나를 안심시켜 주셨고 그분 덕분에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만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그분 존재와 말 한마디, 따뜻한 행동이 나에게는 위로가 되었고 이 마음을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감사했다.


다행히 개는 사라졌고 그 이후 보이지는 않았다.

이제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됐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어제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제 동행 몇 명과 걷던 중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마을에 다다를 무렵, 앞서 가던 동행 한 명이 뒤에서 오고 있던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같이 가려고, 내가 뒤쳐졌다 생각해서 기다리는 줄 알았다. 저 앞에서 동행이 기다리고 있는 걸 보고 걸음을 재촉했는데 동행에게 다가가니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던, 동행과 약간 떨어진 곳에 개가 있었다.

다행히 목줄을 하고 있어서 안심했었는데 갑자기 뒤에 있던, 목줄을 하고 있지 않은 개가 나에게 달려들려고 했고 나는 너무 무서워서 그 자리에서 멈춰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 찰나에 동행이 등산스틱으로 막아줘서 나를 보호해 줬던 일이 있었다.

오늘 이런 일을 겪다 보니 어제 일이 생각나면서 어제는 미처 알지 못했던, 지금까지 함께 지내면서 느낀 그 동행의 성격을 생각해 보니 단순히 내가 뒤쳐져서 기다렸던 게 아니라 내가 개를 무서워한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고 개가 보이자 내가 무서워할 거라 생각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개로부터 나를 지켜준 것도 너무 고마웠는데 개를 무서워한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는, 그 세심한 배려가 너무 고마워서 울컥했고 방금 일어난 일까지 더해져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금 혼자 걷고 있는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갑자기 흐르는 눈물에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 동행 한 명이 따라오는 게 보여서 얼른 눈물을 닦고 진정하려 애썼다. 그 동행과 잠시 같이 걸어가던 중 도네이션바가 나왔고 같이 구경하다가 혼자 걷고 싶어서 먼저 나왔는데 출발하자마자 아까보다는 훨씬 더 많이,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왜 눈물이 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이렇게 울어본 게 언제였나 싶을 정도였다.

이 길을 걷겠다고 다짐하면서 유튜브나 블로그를 찾아봤을 때 저마다 각자의 이유로 혹은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고 하던데 그때는 '눈물까지 흘린다고? 도대체 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해를 못 했었는데 내가 지금 딱 그런 상황이었다.

울고 있는데 또 뒤에서 동행이 따라오고 있는 게 느껴졌고 내가 울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얼른 진정하려 애쓰며 눈물을 훔치고 울지 않은 척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동행이 왜 이 길을 걷게 됐는지, 걸으면서 느끼는 게 뭔지 물어보는데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답은 해줘야 될 것 같아서, 그리고 울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눈도 안 마주치고 땅만 보고 말했다.

이 길을 걸으면서 느끼게 된 건,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고 대답해 줬다.

나는 내가 여기까지 못 올 줄 알았다고, 분명 한 번은 몸살이 나거나 크게 아플 줄 알았는데 일단 지금까지는 아프지 않고 씩씩하게 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내가 알던 내 모습과는 다르다고, 실제로 내가 느끼고 있던 감정을 말했는데 꽤나 진지했던 내 대답에 동행이 당황했던 건지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그렇게 둘이 같이 걸어가다가 혼자 걷고 싶어서 일부러 천천히 걸어갔고 그 동행과는 점점 멀어졌다.


비가 왔다가 안 왔다가 반복해서 날씨마저 우울했고 내 기분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간 동행들이 카페에서 쉬고 있다고 해서 나도 쉬려고 동행들이 기다리고 있는 카페로 갔다. 동행들은 얘기 중이었지만 나는 계속 기분이 가라앉은 상태여서 얘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순간 내가 멍하게 있었던 건지 동행 중 한 명이 내가 그렇게 멍하게 있는 모습을 처음 본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나도 놀랬다. 내가 그러고 있었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기분이 가라앉아있고 좋지 않았었는데 동행들의 장난에, 동행들과 얘기하다 보니 조금씩 기분이 풀려가면서 아까 있었던 일도 점점 잊혀 갔다. 동행들에게 말은 못 했지만, 너무 고마웠다.


여기서부터는 동행들과 같이 걸으며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점심부터 먹고 씻고 정리 후 몇 명 동행들과 빨래방에 가서 빨래를 돌렸고 기다리는 동안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지도에 나와 있는 아이스크림집을 찾아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너무 아쉬웠지만 가는 길에 이 동네에 이런 모습이 있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 다리가 있고 강이 흐르고 있는, 그 배경이 너무 이뻐서 아이스크림을 못 먹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풍경을 발견하고 구경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마트 구경이나 가볼까 하고 걸어가는 길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일요일이라 큰 마트는 문을 닫은 상태였고 작은 슈퍼만 열려있었는데 필요한 거 사고 구경하다가 비가 그치면 나가려 했는데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빨래를 찾으러 가야 했기에,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나가야 했다.

빨래방으로 다시 가서 건조기가 다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다가 숙소로 가려는데 다행히 비가 그쳤고 운이 좋게 노을도 볼 수 있었다. 비가 그치면서 맑게 갠 하늘에 물든, 그 순간이 너무 이뻐서 걸음을 멈추게 했고 역시나 빨래를 하러 나오길 잘했다 생각하며 덕분에 마을 구경도 하고 이쁜 하늘도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오늘은 나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나의 마음이, 내 감정 상태가 이해되지 않는 날이었다.

왜 눈물이 났을까 싶었는데, 단지 오늘 있었던 그 상황 자체가 너무 무서워서였는지, 아니면 동행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그동안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걸었는데 힘들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눈물을 쏟고 나니 후련하기도 했고 이 길을 걸으며 울었다던 사람들의 그 마음이, 비로소 이해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한 번 동행의 존재에, 고마움에 감동했고 나를 안심시켜 줬던 그 순례자분을 포함해 모든 게 다 감사하게 느껴진 하루였다.

이제 산티아고 도착까지 단 5일밖에 남지 않았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아쉽게 느껴지는 만큼 남은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고 싶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끝날 때까지 무탈하게 잘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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